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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박정희 대통령, ‘임시행정수도’ 구상 발표하다

최근 국가기록원에서 공개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임시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안)’
1977년 2월 10일 박정희 대통령은 “통일이 될 때까지 임시행정수도를 이전해 건설하는 문제를 구상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임시행정수도’를 건설하는 이유는 서울의 인구 과밀과 군사안보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서울은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50㎞ 거리 안에 있으면서 전 인구의 4분의 1, 그리고 육·해·공군 사령부 및 행정기관이 모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유사시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1970년대 중반부터 북한의 평양과 비슷하게 군사분계선에서 70㎞ 이상 140㎞ 이내의 거리에 인구 100만 명 규모, 그리고 남한의 중심부에 위치한 새로운 행정수도를 건설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게 된다. 정부는 브라질의 브라질리아와 리우데자네이루, 미국의 워싱턴과 뉴욕 등에 조사단을 파견해 경제적 중심지와 행정적 중심지가 분리돼 있는 경우의 효율성을 타진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임시행정수도 건설 구상이 발표되자 언론은 연일 관련 기사를 쏟아냈고, 거론된 지역에 부동산 투기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3월 7일 “10년 혹은 그 이상 걸릴 수도 있으며,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최근 충남 연기군 장기면이 후보지였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5층 규모의 종합청사 모형까지 완성된 상태였다고 한다.

또한 1996년 공사를 완료하고 올림픽 전용부지를 만들어 1996년 올림픽을 유치하려는 계획도 있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임시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의 주요 내용이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대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당시 부동산 투기의 거센 치맛바람이 불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정희 정부 시기의 임시행정수도 안은 1981년 신군부에 의해 백지화됐지만, 그 논의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심각한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1970년대 유신체제 하에서는 행정수도 문제가 정치적으로 논의될 만한 여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의 경우 마하티르 총리의 강력한 권위 하에서 푸트라자야 같은 행정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민주적 논의 없이 건설된 푸트자라야의 경우 활기찬 도시라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오히려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계획된 도시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논쟁하는 것도 큰 문제지만, 자유롭고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추진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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