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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는 사회적 자본' 강한 윤리가 강한 기업 만든다

Q)왜 윤리경영을 해야 합니까. 시쳇말로 대세입니까. 글로벌 스탠더드인가요. 윤리경영 하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높아집니까. 기업가치가 올라가나요. 실적도 정말 좋아지나요. 미국발 금융위기, 글로벌 경제위기를 윤리경영의 실패로 보는 시각도 있던데요.


a)윤리경영을 한 후 신세계의 실적이 굉장히 좋아졌는데, 최소한 그 절반이 윤리경영 덕입니다. 저는 윤리적인 것이 가장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안 할 뿐 어쩌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인지도 몰라요. 각종 선거 때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죠. 많은 후보자가 경쟁자에게서 병역비리니 부동산 투기니 하는 윤리적인 흠집을 찾아내려고 하고, 이런 흠집이 실제로 선거 이슈가 됩니다. 국민이 식상하기도 하지만 이런 것들이 어느 후보가 더 윤리적인지 검증하는 잣대 구실을 합니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이렇게 상대방을 헐뜯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은 일면 합리적인 행동입니다. 윤리적인 사람이 더 강하다는 방증이죠.

“신뢰는 사회적 자본”이라고 주장한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일류 기업과 이류 기업의 차이도 신뢰의 격차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윤리적인 기업이냐 아니냐야말로 이런 신뢰의 격차를 벌려 놓습니다. 윤리경영을 하는 기업과 안 하는 기업 간의 신뢰 격차는 실제로 굉장히 클 수도 있습니다. 페놀 사태로 신뢰를 잃은 어느 기업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타격을 입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부주의로 인해 막대한 비용을 치른 셈이죠. 윤리경영은 말하자면 신뢰를 얻기 위해 치르는 비용입니다. 그런 점에서 윤리경영은 비용 타당성이 있습니다.

구학서 신세계 회장
신세계가 2006년 월마트코리아를 인수할 때의 일입니다. 월마트 측이 기업 인수합병(M&A) 중개회사를 통하지 않고 우리에게 접근했습니다. 인수 가격도 신세계가 제시한 것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그때 16개 매장을 우리 경쟁업체에 넘겼다면 몇 천억원은 더 받을 수 있었죠. 그 사람들이 인수 기업으로 신세계를 낙점한 건 우리가 윤리경영을 하고 그래서 대외적으로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종업원과 협력회사를 승계하는 문제, 인수 후 이미지 등을 고려한 결정이었죠. 비싸게 넘기면 인수한 기업 측이 나중에 이를 만회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세게 할 수도 있습니다. 월마트로서는 한국에서의 철수 자체로 신뢰에 문제가 생긴 마당에 인수 가격 흥정으로 연일 언론에 기사화되는 것도 바라지 않았을 겁니다. 윤리경영은 이처럼 신뢰라는 자산을 축적해 줄뿐더러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줍니다.

윤리경영은 인력의 질도 높여줍니다. 신입사원을 면접할 때 제가 왜 신세계를 지원했느냐고 물어봅니다. 절반 가까이가 신세계의 윤리경영에 공감해서 왔다고 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같은 조건이면 자신의 가치관과 이상에 맞는 일을 하고 싶어합니다. 사실 누구나 윤리적인 것이 맞다고는 생각하거든요. 이렇게 해서 윤리의식이 높은 양질의 사람들이 들어오면 전체 직원들의 윤리적인 마인드가 높아집니다. 선순환이 일어나는 거죠. 윤리경영을 하는 기업이란 믿음은 신세계의 보이지 않는 자산입니다.

윤리경영을 하면 노사분쟁도 줄어듭니다. 구성원들이 회사가 내놓는 숫자를 신뢰하지 않는 건 투명경영을 하지 않아서입니다. 100% 오픈하고, 그래서 신뢰가 생기면 노조도 합리적으로 판단합니다. 회사의 회계가 투명하고, 이렇다 할 약점도 없고, 경영실적까지 다 오픈해 구성원들이 안다면 회사가 적자를 내 주가가 떨어지는데도 무리한 요구를 하겠습니까. 이익을 배분할 때도 재생산을 위한 유보이익과 구성원에게 돌아갈 몫에 대한 원칙을 정하고 그대로 집행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신세계의 경우 회사의 성장을 위한 유보, 구성원 몫, 세금·배당 및 사회환원분으로 3등분 합니다. 윤리경영엔 세 개의 단계가 있는데 그 첫 단계가 바로 투명경영이죠.

윤리경영이 글로벌 스탠더드냐고요? 역사가 오래된 선진 기업들은 다 윤리경영을 합니다. 50년, 100년 된 윤리강령도 있습니다.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되니까 그렇게 하는 거겠죠. 그렇더라도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슬람권에 글로벌 스탠더드는 아메리칸 스탠더드로 비쳐질 수도 있겠죠. 윤리경영이 대세냐? 아직까지 대세는 아니지만 윤리경영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생겼다고 봅니다.

미국의 엔론 사태나 국내에선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적어도 투명경영의 필요성에 대한 학습은 이뤄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분식결산을 했다가는 최고경영자(CEO)가 실형을 사는 시대입니다. 과거의 분식을 정리 못한 기업도 일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과거처럼 대한민국 기업이 한꺼번에 분식회계의 블랙홀에 빠져드는 일을 없을 겁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도 시스템과 윤리 문제로 발생했습니다. 금융 회사들이 신용 위험도가 높은 사람에게 돈을 많이 빌려주고, 그래서 생긴 리스크까지 금융 파생상품을 만들어 일반 투자자에게 전가한 것이죠. 자산 가치가 폭락하면 망할 줄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는 점에서 금융위기의 밑바닥엔 근본적으로 도덕성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윤리경영이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준 사례를 하나 들어 보죠. 1980년대 일제 전기밥솥이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코끼리표’라고 불리던 조지 루시 밥솥이었죠. 김포공항 세관의 통관대엔 으레 일제 밥솥이 몇 개씩 놓여 있곤 했습니다. 이 밥솥을 선물하면 친척들이 다 좋아하니까 좀 창피해하면서도 하나씩 사왔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풍속도죠. 당시 제가 몸담고 있던 삼성전자가 자회사를 만들어 일본 업체와 손잡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밥솥을 생산했습니다. 그런데 비싼 부품을 들여와 국내에서 조립하는데도 가격이 국산 밥솥보다 비싸지 않았습니다.

국내 경쟁사들의 원가가 높다 보니 시장가격도 높았기 때문이죠. 당시 밥솥을 팔던 대기업들은 오너의 친인척이 하는 회사에서 물건을 받아다 자기 브랜드로 팔았습니다. 친인척에게 마진을 보장해 줘야 했기 때문에 담당 직원이 제조사에 생산원가를 낮추라고 말할 수 없었죠. 대기업 자재 파트가 혈연·지연·학연 등 오너의 연고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 셈이죠. 아, 그런데 요즘 용산전자상가에 가면 일본인 단체관광객들이 국산 쿠쿠 밥솥을 사간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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