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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불망 연인 생각하듯, 부처의 길만 생각하는 게 수행

현봉 스님은 사랑에 빠진 남녀, 사진 찍는 기자의 카메라 셔터 소리 등 일상 속의 사례를 들며 불교의 진리를 쉽게 설명한다. 신동연 기자
3은 신비한 숫자다. 진선미(眞善美), 정반합(正反合),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 프랑스 혁명의 3가지 이념인 자유·평등·박애 등 세상에는 3으로 간단하게 정리되는 게 많다. 종교적으로도 힌두교의 브라마·비슈누·시바의 삼신합일(三神合一), 도교의 삼청,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에 3이라는 숫자가 나타난다.불교에는 삼보(三寶)가 있다. 불교도의 세 가지 근본 귀의처(歸依處)인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가 삼보다. 우리나라에는 삼보 사찰이 세 군데 있다.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通度寺), 합천 가야산의 해인사(海印寺), 전라남도 순천의 송광사(松廣寺)다. 그중 송광사는 훌륭한 스님을 가장 많이 배출했다고 해서 승보사찰(僧寶寺刹)로 불린다.

할아버지에게서 한학 배워
송광사 주지를 지낸 현봉(玄鋒.61) 스님에게는 세 가지 이미지가 있다. 학승·선승뿐만 아니라 뛰어난 행정가의 면모가 있다. 경남 사천에서 출생한 현봉 스님은 대여섯 살 때부터 한학자인 할아버지로부터 한학을 공부했다. 스님은 진주농고 재학 시절 ‘법구경’ 등 불교 공부를 다른 공부보다 더 좋아했다. 스님은 대학을 다니다가 출가하기 위해 군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치고 출가했다. 젊은 혈기에 스님은 “조주 스님의 무(無)자 화두를 참구(參究)하겠다”며 출가했다고 한다. 스님은 송광사·해인사·백련사·통도사 등의 선원에서 수십 안거를 지냈다.

현봉 스님은 75년 송광사에서 수련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77년 구산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받았다. 송광사 주지, 11·12대 중앙종회 의원과 법규위원, 정광학원 이사, 조계종 재심호계위원 등을 역임했다.송광사 주지로 일할 때는 조계종 교구본사 중 최초로 종무행정 전산화, 재정의 공개·투명화를 추진해 주목받았다. 지금은 송광사 광원암에서 진각 국사 원조탑(圓照塔)을 모시고 농사일을 하며 정진하고 있다.

현봉 스님은 또한 송나라 대전요통(大顚了通) 스님이 지은 ‘대전화상주심경(大顚和尙注心經)’을 1988년 ‘선(禪)에서 본 반야심경’이라는 제목으로 역주했다. 천수경을 해설한 ‘너는 또 다른 나’는 스님의 또 다른 역작이다. 스님의 이런 매력이 손학규 전 경기지사, 도예가 신경균 씨 등 숱한 정치인·문화인이 스님을 찾게 한다. 전남 순천에 있는 송광사 광원암에서 10일 스님을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부처님의 죽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부처님이 마지막 가신 모습을 보면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돌아가실 때가 되자 부처님께서는 고향 쪽으로 걸어가셨습니다. 산은 없고 지평선만 보이는 들판을 한 늙은 수행자가 석양 빛에 지척지척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시는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 석가를 발견합니다. 지나치게 신격화되기 전의 부처님의 참모습이죠. 부처는 가르치셨습니다. 모든 것은 다 무상한 것이며 생겨난 모든 것은 다 사라져간다는 것을. 부처님도 그런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진리가 그러하니까요. 부처님은 외형적인 육신은 사라져도 법신(法身)은 불생불멸이기에 슬퍼하지 말라고 제자들을 위로합니다. 오로지 계(戒)를 철저히 지키며 끝없이 정진하라고 격려하십니다. 인연이 다 되어서 떠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셨죠.”

-부처님의 삶에는 어떤 차별성이 발견됩니까.
“부처님은 높은 곳에 앉아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사셨습니다. 포살(布薩)이라고 하여 보름마다 모여 불교 공동체 사람들이 서로 허물이 있으면 툭 터놓고 이야기했습니다. 참회하고 개과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모임입니다. 부처님도 ‘대중들이여 내게 허물이 있으면 지적하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생긴 것은 반드시 없어진다는 것을 가르치셨고 우리가 몸뚱이를 받기 전부터 있었던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리·법신·불성도 있다는 것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믿고 공경하는 것은 부처님이 이런 진리를 깨달은 선각자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기적으로 가득해
-부처님도 기적을 행하셨다는데요.
“기적적인 능력을 가끔씩 보이셨고 제자들도 신통(神通)이 있었으나 경계하셨습니다. 본말이 전도돼 사람들이 신통에 빠져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아주 과학적이신 분이셨습니다. 신통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물 마시고, 물을 길어 나르고, 차를 따르고, 사진을 찍기 위해 플래시를 터트리는 게 다 신통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잘 모르는 것, 보통사람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신통이라고 하지만 신통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동안거(冬安居)·하안거(夏安居)에는 어떤 목표가 있습니까.
“정진하는 형식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밤이나 낮이나, 앉았거나 섰거나 언제든지 정진하라고 하십니다. 비구는 걸사(乞士)라고도 합니다. 얻어 먹는 선비라는 뜻이죠. 비구들이 우기에 걸식하러 다니면 초목과 벌레들을 살상할 수 있기에 여름에는 외출을 금지하고 수행을 하게 한 것이 불교 안거의 기원입니다. 안거는 수행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여기 있지만 마음이 콩밭에 가 있을 수도 있고 콩밭에 가 있어도 마음이 여기 있을 수 있습니다. 교도소에 가서도 깨친 분들이 있습니다.”

-가부좌(跏趺坐)를 해야 합니까. 소파에 턱 누워서 편하게 수행해도 됩니까.
“자세를 갖추고 하면 훨씬 낫죠. 사람은 어떤 분위기를 잡고 무언가를 하는 게 좋지 않습니까. 연인에게 프러포즈해도 깔끔하게 차려입고 정중하게 해야 하지 않습니까. 적어도 처음에는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중에 사랑이 무르익으면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것처럼 공부가 무르익으면 움직이거나 조용하거나 한결같이 됩니다. 깨어 있거나 잠들었거나 늘 한결같게 됩니다. 자리를 정해서 좌정해야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형식을 통해서 근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아야 삼매(三昧)입니다. 심지어는 죽거나 살거나 마찬가지인 상태에 도달해야 태어나고 죽는 문제가 해결됩니다. 누구를 좋아하면 오매불망(寤寐不忘) 그 사람 생각만 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염불을 하더라도 딴생각을 할 수 있지만 공부가 어떤 경지에 이르면 부처님의 길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학자들이 연구에 연구를 할 때 시계를 계란인 줄 알고 삶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지요.”

‘커다란 나(大我)’의 일원으로 사는 게 삶
-수행을 통해서 얻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전과 후가 어떻게 달라집니까.
“조주 스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종이 아니라 주인이 되는 길이 수행입니다. 하루를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가는 데마다 내가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권력·이성 등에 마음을 빼앗기고 흔들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출렁대는 마음이 아니라 더 투명하고 밝고 철저한 명경지수(明鏡止水) 같은 마음으로 평정을 찾는 게 수행입니다. 부처님이나 하느님이나 알라가 주인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내게 그런 좋을 길을 갈 수 있는 가르침을 주신 스승이기에 존경받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말한 유아독존은 어떤 뜻입니까.
“불교는 그 어디에도 얽매이는 일이 없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유아독존이라는 말은 나 혼자 잘났다는 게 아니라 남이 없고 오직 나뿐이라는 뜻입니다. TV 뉴스를 봐도 반응은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이 다 다릅니다. 우리 눈에 들어오는 부처님·하느님·알라가 다릅니다. 내가 보는 저 산은 오로지 내가 보는 저 산입니다. 내가 이 세상의 주인입니다. 우리는 커다란 나, 대아(大我)의 한 멤버로 참여하며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사람의 마음, 우주나 자연이 불심으로 가득하다고 하지만 지진·눈사태·홍수로 사람이 죽고 또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보면 불심은 우주의 마음 중에서 착한 부분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까.
“좁게 생각하면 불쌍한 아이티 사람들이 지진으로 죽고 나쁜 사람들은 떵떵거리며 사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원인 없는 결과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는 과연 하느님이 있는가 없는가를 말하지만 불교에서는 이런 문제를 연기관계에서 봅니다. 인과라는 것은 분명히 있습니다. 짧은 시간의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수많은 연기의 네트워크는 있지만 불심 자체는 없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불심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에요. 초월해 버리기 때문에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있다는 입장에서 보면 있고, 없다는 입장에서는 없는 것이죠.”

-부처님이 계율을 지키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계율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깨달음을 얻고 공부를 하는 데 상승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행(戒行)을 지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살생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납니다. 계율이라는 시스템을 따르는 게 좋습니다.”


현봉 스님 연락처
전화 : 061-755-5301 팩스 : 061-755-0408
웹사이트 : www.songgwangs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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