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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일생...이 세상 엄마들을 위한 무대

신경숙의 베스트셀러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서 “이걸 연극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얼마 뒤 정말로 연극으로 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제작자(신시컴퍼니)와는 ‘감’이 통한 모양인데, 내가 이 소설에 주목한 것은 ‘이야기’였다.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실종된 엄마를 대상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아들과 딸 등 각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를 입체적인 무대에 펼쳐놓는다면 연극은 소설 이상의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작가인 주인공 ‘너’의 생각이 바로 관객이 눈앞에서 목소리와 움직임(연기)으로 드러난다면 얼마나 더 실감이 날까.

누구나 가질 법한 이런 즐거운 상상을 실제 무대에 만들어 펼쳐 보인 사람은 연출가 고석만이다. 그는 옛날 방송에서 ‘제3공화국’ 등 굵직한 정치드라마를 만들었던 연출가다. 그의 선 굵은(혹은 마초적인) 스타일을 아는 사람이라면, 소재상 매우 섬세해야 할 것 같은 ‘엄마를 부탁해’를 무대에 올린다는 것부터 화제가 아닐 수 없었다.
연극은 지하철 영상에 박힌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이어 아버지를 비롯한 두 딸과 두 아들이 정신 없이 돌아다니며 엄마를 찾고 있다. 엄마를 찾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실제 서울 시내를 샅샅이 뒤지면서 엄마를 찾는 여정이고, 하나는 그 사이 새로 반추하고 발견하게 되는 ‘엄마 인생의 길’이다. 연극은 전자의 여정은 간단한 자막, 짧은 장면으로 처리하고 후자의 묘사에 집중했다. 무식하고 가난한 엄마를 버리고 거들먹거리며 젊은 여자를 좇았던 아버지, 맘속에 담고 있었으나 삶에 지쳐 서서히 멀어졌던 자식들, 늘 그곳에 있다는 믿음 때문에 오히려 무시하고 외면했던 나날들….

연극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일생을 기억”하게 해주는 우리네 모든 엄마의 삶으로 감정이입하면서 객석을 눈물로 적셨다. 이는 20대 관객도 마찬가지였다. 눈물로 충혈된 한 대학생에게 물었더니 “엄마는 늘 그렇게 위대한 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 원작의 파워풀한 위력 때문인지 연극은 감히 원작의 틀을 깨기보다 거의 그대로 흡수하는 ‘소극적 변화’의 태도를 취했다. 대사와 사건 구성이 원작의 모사에 가까웠다. 연출은 세심하다 못해 조심스러울 정도여서 ‘이게 고석만 컬러야!’라는 식의 주장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특히 몇몇 배우의 연기에서 그의 주 활동 무대였던 TV드라마의 생리에 머문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었다.

사실적인 이야기에 비해 무대장치는 놀라울 정도로 심플했는데, 엄마가 사는 고향집조차 마당 위에 평상 하나, 우물, 살구나무, 그리고 간소한 싸리나무 담장이 전부였다. 이 허허한 공간의 여백을 채워야 하는 것은 배우의 연기다. 연출도 그걸 충분히 의식했던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원작자의 분신으로 작가인 큰딸로 출연한 서이숙의 탄탄한 연기에 비해 정혜선(엄마)과 심양홍(아버지) 등 TV스타들의 그것은 발성과 동작 등에서 너른 여백을 채우기엔 부족한 감이 있었다. 브라운관 속 연기의 재현 정도랄까. 다행히 관객을 끌어당기는 스타의 아우라는 놓칠 수 없는 힘이 돼서 관객들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 세상의 엄마들은 자식들에게 “엄마처럼 살지 말라” “큰 세상에서 살아라”고 충고한다. 연극 속 엄마도 예외는 아니었고, 딸과 아들들은 그러려고 아등바등 살다 정작 엄마를 잃고 말았다. 엄마도 비밀스러운 사랑을 간직할 줄 알았던 한 ‘인간’이었음을 일깨워주었을 때 우리네 엄마의 희생으로 얽힌 이 세상의 모든 부채(짐)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연극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로 가고 싶었던 이 세상 엄마들에게 바치는, 심금을 울리는 절절한 사모곡으로 충분히 기억될 만하다. 3월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세종M씨어터.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를 거쳐 LG아트센터 기획운영부장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서울예술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공연예술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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