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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그곳, 고향의 어머니가 호롱불 켜고 날 기다리고 계신 곳

‘어머님 전상서(Dear Mother)’ (2004~2007), 캔버스에 유채 , 65.1*90.9㎝
‘탄광촌 화가’ 황재형(58,사진)의 ‘어머님 전상서’(그림)를 보았을 때 문득 이 노래가 떠올랐다. 붓 대신 나이프로 거칠게 문댄 화면 안에는 집 떠난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노심초사와 앞마당에 도착해 “엄마”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픈 아들의 바람이 공존한다. “모두 금의환향해서 어머니를 뵙고 싶어하죠. 그런데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잖아요. 어머니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홀로 되셔서 5남매를 키우셨죠. 돌아가시기 전 2년 반을 집에서 모셨어요. 형편이 좋지 않은 때라 별로 해드리지도 못했요. 개인전 오픈 때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노래 ‘동백아가씨’를 부른 정도랄까. 잘 표현하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그려본 게 이 작품입니다.”

그가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떤 것을 보면 꼭 그림으로 그려내야 직성이 풀렸단다. 중앙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대표적인 민중미술 작가로 활동했던 그는 1983년 돌연 태백으로 내려갔다. 노동을 관념적으로만 알아선 안 되겠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3년간 광부 생활을 했다. “고무를 씹는 듯한 체험”이었다. 눈이 나빴지만 안경을 쓸 수 없어 콘택트렌즈를 끼었는데, 탄가루가 눈에 끼여 실명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지난한 삶과 대자연의 풍경을 하나 둘 화폭에 담았다. 시커먼 탄가루 속에서 도시락을 먹는 광부와 돌과 석탄을 분리하는 여인네(선탄부·選炭婦)의 표정에는 마지막 희망을 결코 놓치지 않으려는 결기가 느껴진다. 그들이 사는 산촌 곳곳은 잿빛 일색이지만 그런 만큼 붉은 티셔츠와 파란 청바지, 황토빛 담벼락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는 말한다. “변하는 것은 순간일 뿐, 모든 것은 내재돼 있다. 내재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면 어찌 내가 화가이겠는가”라고.

그의 작품은 몇 년간 곱씹어낸 작품이 많다. 단순히 유화 물감만 쓰지도 않는다. 흙도 쓰고 탄가루도 쓴다. 모래와 톱밥도 접착제에 개어 붙인다. “작업실에 흙이 60여 종 있습니다. 우리 흙이 갖고 있는 본질적 생명력, 정직함과 소박함을 화면에 표현하고 싶어서요.”

거칠면서 사실적인 화면을 추구해온 그의 화면이 이번엔 좀 밝아졌다는 평이다. “요즘은 길가의 돌멩이, 광부들이 신는 나무 슬리퍼가 사사로이 보이지 않고 골목 풍경과 텃밭 모습이 반갑습니다. 억지스러움이 많이 없어졌다고 할까요. 옛날에는 그림 그릴 때 아이들이 오면 저리 가라고 쫓았지만 지금은 같이 놀며 그립니다. 오늘 못 그리면 내일 그리면 되죠.”

3년 만에 여는 이번 전시에는 60여 점을 내놨다. 그는 “서울이 (태백보다) 더 탄광 같고 그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더 광부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무 편안하게 잠자리에 드는 사람은 내 그림에서 경각심을 얻고, 불편한 잠자리에 드는 사람은 안식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제목인 ‘쥘 흙과 뉠 땅’이란 말은 1984년 첫 개인전 이후 지금까지 그의 전시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이자 화두로, “손에 쥘 흙은 있어도 누울 땅은 없는” 사람들을 향한 작가의 연민이 배어 있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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