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조우석 칼럼] 아름다운 사진집 『윤미네 집』

알고 지내던 오빠 친구의 청혼은 서울역 앞 다방에서였다. 뭔가 심상치 않아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던 참인데 프러포즈가 들어왔다. 이듬해 명동성당에서 식을 올렸다. 1960년대 초, 결혼하고 보니 이상했다. 나이 든 신랑은 서른넷까지 뭘 했단 말인가. 토목공학을 전공했다지만 카메라가 전부다. 남의 집에 얹혀살다 신접살림을 차린 게 8평짜리 마포아파트였다. 우리나라 첫 아파트인 그곳서 금쪽같은 첫딸 윤미가 태어났다. 남편이 본색을 드러냈다.

눈도 못 뜨던 딸을 남편이 찍고 또 찍었다. 이후에도 그랬다. 가족 나들이, 학교 입학에서 공부하는 모습까지…. 훗날 딸과 사윗감의 데이트 장면도 무슨 파파라치인양 잡아냈다. 한국 현대사진사의 작은 보석인, 고(故) 전몽각의 사진집 『윤미네 집』은 그렇게 선보였다. 딸 출가 뒤 허전한 마음을 달랠 겸, 친구 주명덕의 프린트로 1990년 출간됐다. 사진집에 담긴 건 윤미네 풍경이지만, 60~70년대 삶이 정겹다. 찌그러진 양은냄비, 군데군데 기운 내복, 그럼에도 웃고 살던…. 물론 사진의 주인공은 윤미네 삼 남매다.

아이들은 아빠의 표현대로 “어떤 예술가도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표현해줬”는데, 놀라운 건 그 이후다. 절판 뒤에도 입소문이 거듭됐고, 일본잡지 ’아사히 카메라’에 소개됐다. 소문 속의 사진집은 그런 기대에 부응해 무려 20년 만에 재출간됐는데, 그게 정초의 일이다. 이 무슨 일인가? 한 달 새 매진됐다. ‘팔리지 않는 책’ 사진집이 거둔 경이로운 승리다. 사진에 대한 인식이 바뀐 탓일까. 순수 사진집 1쇄 매진은 김기찬의 『골목길 풍경』, 강운구의 『경주 남산』, 주명덕의 『섞여진 이름들』을 포함해 열손가락에 꼽히는 경사다.

『윤미네 집』 하이라이트는 딸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아빠다. 본래 전몽각은 식장 스케치까지 스스로 하겠다고 별렀다. 신부 입장 때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 셔터를 직접 누르겠다고(노파인딩 기법) 호언했는데, “뭔 주책이냐?”는 아내의 반대로 포기했다. 대신 사진가 강운구가 그걸 찍어 사진집 마지막을 장식했다. 아마추어 사진집을 최고작가 주명덕·강운구가 거들었으니, 그 또한 인연이고 멋지다. 『윤미네 집』 성공은 무얼 말해주는가.

예술장르 중 그래도 친근한 게 카메라고, 사진 장르다. 문제는 예술사진 합네 힘을 줄 때 시작된다. 해상력·스펙을 따져 바디·렌즈를 사들이며 헛된 에너지를 쏟는다. 출사 나간다며 법석도 부린다. 그렇다면 주변 일상부터 스케치하는 자세, 그것도 가족을 중심으로 한 소박한 다큐멘터리가 얼마나 의미 있는가를 이 책은 보여준다. 한가지, 사진집은 옛 책의 단순 복제가 아니다.

뒤편에 또 다른 보석 ‘마이 와이프’편이 마련됐다. 처녀 적 모습에서 창가에 앉은 중년, 그리고 손자와 춤추는 할머니까지 아내 삶의 사이클을 담은 11컷이 가슴 뭉클해진다. 사진도 소박하지만, 암 선고 뒤 삶을 정리하던 남편이 필름을 추려 아내(이문강)에게 바친 마음까지 읽혀진다. 멋진 남편, 좋은 아빠 전몽각은 4년 전 고인이 됐다. 그는 옛 시절의 여느 영웅 아버지처럼 근대화의 주역이다. 성균관대 교수 재직 전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했다. 『윤미네 집』이 진정 아름다운 건 그런 디테일에 묻은 추억 때문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