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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안정 앞세우는 ‘호민관’… 정부와 갈등도

11일 이성태 한은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개최를 선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11일 유독 활기가 없어 보였다. 전날 늦게 호주 출장에서 돌아와 피로가 쌓인 탓도 있겠지만 예전의 열정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열린 정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뒤 11시20분쯤 ‘통화정책방향’ 간담회를 시작했다. 금통위는 이날 연 2%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1년째 제자리다.

그는 “경제가 정상적인 궤도에 완전히 복귀한 게 아니라서 금융완화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저금리의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는지 관심을 가지면서 정책을 운용해 나갈 것”이라는 덧붙이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말의 무게는 ‘부작용’보다는 ‘금융완화’에 더 실렸다. 그에게서 ‘인플레 파이터’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링 위에서 전의를 불태우는 파이터의 표정은 없었다. 지난 1월 금통위 회의 때 허경욱 재정경제부 차관이 참석하자 그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날은 달랐다. 어두웠다. 적극적으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의 임기는 3월 말까지다. 이제 통화정책방향을 정하는 금통위는 딱 한 번(3월 11일) 남았다. 시장은 그의 임기 안에 금리 인상은 물 건너간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가 연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는 임기 4년간 물가안정에 충실한 총재였다. 그는 “한은이 부여받은 임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물가안정”이라며 한은을 ‘호민관’으로 칭하기도 했다. 호민관은 고대 로마에서 평민의 권리를 지키는 관리로 평민 중에서 선발한다. 한은도 물가를 안정시켜 일반 서민들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호민관의 역할을 잘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렇게 원칙에 철저하다 보니 그의 임기 동안 한국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됐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강한 원칙은 정부와 자주 부딪쳤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은과 정부의 갈등이 자주 불거졌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을 때 갈등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정부는 “경제가 고꾸라지는데도 한은은 물가안정 타령만 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한은이 뒤늦게 다섯 달 동안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3.25%포인트나 낮췄지만 한번 생긴 앙금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정부는 한은의 통화정책에 대해 불신을 감추지 않았다. 그럴수록 이 총재는 고립돼 갔다. 그가 임기 말에 ‘인플레 파이터’의 야성을 보이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후임 총재 인선작업에 들어갔다. 자천 타천으로 후보들의 이름이 떠오르고 있다. 지금으로선 말이 춤을 추는 상황이다. 어떤 인사는 재산 문제가 있고, 다른 인사는 출신 문제가 있다는 등 악성 루머가 난무한다. 한은 총재는 행정부의 장관급 예우를 받지만 격이 다르다. 중앙은행은 정부 권력에 휘둘리지 말라는 차원에서 법으로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이런 중앙은행 총재는 4년의 임기를 보장받는다. 총재는 기준금리를 조정하는 권한을 가진 7인으로 구성된 금융통화위원회의 의장이기도 하다.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한은 총재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6명의 금통위원 중에는 한은 부총재와 한은 총재가 추천한 인사가 포함된다. 기본적으로 자기 편이 2명은 된다. 안건을 놓고 금통위원들의 견해가 3대 3으로 갈릴 때는 총재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다.

이런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한은 총재를 임명할 때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금은 인사 청문회 없이 대통령이 임명한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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