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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의 ‘수호천사’ 천안시복지예술단

“겨울 동안 많이 움츠리고들 계시죠? 그러다 봄이 오면 ‘꽥’ 하고 가시는 거유.” 지난 3일 오후 1시 천안 성거읍 삼일아파트 내 경로당.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려 퍼졌다. “그래서 ‘꽥’하고 돌아가시지 말라고 우리가 온 거 아니유? 겨우내 들썩들썩 움직이시라고. 얼씨구절씨구 하시면서~.” 짧은 인사말이 끝나자 연주가 시작됐다. 구성진 아리랑 가락이 흘러나왔다. 20여 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손을 맞잡고 덩실덩실 춤추기 시작했다.

천안복지예술단의 아리랑 연주에 맞춰 성거읍 삼일아파트 경로당 노인들이 춤을 추고 있다. 임명규 단장(뒤쪽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람)의 추임새가 노랫가락에 흥을 더했다. [조영회 기자]
할아버지들, 밸리댄스에 매료

이날 공연을 펼친 것은 7인조 밴드 ‘천안시복지예술단’. 이들은 홍길동이다. 부르기만 하면 도심이든 농촌이든 가리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간다. 외롭고 지친 시민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달래준다. 이날 공연을 본 송인순(66) 할머니는 “경로당에 멍하게 있는 게 일이었는데 이렇게 찾아와서 놀아주니 얼마나 신나고 좋은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찾아오는 손주도 즐길만한 놀이도 없는 노인들에게 예술단의 방문공연은 최고의 선물이다.

이날은 예술단 최고 인기 공연인 벨리댄스도 선보였다. S라인의 여성 댄서 몸짓에 할아버지들 마음이 울렁울렁댄다. 할머니들도 흥에 겨운지 어느새 일어나 춤을 따라 했다. 김원규(72) 할아버지는 “그냥 다 재미있지. 다 재미있어”라며 가락에 몸을 맡겼다. 김 할아버지의 얼굴에선 공연 내내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황길자(70) 할머니는 처음엔 공연을 그냥 앉아서 봤다. 고개만 까닥까닥 했다. 무릎이 아파 일어서기가 힘들다. “아우~ 답답해. 나도 일어나서 춤을 춰야 하는데.” 이러던 황 할머니도 결국엔 참지 못하고 일어나 장단을 맞췄다. 막상 일어서보니 아픈 줄도 모르겠단다.

객원 멤버까지 단원 20명 넘어

이날 예술단은 7명인 밴드를 둘로 나눴다. 세 명은 삼일아파트 경로당에, 나머지 넷은 삼일경로당에서 차로 5분 거리인 정촌리 마을회관에 갔다. 천안에 있는 경로당만 630여 개. 예술단을 찾는 곳이 1년 내내 줄을 섰다. 그래서 시간이 없는 날은 둘로 쪼개 다녀야 한다. 이런 날 사회를 맡은 임명규(50) 단장은 정신줄을 놓을 만큼 바쁘다. 한 시간은 이쪽, 한 시간은 저쪽으로 옮겨 다니며 사회를 본다. 임 단장은 “사계절 중 겨울이 가장 바쁘다”고 했다. 그는 “겨울엔 산 골짜기까지 바짝 돌아야 한다. 천안 끄트머리 즈음까지 가야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농한기라 쉬고 계실 때 공연을 보여드려야 한다. 2월 말까지 스케줄이 꽉 차있다고 했다.

예술단은 지난해 백 번이 넘는 공연을 했다. 사흘에 한 번 꼴로 공연을 한 셈이다. 임 단장은 “바쁘고 힘들어도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2005년부터 천안시의 지원을 받아 활동해오다 지난달 멤버를 새로 영입하고 재정비를 했다.

멤버 7명은 모두 음악을 전공한 베테랑 음악인이다. 색소폰, 드럼, 기타, 베이스, 트럼펫, 트럼본, 키보드까지 완벽한 밴드의 구색을 갖췄다. 객원멤버까지 포함하면 예술단 식구는 20여 명으로 늘어난다. 국악인을 비롯해 마술사와 댄서들이 객원으로 예술단과 함께하고 있다.

공연료는 경로당의 점심제공

공연은 대개 오후 1시쯤 시작된다. 예술단은 일찌감치 도착해서 공연을 준비한다. 공연료는 미리 받는다. 경로당에서 챙겨주는 점심식사가 공연료다.

예술단의 기타리스트 정성태(38)씨는 “뭘 먹게 될지 항상 기대하고 오게 된다”고 했다. 할머니들이 챙겨주는 공연 전 점심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단다. 정씨는 “원래 오징어국을 싫어하는데 엊그제 할머니께서 끓여 주신 오징어국은 정말 맛있었다. 역시 어르신들이라 요리 내공이 보통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얼마 전엔 기억에 남는 공연료를 받기도 했다. 한 할아버지가 직접 나무에다 글씨를 새긴 작품을 선물로 준 것이다. 키보드를 맡은 방진호(36)씨는 “눈도 침침하신 분이 어렵게 깎으셨을 텐데…”라며 “뭘 받으려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이런 걸 받으면 기분이 정말 좋다”고 말했다. 방씨는 “시골에 계신 분들이 참 순수하신 것 같다. 무뚝뚝하게 계시다가도 음악만 나오면 슬쩍 일어나서 춤추시고 그런 게 아주 재미있다”고 했다. 임 단장도 “큰 무대도 많이 서 봤지만 가장 행복한 무대는 바로 경로당”이라고 했다. “우리는 보람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란다.

공연이 시작된 지 두 시간. 마무리될 기미가 보이자 아쉬운 듯 어르신들의 어깨가 축 내려 앉았다. 이럴 때 어르신들을 달래는 건 임 단장의 몫이다. “저희랑 약속을 하나 해요. 딱 내년 이맘때 다시 찾아올게요. 그럼 그때 오늘 요 모습 고대로만 계시면 돼요~.” 공연을 마친 예술단은 노인들의 박수소리, 웃음소리를 마음에 담고 자리를 떴다.

글=고은이 인턴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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