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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경제위기 진앙지 … 혼돈의 그리스를 가다

그리스 수도 아테네 중심부의 신타그마 광장에서 10일 1만여 명의 군중이 참가한 가운데 정부의 공무원 개혁안 등에 반대하는 파업 시위를 하고 있다. [아테네=이상언 특파원]
“도대체 무슨 위기를 말하는가? 정부는 지금이 위기라고 하지만 노동자들은 늘 위기 속에서 살아왔다.”

10일 그리스 수도 아테네의 도심 복판에 위치한 신타그마 광장에는 고음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광장 동쪽 길가에 설치된 연단 위 여성이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연단 주변 광장과 의사당 사이의 도로에는 1만여 명이 둘러서 있다.

‘노동자 투쟁전선(TAME)’이라는 그리스 공산당 소속 노동단체 간부인 이 여성은 “임금동결이란 우리더러 죽으라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우리에게 월급을 많이 줘서 나라가 망하게 됐다는 건 거짓말”이라고도 외쳤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신타그마 광장에는 플래카드와 피켓을 든 노조원들이 모여들었다. TAME 회원들은 인근의 클라프트모노스 광장에 별도로 모여 1.5㎞가량을 행진해 도착했다. 약 60만 명이 속해 있는 그리스 공공노조연맹(ADEDY)의 24시간 시한부 파업이 시작된 것이었다. 오전 10시, 공식적 파업 시작 시간이 되자 방금 전까지도 운행하던 시내버스가 도로에서 사라졌다. 지방자치단체 소속인 운전사들이 운전대를 놓았기 때문이다.

이날 그리스 전역의 공립학교도 교직원 파업으로 하루 휴교를 했다. 신타그마 광장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아테네대학의 현관 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병원도 사정은 비슷했다. 도심의 에반젤리스모스병원은 응급실 운영도 중단했다. 입구에서 만난 한 의사는 “입원 환자들을 위해 일부 의사·간호사만 출근했다. 응급 처치는 일부 병원에서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항 관제사들이 파업에 가세하면서 350편 이상의 국내외 항공편이 취소됐으며, 국영 철도도 노선별로 수시간씩 운행을 중단했다.

이날 파업은 수일 전 그리스 정부의 공공부문 근로자 임금 동결과 수당 10% 삭감 발표에서 비롯됐다. 그리스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12.7%나 되는 재정 적자 규모를 줄이기 위한 정책의 한 부분이었다. 이에 대해 근로자들은 “왜 우리만 희생양으로 삼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집회 현장에서 만난 20대 여성 소피아 래비는 “공공부문 근로자의 평균 기본급(수당 제외)이 700유로(약 110만원)다. 이 돈의 두 배는 받아야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집회와 파업은 그리스 전역에서 요란하게 벌어졌지만 이에 대한 일반 시민의 반응은 냉담했다. 신타그마 지하철역에서 만난 회사원 스티노스 스트라코폴로스는 “파업이 오늘이었냐”며 “늘상 있는 일이어서 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노조에 끌려다니면 진짜 경제위기가 올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신타그마 광장 주변의 식당 주인 미르토 유그니우스는 “정부가 부도가 나게 생겼는데 노조들은 자신들 몫만 챙기려 든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최근 그리스 언론의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10명 중 6~7명이 공공부문이 비대하고 비효율적이라며 파업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를 방문 중인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는 전날 “정부가 약속한 긴축재정 정책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파업을 감수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러면서 “정부 부채를 줄이면서도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보호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스 정부는 무연 휘발유에 L당 0.14유로의 세금을 추가로 물리고, 주유소·택시 등으로 영수증 발행 의무화 대상 사업자를 확대하는 조처도 발표했다. 민간 기업의 정년을 63세로 2년 늦추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연금 지급 총액을 줄인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민간 노조의 반발도 거세다. 조합원 200만 명을 둔 최대 민간노조인 노동자총연맹(GSEE)은 24일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국제사회는 그리스 정부가 노조의 저항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지켜보고 있다. 정부가 노조의 반발에 긴축재정 정책을 이행하지 못하면 국가 신용도는 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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