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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수녀님처럼 생각을 아름다운 시로 표현할 수 있으면 …”

벌써 1년이다. 16일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1주기다. 하늘나라의 김 추기경을 향해 편지를 썼던 이해인 수녀가 소중한 물건 두 점을 본지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거기에는 시간의 발자국과 김 추기경의 따뜻한 마음씀씀이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중앙일보 9일자 3면>

김 추기경이 이해인 수녀에게 보냈던 친필 엽서의 일부(1993년).
하나는 카드엽서다. 김 추기경이 이해인 수녀에게 직접 썼던 친필 엽서다. 1993년 7월 이해인 수녀의 시집 『사계절의 기도』를 읽고 보낸 거다. 짧은 글이지만 행간의 울림이 적지 않다. 특히 “나도 수녀님처럼 생각을 아름다운 시(詩)로 표현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그것은 하느님이 주신 특은이고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란 대목에선 김 추기경의 시적 감성과 예술적 목마름이 읽힌다. 또 아침에 시집을 손에 들고 읽고 있는 추기경의 모습도 실루엣처럼 되살아난다. 이해인 수녀의 편지에 대해 “답 아닌 답”이라며 건네는 인사 “한마디로 감사합니다”란 말에선 김 추기경의 진솔하고 간결한 성품이 그대로 엿보인다.

또 감동적인 건 필체에서 밀려오는 김 추기경의 체취다. 이해인 수녀는 엽서를 보며 “지인들에게 일일이 친필로 글을 적으신 다정함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이제 그 체취는 ‘역사’가 됐다. 그러나 종이의 텅 빈 여백을 채워놓은 추기경의 온기는 식을 줄 모른다. 지난해 장례식 때 겨울철 칼바람을 녹였던 추기경의 온기처럼 말이다.

1976년 종신서원식을 마치고 주례를 맡은 김수환 추기경(앞줄 가운데)과 이해인 수녀(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 등 서원자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추기경 왼쪽에 지학순 주교가 앉아 있다.
나머지 하나는 종신서원식(76년) 사진이다. 수녀가 평생 신앙과 독신을 다짐하는 종신서원식은 ‘주님과의 혼례식’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해인 수녀의 종신서원식 때는 김수환 추기경이 주례를 맡았다. 수녀원의 종신서원식에 추기경이 직접 참석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사연이 있다. 이해인 수녀는 공부 때문에 동기들보다 2년 늦게 종신서원을 했다. 동생 수녀들과 함께 종신서원을 하면서 대표로 김수환 추기경에게 초대장을 썼던 것이다. 그 편지를 받고 추기경은 몸소 부산까지 내려갔다. 사진 속 이해인 수녀는 무척 앳되다. 김 추기경도 젊다. 추기경의 왼쪽에는 지학순 주교도 앉아 있다. 그게 34년 전 풍경이다. 추기경과 세월, 그리고 인연을 묵상케 하는 사진이다.

이해인 수녀는 요즘 ‘아버지 김수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했다. 급한 일이 생길 때 김 추기경을 부르며 전구(轉求·성모님이나 성인에게 주님께 대신 기도해 달라고 구하는 것)하면 잘 통한다고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해인 수녀는 “창고에 보관해둔 수많은 사진 중에서 딱 두 장만 추기경님과 같이 찍은 것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니, 신기하게도 5분 안에 금방 찾아졌다”며 “(김수환 추기경님이) 앞으로도 두고두고 우리에게 사랑하고 기도하는 방법을 알려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최근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 모음집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가 출간됐다. 책 말미에 김 추기경의 병실을 지키며 고찬근 신부가 대신 적은 병상일기 ‘달을 사랑한 소년’이 수록돼 있다.

이해인 수녀는 “그걸 읽으며 참 많이 울었다. 지난해 고별식에서 말씀하신 강우일 주교님의 절절한 얘기도 다시 생각났다”며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했다. 벌써 1년이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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