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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설 특집] 이리 오너라~ 고향이 그리울 땐 민속마을로

전국에 일곱 곳이 있는 민속마을은 민속을 소재로 삼은 테마파크가 아니다. 오늘도 전통을 부둥켜 안고 사는 사람들의 터이다. 저녁밥 짓는 연기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겨울 저녁 경북 경주 양동마을의 모습.
설을 앞두고 전국의 민속마을을 소개합니다. 평소엔 전화 한 통 없다가 명절이나 돼야 집안 어르신 찾아 뵙는 세태를 다잡고 싶은 생각에서입니다. 설이나 돼야 식구들 모여 앉아 윷판 한 번 벌이고, 옷장 깊이 넣어두었던 한복 꺼내 입고 그러지 않습니까. 민속마을은 명절이 아니어도 전통이 보존되는 터전이니 제법 세시에 어울리겠다 싶었던 겁니다.

알고 보니 민속마을은 평범한 보통명사가 아니었습니다. 문화재청이 지정한 문화재 마을의 이름이 민속마을이더군요. 나라가 인정한 민속마을은 모두 7곳이었습니다.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 경북 경주의 양동마을, 충남 아산의 외암마을,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제주 서귀포의 성읍마을, 강원 고성의 왕곡마을, 경북 성주의 한개마을입니다. 그러니까 이 마을에서 살면 문화재에서 사는 겁니다. 하회마을의 풍산 류씨 대종택 양진당이 보물 306호인데, 아직도 풍산 류씨 종가가 살고 있습니다. 보물을 이고 지고 깔고 사는 셈이지요.

처음엔 부러웠습니다. 박물관에나 가야 구경할 수 있는 보물이 제 집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늘 좋은 건 아니더군요. 양동마을 이지관(55) 이장의 신세 타령 한 자락 들어보시지요.

“평생을 산 내 집이어도 문화재로 지정되면 아무것도 못 만집니다. 집에 수세식 화장실을 놓고 싶어도 내 맘대로 할 수 없어요. 요즘엔 시도 때도 없이 관광객이 불쑥 들어오는데, 할머니들이 깜짝깜짝 놀랍니다. 이거 뭐,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내가 동네 이장이지만 난 외지 사람들이 구경 오는 거 반갑지 않습니다. 무언가 배우려는 마음이 없으면 우리 동네 오지 말라고 하세요.”

민속마을에서 불평만 듣고 다닌 건 아니었습니다. 요즘 같은 때 전통이 곧 일상인 생활이 얼마나 단단한 각오와 헌신이 요구되는지 새삼 배웠습니다. 회재 이언적(1491∼1553) 선생의 후손으로, 역시 보물로 지정된 회재 고택 독락당에서 평생을 살고 있는 이해철(61)씨의 사연을 전합니다.

“도둑이 세 번 들었어요. 집에 있는 유물을 노린 것이지요. 보안 시스템을 겹겹이 깔아놨는데도 들어오더라고. 겨우 쫓아냈어요.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 줄 아십니까. 회재 선생 글씨 한 점만 팔아도 호강하며 살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당신 목숨을 걸고 회재 유물을 지켜냈습니다. 그런데 나 혼자 살겠다고 팔아먹으면 저승에서 할아버지를 무슨 낯으로 뵙겠습니까. 죽을 때까지라도 어떻게든 지켜야지요.”

어떠세요. 조상의 유산과 자신의 평생을 바꾼 이해철씨의 인생에 동의하십니까. 전통을 지킨다는 건, 이토록 험하고 고된 업일 뿐일까요. 그런데도 우리는 전통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걸까요. 명절만 되면 고향을 향하는 저 긴 차량 행렬을 볼 때마다 들었던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안동 시내에서 하회마을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취재에 동행한 권두현 경북미래문화재단 대표가 차를 돌려 후미진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예안 이씨 종택에 가보십시다. 하회마을처럼 정돈되지는 않았지만 여기 종택도 보물입니다.”

예안 이씨 종택은 보물 553호 충효당이었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손때 묻어 반질거리는 나무기둥에서 세월의 흔적이 배어났습니다.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등 뒤에서 갑자기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뉘신가?”

백발 성성한 70대 노인이 경계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 서울 중앙일보에서 왔습니다. 여행 기자입니다.”

어눌한 소개가 끝나기가 무섭게 노인은 저를 앞세워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안방 아랫목에는 구순의 할머니가 앉아 계셨습니다.

“인사하시게. 내 어머니일세. 날이 차가우니 따뜻한 차 한 잔 하시고.”

차를 내주고 노인은 저를 빤히 쳐다봤습니다. 한데 눈길이 달랐습니다. 마냥 그윽했고, 깊은 애정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잘 왔네. 나 중앙일보 5기 이준교일세.”

그 백발 노인은, 저보다 정확히 31년 선배였습니다. 은퇴한 뒤 서울에 처자식 남겨놓고 고향 집에서 노모와 단둘이 살고 있다고 대선배는 환히 웃으며 말했습니다. 자리를 일어서며 물었습니다. “전통을 지키며 사는 건 어떤 겁니까?”

“어머니 품으로 돌아와 사는 거지, 뭐 더 있겠나?”

글=손민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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