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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임진강을 넘어온 적 (32) 50년 6월 25일의 38선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북한군은 38선을 넘어 전격적인 공격을 가해 왔다. 민족의 대참극을 빚었던 6·25전쟁의 시작이다. 북한군 부대원들이 인공기를 세워 든 채 공격하고 있는 모습이다.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중앙포토]
끊었던 담배 생각이 났다. 내 옆에 서 있던 국군 1사단의 미군 수석고문관 로이드 로크웰 중령이 담배를 건네줬다. 미제 ‘럭키스트라이크’였다. 연기를 가슴 속으로 가득 빨아들였다. 낯선 두려움이 내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10시쯤 임진강 철교 앞이었다.



신발도 못 신은 미 고문관 “적들 이미 기차 타고 개성역 도착”

이날 아침 전화를 받고 서울 신당동 집을 황급히 빠져 나온 시간이 오전 7시10분쯤. 국군 정모에 반장화의 교육생 복장으로 집 문을 나섰다. 아무런 경황이 없어 집안 식구들에게 제대로 인사를 건네지도 못했다. 집 앞의 큰 도로로 달려나갔다. 일요일 아침의 서울 거리에는 자동차가 잘 눈에 띄지 않았다. 아주 조용했다. 가끔 지나가는 차량을 불러 세우려 했지만 차는 그냥 지나쳤다. 안 되겠다 싶었다. 마침 군용 지프가 한 대 달려오고 있었다. 무조건 도로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그 앞을 몸으로 가로 막았다.



지프는 나를 서울 용산의 육군본부까지 데려다 줬다. 2층의 육군참모 총장실에는 채병덕 총장과 7~8명의 장교가 서성대고 있었다. “교육파견 중인데 지금 사단으로 가서 지휘해도 좋겠느냐”고 내가 물었다. 채 총장은 “그게 무슨 소리야. 어서 가!”라고 소리쳤다. 6월 중순께 나는 시흥의 보병학교에서 고급 지휘관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1사단 선임 연대장인 11연대 최경록 대령이 임시로 사단을 지휘하고 있던 상태였다. 전쟁이 터진 시점에 나는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이다. 고약한 상황이었다.



사단본부로 갈 차량이 없었다. 용산 육군본부 옆에 살고 있던 미 수석고문관 로크웰 중령을 찾아 갔다. “전쟁이 터졌다. 전선으로 함께 가자”고 말했다. 전쟁이 터졌다는 사실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지프를 몰고 그가 나왔다. 수색의 연대본부로 매일 출퇴근하던 최경록 대령 생각이 났다. 급히 차를 몰아 남대문 시장 안 이발소 골목에 살던 최 대령의 집을 찾아 갔다. “빨리 가자. 전선으로 가야 한다”는 나의 재촉에 최 대령도 허겁지겁 자신의 지프에 몸을 실었다.



먼저 수색의 사단사령부로 향했다. 거리는 여느 때와 다를 게 없었다. 일요일의 교회당 종소리도 들렸다. 9시쯤 사령부에 도착했다. 현관에는 참모 일부가 모여 있었다. 포병대대장 노재현 소령, 작전참모 김덕준 소령, 통신 중대장 동홍욱 대위였다.



상황은 심각했다. 개성은 벌써 함락됐다. 그곳에서 주둔 중이던 12연대(연대장 전성호 대령)와는 연락도 끊겼다. 문산 방면의 13연대(연대장 김익렬 대령)는 파평산 전방에서 적과 교전 중이었고, 수색의 사단 예비 11연대는 병력을 모아 전방으로 이동 중이었다.



전날인 24일이 토요일이어서 숱한 장병이 외출·외박을 나갔다. 부대원 절반 정도가 전선을 떠나 있던 상황이었다. 6월 들어 비상상황이 이어져 외출·외박을 금지해 오다가 모처럼 육군본부가 병사들을 내보냈다고 누군가 설명해 줬다. 그나마 문산 방면의 13연대가 검열준비와 야외훈련으로 병력 대부분이 대기하고 있던 것이 큰 다행이었다. 내가 사단을 떠난 게 10일 전쯤이다. 따라서 모든 상황이 한꺼번에 잡히지 않았다. 일단 전선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지프와 스리쿼터에 나눠 타고 우리는 길을 내달렸다. 어떻게 달렸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보이는 길을 곧장 달리기만 했다. 사단 전진 지휘소인 파주초등학교에 먼저 도착했다. 그 앞의 조그만 산에 오르면 개성이 보인다. 산꼭대기에 오르니 전방 곳곳에서 포성이 울리고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시 이동해 도착한 곳이 임진강 다리 앞이다. 담배를 잇따라 피웠다. 목은 자꾸 말랐다. 이 전쟁은 어떻게 번지고 있는 것인가. 내 나이 이제 만 스물아홉이다. 불과 5년 전 만주군 초급 장교 때 소대장으로 30~40명의 병력을 통솔했지만 지금은 내 휘하에 9000명의 장병이 있다. 이들을 이끌고 거칠게 내려오고 있을 북한군을 어떻게 막을까. 허공으로 사라지는 담배 연기를 보면서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나는 이 전쟁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이었다.



그때 개성 12연대의 미 작전고문관이던 다리코 대위가 다리를 넘어오고 있었다. 불안하면서 뭔가 겁에 잔뜩 질린 표정이었다. 전용 지프를 몰고 넘어온 다리코 대위는 다급했던 나머지 신발조차 신지 않고 있었다. “큰일났다. 적들이 이미 기차로 개성역에 도착했다.” 숨이 넘어갈 듯 그는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포성이 간혹 귓전을 맴돌 뿐 임진강 철교는 다시 적막감에 휩싸였다.



예나 지금이나 임진강은 묵묵히 흐른다. 삼국시대 때도 고구려와 백제·신라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우면서 피를 흘렸던 곳이 임진강 지역이다. 깊고 푸른 강 너머로 이제 김일성의 군대가 몰려오고 있었다. 이제 나가서 적을 막아야 할 때다. 나는 몇 대째 뽑아 물었는지 모를 럭키스트라이크 담배를 비벼 껐다.



백선엽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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