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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쇠한 서양 미술 밀어낼 새 힘, 아시아에서 일어납니다

한국에서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애니쉬 카푸어로 불렸다. Anish Kapoor를 영어 식으로 읽은 관행 탓인데 그의 출신지인 인도 발음을 따라 표기하면 아니슈 카포가 옳다. [김태성 기자]
‘현대미술은 현대문명이 뿜어내는 독을 치유하는 사색과 명상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아니슈 카포(56)는 이 물음에 답을 내놓는 드문 작가로 꼽힌다. 2003년 3월 한국을 찾은 베트남 출신의 평화운동가 틱낫한 스님은 당시 서울 순화동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마인드 스페이스(mind space), 내 안으로의 여행’ 전에 나온 아니슈 카포의 ‘나의 몸 당신의 몸’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감동한 스님은 “우리가 곧 우주요, 숨쉬는 우리 몸이 자유”라는 즉석 설법을 했다. 욕망·화·두려움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자는 스님의 말씀이 미술 작품과 통했다니 드문 일이었다.



인도계 영국 조각가 아니슈, 카포 한국선 2012년 리움서 첫 개인전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개인전=아니슈 카포는 평온하면서도 생각 그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은 보는 이 시선을 먼 곳으로 데려가는 공(空)의 통로 같은 자신 작품을 닮았다.



입춘이던 4일 아침, 사흘에 걸친 짧은 한국 여행을 마무리하는 그를 만났다. 2012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 계획인 개인전과 조형물 설치 논의를 위해 서울에 온 카포는 “아주 아름답고 훌륭한 미술관”이라고 흡족해했다. 일본과 중국이 앞 다투어 개인전을 열겠다고 초대했지만 그는 한국을 골랐다.



아니슈 카포의 대표작 중 하나인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 공원의 ‘구름의 문(cloud gate)’을 보면 그가 왜 관람객에게 사랑받는지 느낌이 온다. ‘콩’을 닮은 이 강철 조각품은 오는 이 누구나 품어준다. 작가가 ‘배꼽’이라 이름붙인 밑부분을 통해 작품의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조각 깊숙한 속으로 접속하는 정신적 체험을 한다. 예술품 스스로 일으키는 힘을 믿고, 이 힘이 관람객의 자발적 참여로 더 큰 에너지를 내게 한다는 점을 카포는 강조한다.



카포는 지금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대형 작가다. 그는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생존 작가로는 처음 영국 런던 왕립미술학교 전시장 전관을 쓰는 개인전을 열었다. 힌두 불교 철학을 작품으로 풀어내는 인도계 작가가 이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한 일은 희귀하다. 이 회고전은 3월 15일부터 6개월 동안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으로 옮겨 세계에서 온 관람객을 맞을 예정이다. 7월부터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 12월에 인도 뭄바이 미술관에서 새로운 개인전이 개막한다. 2011년에는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 미술관에서 초대전이 열린다. 그 사이사이에 각종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대형 조형물을 제작한다. 세계 미술계가 온통 그에게 러브 콜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9~12월 영국 런던 왕립미술학교에서 열린아니슈 카포 회고전에 설치된 2009년 작 ‘벌집(Hive)’. 5.6×10.07×7.55m 크기에 부식 철판을재료로 썼다. [중앙포토]
◆2012년 런던 올림픽 상징물 작가= “그 많은 일을 해내는 초인적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다”고 했더니 큼직한 눈을 껌벅이며 한마디 했다. “코리언 진생!” 한국 인삼을 먹고 기운을 낸다는 그의 얘기는 함께 하는 이들을 늘 따뜻하게 배려하는 평소 품성을 짐작하게 했다.



“아침마다 1시간쯤 명상을 합니다. 1년에 적어도 한 번 이상 방문하는 고향 인도에서 큰 울림을 얻지요. 결국 내 마음은 늘 인도로 회귀합니다. 빛은 어둠과, 의식은 무의식과, 육체는 정신과 함께 있습니다. 오랜 세월 인류사를 지배해온 서구 이성이 이 둘을 분리했다면 이제 동양의 철학은 둘을 같이 보라고 말합니다.”



카포는 최근 세계 미술계에서 인도·중국·한국 작가들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점을 주목하라고 말했다. “유럽과 미국의 미술사가와 화상들이 이끌던 20세기까지의 주류 미술사는 이제 천천히 방향을 아시아로 틀고 있습니다. 노쇠한 서양미술사를 대체할 새로운 힘이 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죠.”



아니슈 카포는 2012년 런던 여름올림픽을 기념해 세워질 조형물 작가로 최근 낙점 받았다. 그는 입에 손가락을 대며 “아직 비밀인데···.”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지었다. 400ft(122m) 높이로 예정돼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념비가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는 높이를 ‘450ft’로 정정했다.



“20세기 기계문명의 위대함을 보여준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처럼 21세기 인류의 대약진과 꿈을 보여줄 상징물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늘 생각하고 있죠, 늘.” 그는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가리키며 합장했다.



글=정재숙 선임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아니슈 카포=1954년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났다. 18세에 영국 런던으로 이주해 첼시 미술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79년 7년 만에 다시 찾은 인도에서 미술을 제의적 과정으로 보는 힌두교와 불교적 시각에 큰 인상을 받았다. 이후 칼 융과 마르셀 뒤샹에게서 얻은 영감으로 인간의 원형 이미지를 탐구하며 이분법적 세계관을 통합하는 영성, 치유로서의 미술작업을 해왔다. 90년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대표, 91년 영국 최고 권위의 ‘터너 상’ 수상, 92년 도큐멘타 9 참가 등으로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2012년 런던 여름 올림픽 상징물 조형 작가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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