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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 보면 울것 같다’던 의대생 어깨 관절 수술의 대가로 거듭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의무팀장이었던 박교수. 뒷배경은 국가대표 야구팀을 지원한 인연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감독·코치·선수들로부터 사인을 받은 티셔츠. [신인섭 기자]
음악을 좋아해 어머니를 졸라 피아노를 배웠고, 배울수록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선율에 반해 작곡가가 되기를 꿈꾸던 소년이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불량배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면서 진로가 바뀌었다. 심한 출혈로 기절한 채 병원에 실려간 소년은 연일 수혈을 받는 과정에서 난생 처음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의식이 점차 또렷해지면서 ‘내가 죽으면 부모님이 얼마나 슬퍼하실까?’란 걱정에 휩싸였다. 그때 흰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다가와 “이제 조금만 있으면 좋아질 거야”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천상의 소리처럼 아름답게 느껴진 그 말 한마디에 소년의 마음엔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



[명의가 추천한 명의] 박원순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 박진영 건국대병원 정형외과 교수

그 사건을 계기로 소년은 음악 소리 대신 환자에게 아름다운 희망의 소리를 전해주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고, 훗날 어깨 관절경 수술의 대가로 성장했다. 건국대의대 정형외과 박진영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의대생 박진영이 정형외과를 선택한 이유는 “정형외과 의사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의사”란 선배의 조언 때문이었다.



국내엔 전문가 없어 원서 보며 독학



“제가 원래 마음이 여린 편이에요. 본과 3학년 때부터 병원 실습을 도는데 주요 진료과 병실에선 중환자가 넘쳐났고, 명의로 알려진 유명한 교수님들도 뾰족한 대책을 못 내놓는 경우가 많았어요. 힘겨운 투병, 보호자들의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결국 고통을 호소하며 사망하는 환자를 볼 땐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박 교수)



그는 친한 선배를 만나 “불치병과 투병하는 환자를 진료할 용기가 없다. 내가 먼저 울어버릴 것 같다” 는 솔직한 고백을 했다. 그러자 선배가 “정형외과를 해보면 어때? 환자 대부분이 통증과 장애를 치료받기 위해 병원을 찾거든. 생사를 오가는 환자를 진료해야 할 일은 많지 않아”라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박 교수가 정형외과 전문의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전공의 생활을 마친 뒤 1994년 단국대병원에 근무하면서부터다.



“당시만 해도 어깨가 아프면 무작정 ‘오십견’이라면서 아파도 진통제를 먹고 물리치료 받으면서 그럭저럭 지내는 사람이 많았어요. 어깨 질환을 전공하는 의사도 드물었죠. 하지만 환자는 많았고, 분명히 좋은 치료법도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습니다.”(박 교수)



결심은 섰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에선 딱히 박 교수가 지도받을 전문가가 없었다.



‘책보다 더 좋은 스승은 없다.’ 생각이 여기에 미친 박 교수는 어깨질환에 관한 원서들을 구입했고,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독학으로 공부하고 진료하던 박 교수는 1997년 국제학회에 참석한 어깨 질환의 세계적인 대가인 미국 컬럼비아 대학 루이스 빌리아니 교수를 만났다. 그리고 아시아 의사로서는 최초로 그의 지도를 받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1년 뒤, 환자 치료에 대한 자신감을 배가해 귀국한 그는 본격적인 어깨 관절경 수술을 시작했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면서 치료받은 환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서 박 교수 진료실로 어깨 환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어깨가 고장 난 프로 운동선수가 수술 후 다시 외국의 프로 구단에서 활약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팔을 못 써 자기 몸 관리도 제대로 못하던 시골 어르신이 ‘새 삶을 찾은 것 같다’ 는 말을 전해들을 때 정말 행복합니다. 환자에겐 감사하고요.”(박 교수)



기자가 “수술 잘 해줘서 좋아졌으면 환자가 교수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프로선수 재활성공 소식 들으면 행복



그러자 그는 “ 어깨 질환은 수술 후 6주간 재활치료를 잘 따라 하면서 괜찮은 듯 느껴져도 ‘물건 들지 않기’ 등 의사의 지시를 잘 실천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요. 환자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니 치료 지침을 잘 따라 수술 효과를 높여준 환자에게 감사하죠”라며 웃는다.



박 교수는 끝으로 독자들에게 “어깨 질환도 어깨가 뻐근하게 느껴지는 초기에 치료하면 약물치료와 물리치료만으로 좋아질 수 있습니다. 이보다 병이 더 진행되면 일(운동)을 하면서도 통증이 생기고, 더 지나면 하루 종일 아프죠. 마지막엔 밤에 통증 때문에 깨는데 이때 병원을 찾는 분들이 많아요. 제발 초기에 병원을 찾아 달라”는 당부의 말을 반복했다.



글=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신인섭 기자



박진영 교수 프로필 



▶1986년: 서울대 의대 졸업



▶1990~94년: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전공의,



정형외과 전문의 취득



▶1994~2005년: 단국대 의대 정형외과 교수



▶1997년: 서울대대학원 의학박사학위 취득



▶1997~98년: 미국 콜롬비아대 정형외과 등 연수



▶2005년~현재: 건국대 의대 정형외과 교수



▶저서: 『정형외과의를 의한 해부학』 등 6권(4권은 공저)



▶논문: SCI 논문인 ‘Journal of Shoulder and Elbow Surgery’에 2006년에 실린 ‘Open Intramedullary Nailing with Tension-band and locking sutures for Poximal humeral fracture: Hot air bollon techique’를 비롯해 112편



박원순 교수는 이래서 추천했다

항상 웃는 얼굴, 다정한 말투 … 마음의 위안까지 얻어




“박진영 교수는 국내 어깨 관절경 수술에 관한 한 가장 경험 많은 명의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박 교수를 명의로 추천하는 이유는 따로 있어요. 아무리 유명한 의사라도 항상 자신의 치료 결과에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병 자체가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힘든 경우도 있고, 치료하면 당연히 상태가 좋아질 걸로 예상한 환자가 나쁜 결과를 보이기도 합니다. 환자 상태가 기대에 못 미칠 땐 당연히 의사의 신경은 예민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기 쉽습니다. 그런데 박진영 교수는 환자나 보호자에게는 물론 주변 의료진 누구에게도 결코 화를 내는 법이 없어요. 수술장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여간 마음을 닦지 않고선 힘들죠. 항상 미소 띤 얼굴로 부드럽게 말하는 박 교수에게 수술받은 환자는 수술 결과에 만족하는 것은 물론 마음의 위안까지 얻고 간다고 해요. 정말 훌륭한 의사죠?” 박원순 교수는 이렇게 말하며 기자에게 동의를 구한다.



“한번은 동료가 박진영 교수에게 ‘어떻게 수술장에서건 병동에서건 화 한번, 큰소리 한번 안 내고 지낼 수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해요. 그랬더니 박 교수가 ‘내가 화를 내고 긴장하면 주변 의료진과 환자에게 전달돼 결국 환자에게 부담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자기 성정도 못 다스리는 사람이 어떻게 환자의 질병을 다스릴 수 있겠나’고 답했다고 해요. 정말 존경스러운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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