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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난 ‘택배’는 23시간51분간 쉬지 않고 움직였다

2일 오후 서울우편집중국에서 컨베이어벨트에 실린 택배 물건들이 목적지별로 나뉘고 있다. 전국에는 25개의 우편집중국이 있다. 신인섭 기자
2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신촌

서울~ 전남 장성, 우체국 택배 루트 임현욱 기자의 추적 ‘1박2일’

선물 세트에 등기번호 부여


“택배 부르셨죠?”
오토바이를 탄 장광명(41) 집배원이 서울 신촌 기자의 집에 도착했다. 추위 탓인지 볼이 발그레해진 장씨는 포장 상태를 확인한 뒤 PDA의 접수 등록 버튼을 눌렀다. 기자는 ‘6897101401413’이란 등기번호가 찍힌 접수증을 받았다. 그는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해 우편물을 챙겨 오전 9시30분부터 신촌 노고산동 일대에 배달을 한다. 그의 동선은 약 20㎞. 배달을 하며 한편으로는 택배 물건을 거둬들인다. 평소에는 택배 물건이 5개 정도였는데 설을 앞둔 요즘은 그 배인 10개 정도를 거둔다. 17년 경력의 장씨는 포장을 도와주기도 한다. “무작정 테이프만 많이 감는다고 좋은 건 아니에요. 충격을 방지할 수 있게 포장 안에 신문지를 넣는 등 물건에 따라 포장 방법이 다르거든요.” 장씨는 나름 터득한 포장 방법을 기자에게 일러 줬다.

오후 1시 서강대우체국
향기 나는 우체국

서강대 교내에 있는 서강대우체국은 장미향이 가득했다. 기자가 택배로 보낸 선물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오토바이로 택배 물건을 수거한 집배원들은 짐칸이 가득 차면 가까운 우체국에 와서 물건을 접수한다. 마포우체국 산하의 우체국 아홉 군데 중 가까운 곳에 접수한다. “이게 무슨 냄새지?” 수십 개의 택배 더미를 살피던 집배원 박성용(56)씨가 물에 젖어 흐물흐물해진 택배 상자 하나를 들었다. “이거 내가 접수한 건데 터져 버렸네”라며 상자와 운송장을 살폈다. 비닐 포장의 섬유유연제 네 통 가운데 한 통이 터진 것이다. 박씨는 먼저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혹시 있을지 모를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여기 우체국인데요. 택배에 문제가 있네요….” 발송인과 한참을 통화하던 박씨는 직접 가서 상황을 설명해야겠다며 나머지 유연제 세 통을 포장했다. 그는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에 감정이 상하는 건데 사람들 말 한마디에 힘들 때가 많다”고 했다.

오후 2시가 되자 서울우편집중국으로 우편물을 운반할 트럭이 도착했다. 우체국에서는 하루 두 번 오후 2시와 6시, 접수된 편지와 택배 물건을 집중국으로 보낸다. 박흥식(46) 서강대우체국장은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다가 옮겨 와 지난해 추석이 우체국에서 맞는 첫 명절이었는데 엄청난 물량에 깜짝 놀랐고, 그 물량을 다 처리해 내는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이번 설도 단단히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5시30분 서울우편집중국
우체국의 우체국

“가장 힘든 건 막무가내로 떼쓰는 사람들이죠. 지난해 아이폰이 출시된 날 너무 힘들었어요.” 서울우편집중국 조광범(40) 소포팀장은 아이폰이 처음 나오는 날 새벽에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오전 2시 남자 두 명이 집중국으로 찾아왔다. “인터넷으로 배송 추적해 본 뒤 여기로 왔다며 택배를 미리 받고 싶다고 부탁하더군요.” 주말을 참지 못하고 찾아온 것이다. “새벽에 여기까지 와서 간절히 부탁하는데 어째요. 찾아 줬죠.”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물건을 미리 받았다는 것이 순식간에 인터넷에 퍼지면서 오전 7시까지 새벽에만 모두 32명이 다녀갔다. 조 팀장은 “요즘은 택배로 보낸 내 물건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인터넷으로 다 알 수 있다”며 “하지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찾아오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용산구 서울우편집중국에는 중앙·동작·관악·마포·용산·여의도우체국 택배 물건이 모인다. 매일 오후 두 번(4~6시, 8~10시) 수거한 우편물을 지역별로 분류한 뒤 전국 24개 집중국으로 보낸다. 반대로 새벽에는 전국의 집중국에서 도착한 택배 물건을 관할 우체국에 전달한다.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편집중국은 우체국의 우체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집중국에 도착한 택배 물건은 컨베이어벨트에 올려져 등기번호와 우편번호 바코드를 읽는 두 개의 센서를 통과한다. 센서는 둘 중 어느 숫자를 하나만 읽으면 지역별로 구분된 ‘슈트(우편물 구분 칸)’에 물건을 떨어트린다. 마지막 슈트에는 바코드가 읽히지 않는 택배 물건이 쌓인다. 조 팀장은 “바코드가 구겨졌거나 포장 재질이 반짝이면 센서가 못 읽는다”고 했다. 전체 물량의 20% 정도가 센서가 읽지 못해 사람이 직접 갈 곳을 구분해 줘야 한다. 우편번호만 보고 지역별로 나눠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일하다 보면 대부분의 우편번호를 외우게 된다. 그는 “그래서 신입 직원이 들어오면 교육을 위해서라도 여기에 배치한다”고 말했다. 소포 분류 작업장에서는 50여 명의 직원이 설을 앞두고 24시간씩 교대 근무를 하고 있었다. 권천조(46) 업무 1과장은 “하루에 보통 6만 개 정도의 택배를 처리하는데 어제부터 10만 개가 넘는다. 일손이 부족해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서강대우체국을 출발한 기자의 택배 물건도 오후 3시에 이곳에 도착했다.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바코드가 인식된 뒤 광주우편집중국으로 분류됐다. 대부분의 우체국 우편물은 대전의 교환센터를 거친다. 대전으로 집중시켜 거기서 특정 지역으로 가는 전국 물량을 모아 한 번에 보내는 것이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기자의 택배 물건은 보통 때 같으면 대전 교환센터를 거쳐 광주우편집중국으로 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은 조금 예외적이었다. 서울집중국에서 광주집중국으로 가는 택배 물량이 트럭 하나 분량이어서 곧장 광주우편집중국으로 떠나게 됐다. 조 팀장은 “모든 우편물이 여기로 모이기 때문에 명절 때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택배를 처리한다”고 말했다. 그는 택배 물량을 처리한 뒤 깨끗해진 창고를 보는 맛에 이 일을 한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오후 10시 광주로 내려가는 트럭
새벽 고속도로를 달리는 화물차

트로트 음악이 나오는 라디오가 크게 틀어진 트럭 안은 쌀쌀했다. 영하의 날씨에도 창문을 반쯤 열고 달렸다. 짐을 가득 싣고 광주로 향하는 5t 트럭의 운전대를 잡은 박공섭(45) 기사는 “밤에는 졸면 큰일나기 때문에 일부러 춥게 다닌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오후 7시 서울우편집중국을 출발해 광주우편집중국에 들러 우편물을 내려놓고 다시 짐을 실어 성남우편집중국까지 되돌아온다. 날마다 약 600㎞씩 운전하는 것이다. 화물차 운전 경력 10년째인 그는 “올해 대학에 들어가는 큰딸에 쌍둥이 아들까지 있는데 애들 생각하면 피곤할 겨를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밤낮이 뒤바뀌어 적응하기 쉽지 않았는데 요즘은 차가 많이 없는 밤에 운전하는 게 더 편하다고 했다. 한밤의 고속도로는 셋 중 두 대가 화물차였다. 그는“택배일의 90%는 사람들이 자는 밤에 이뤄져요. 그래야 사람들이 활동하는 낮에 배달할 수 있는 거죠”라고 말했다.
3일


오전 1시 광주우편집중국
추석보단 가벼운 설 택배

“삐-삐-.” 밤 12시50분 광주우편집중국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오전 1시에 시작하는 작업을 알리는 소리였다. 광주우편집중국 역시 다른 집중국과 마찬가지로 오후에는 택배를 보내고 새벽엔 외부에서 들어온 택배 물건을 분류해 각 우체국으로 배달한다. 평소에는 오전 2시부터 작업을 하지만 설을 앞두고 물량이 많아져 한 시간 일찍 시작됐다. 트럭에서 내려진 기자의 택배 물건은 또다시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사가우체국이라고 쓰인 슈트로 들어갔다. 장재구(44) 소포운송팀장은 “그래도 추석보단 설이 수월하다. 추석 때 보내는 택배는 훨씬 무겁고 물량도 많아 힘들다”고 말했다. 새벽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의 사연도 제각각이었다. 대학 입학을 앞둔 강현성(19)군은 “평소엔 그냥 보내고 받기만 했는데 택배가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전해지는 건지 몰랐다”고 했다. 회사원 김모(31)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워 투잡을 뛰고 있는데 새벽이라 시급이 좋아 일하러 왔다”고 말했다.

오전 10시 고모집
노인들은 은행 업무도 대신 맡겨

전남 장성군 사가우체국. 기자의 택배를 실은 1t짜리 트럭이 오전 7시30분 광주우편집중국을 출발해 오전 8시30분에 도착한 곳이다. 한 할머니가 우체국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우체국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던 김옥예(80) 할머니는 지난밤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이틀 전 동네 사람들과 함께 전북 무주로 관광을 갔다가 구입한 가시오가피 때문이다. 만병통치약이라고 열을 올리던 판매상이 “원래 33만원짜리인데 특별히 10만원에 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구입하자 김 할머니도 한 박스를 샀다. 일단 먹고 돈은 나중에 입금해 주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어젯밤 판매상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른 사람들은 여러 개 사서 10만원에 줄 수 있는데 김 할머니는 하나만 샀으니 15만원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덜컥 겁이 난 할머니는 반송해야겠다는 생각에 날이 밝자마자 우체국으로 달려온 것이다. 직원들이 다니는 뒷문을 통해 우체국 안으로 들어온 할머니는 “얼릉 줘 부러야지 하고 달려왔제”라며 반송을 요청했다. 김흥태(55) 사가우체국장은 “아이고 어무이. 앞으로는 이런 거 절대 사지 마소. 이런 거 묵어도 절대 안 나서(나아)”라며 가시오가피 상자를 받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체국 직원 김성홍(39)씨가 반송 처리하려 했으나 판매인 주소가 없는 것이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30여 분을 기다리던 김 할머니는 “내가 지금 정읍 딸집에 가야항께 알아서 좀 해 줘”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 사가우체국장은 “이런 경우가 종종 있는데 여기저기 수소문해 해결해 드린다”고 말했다.

사가우체국에는 3명의 행정직원과 7명의 집배원이 근무하고 있다. 집배원들은 오전 7시에 출근해 그날 배달할 우편물이 도착하면 자신이 맡은 구역별로 분류한 뒤 9~10시 사이 배달을 시작한다. 기자의 고모가 살고 있는 북하면은 방기실(40)·서창일(38) 집배원이 나눠 담당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이 지역 출신으로 11년째 우편 배달을 하고 있다. 오전 9시40분 우편물 분류가 끝나자 두 집배원이 출발했다. 북하면은 배달할 물량도 많고 면적도 넓어 중간 지점까지 승합차로 이동한 뒤 오토바이로 갈아탄다.

오토바이에 짐을 옮겨 싣고 20분가량 시골길을 달리자 최종 목적지인 북하면 대악리가 나왔다. 산기슭에 10여 가구가 모인 마을이다. 우체국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것을 본 한 할머니가 집배원을 불러 세웠다. 그러고는 당연하다는 듯 전기세 고지서와 1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집배원에게 맡겼다. 서창일 집배원은 “연세도 많고 읍내까지 거리도 멀고 하니까 우리들 올 때마다 이렇게 부탁하신다. 영수증은 다음 날 배달 올 때 거스름돈과 함께 드린다”고 했다. 통장이랑 도장을 맡기면 은행에서 돈도 찾아다 준다. 그는 “10년 정도 여기서 근무하다 보니 주민들이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언덕을 조금 더 올라가자 마을 중간에 위치한 고모집이 보였다. 서씨는 열려 있는 대문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면서 “이 집도 농민신문 배달하러 일주일에 세 번씩 와서 잘 아는 집”이라고 했다. 그는 기자의 고모 임화님(71)씨에게 택배를 전달하고 PDA에 사인을 받았다. PDA에 찍힌 시각은 오전 10시21분. 서울 신촌에서 전남 장성까지 택배와 함께한 24시간의 여정이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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