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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27) 떠나는 한국전의 별, 맥아더

더글러스 맥아더 1880~1964
갑자기 순직한 김백일 장군의 후임으로 내가 국군 1군단장에 임명됐다. 1951년 4월 7일이었다. 그래서 1사단을 떠나게 됐다. 50년 6월 25일 적의 침입을 당한 뒤로 줄곧 지휘했던 부대다. 북진으로 평양에 처음 입성하는 영광을 안겨 줬던 나의 1사단. 6·25 발발 두 달 전인 50년 4월에 사단장으로 부임한 지 1년 만이었다. 개전 당시 사단장 가운데 그때까지 같은 부대를 계속 지휘해 온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삶과 죽음, 처절한 고생과 화려한 영광을 함께했던 국군 1사단이었다. 포화가 치솟고 총탄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전장에서 운명을 걸고 함께 싸웠던 전우들과 헤어지는 감회는 착잡했다. 그들은 눈물로 나를 환송했다. 사단장 이임 사열을 하면서 내가 그들의 앞을 걸으며 서로 주고받았던 충혈된 눈빛은 지금까지 기억에 생생하다.



맥아더 해임 소식에 부산이 술렁…이승만 대통령 얼굴이 굳어졌다

프랭크 밀번 미 1군단장 은 진심으로 나를 축하해 줬다. 편지까지 보내왔다. “그동안 능숙한(skillful) 지휘관으로서 부대를 잘 이끌어 줘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신고를 위해 군단으로 그를 찾아갔다. 그는 특별히 미 8군에 요청해 L-17 쌍발비행기를 내게 내줬다. 6개월 전 운산 전투 막바지에서 잠깐 2군단장으로 발령받았다가 밀번 군단장의 요청으로 다시 1사단에 복귀했으니, 따지고 보면 두 번째의 군단장 임명이었다.



밀번 군단장이 불러 준 비행기에 올라타 부산으로 향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고 있던 부산의 임시 경무대에 도착해 1군단장 및 소장으로의 진급 신고를 했다. 부산은 술렁이고 있었다. 한국전쟁을 이끈 미군의 별,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이 해임됐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소장 계급장을 달아 주던 이승만 대통령의 얼굴이 어두웠다. 맥아더라는 거대한 우군(友軍)이 사라져 이 대통령이 그토록 갈망했던 북진통일(北進統一)의 꿈도 사라질 판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타고난 군인이었다. 그는 오직 ‘승리’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었다. 적이 나타나면 끝까지 그를 막아 내고 섬멸하는 데만 온 정력을 집중했다.



그에게는 어릴 적부터 봐 오던 조선의 향로가 하나 있었다. 그의 아버지 아서 2세(ArthurⅡ)가 1890년대 조선을 방문했을 때 고종(高宗)이 하사했다는 향로였다. 아서 2세는 그 물건을 끔찍이 아꼈다고 한다. 어린 맥아더는 그를 보면서 자랐을 것이다. 그 역시 성년이 된 뒤 아버지로부터 조선의 향로를 물려받아 애지중지했다. 말하자면 그는 소년 시절부터 조선에 대한 모종의 애틋한 감정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맥아더는 향로를 잘 간직해 오다가 1942년 5월 필리핀 내 연합군 사령부였던 코레히도르가 일본군에 함락되는 와중에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이승만 대통령이 모양이 비슷한 조선 향로를 구해 맥아더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그에 관한 평가는 다양하다. 전장의 영웅으로서 극도의 칭송, 아울러 뛰어난 언변과 대언론 포장술에만 능하다는 폄하도 있다. 그가 구사한 작전도 패착(敗着)이라는 점에서 보면 허점이 적지 않다. 그러나 한국전쟁 기간 중에 보여 준 그의 여러 가지 면모는 확실히 남과 다르다.



1951년 4월 7일 국군 1군단장으로 발령이 난 백선엽 1사단장(맨 앞에서 걷고 있는 사람)이 사단본부에서 이임식을 마친 뒤 부대를 사열하고 있다. [백선엽 장군 제공]
나는 50년 6월 29일의 한 장면을 기억한다. 임진강을 지키다가 결국 북한군 탱크에 밀린 나는 1사단 지휘부와 함께 굶주린 채 사흘을 걸어 시흥에 도착했다. 그때 무장병력의 호위를 받으면서 지나가는 미군 장군의 행렬이 있었다. 맥아더였다. 기약 없이 밀리는 전선에서 본 그의 뒷모습이다. 그는 영등포 전선으로 향했다. 적의 코앞이었다.



그는 영등포 전선에서 매우 의연했다고 한다. 한 미군 장교의 전언은 이렇다. “한강 남쪽 언덕인 영등포 근처에서 전선을 시찰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총탄이 빗발쳤다. 포격도 있었다. 맥아더 장군을 수행하던 참모들이 순식간에 몸을 굽혀 사방으로 엎드렸다. 잠시 뒤 포격과 총격이 멎었다. 참모들이 몸을 추슬러 일어나면서 본 광경은 놀라웠다. 맥아더 장군이 우뚝 서 있었다. 여전히 망원경으로 강 건너편을 보고 있었다….” 꿈쩍 않고 버티고 서서 망원경으로 적정을 살피는 그의 담대함에 주변 사람들이 놀랐다는 후문이다.



맥아더는 이때 벌써 인천상륙작전을 구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적의 허리를 끊으면서 보급선을 차단한 대담하기 짝이 없는 작전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인천은 세계적으로 조석간만의 차이가 가장 심한 항구의 하나였다. 상륙작전의 어려움을 감안하면 이곳을 선택할 까닭이 없었다. 맥아더 장군은 이 점을 노린 것이다. 적이 생각지도 못하는 곳으로 과감하게 밀고 들어오는 작전. 오직 그만이 구사할 수 있는 한 편의 대형 드라마였다.



백선엽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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