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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은 길 그 자체이며 시초여야 한다. 만족이란 있을 수 없기에 창조하고 또 창조”

1 샤넬 2010 오트 쿠튀르 패션쇼
샤넬의 2010 봄,여름 오트 쿠튀르 패션쇼가 열리기 하루 전인 1월 25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카를 라거펠트(Karl Lagerfeld)를 만나기 위해 파리 캉봉 거리에 있는 샤넬 본사를 찾았다. 예정 시간을 한참 지나서야 피팅룸으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미국판 ‘보그’(VOGUE US)의 편집장 안나 윈트워 정도만 들어간다는 곳이다.이윽고 카를이 등장했다. 밤에도 남 앞에서는 거의 벗는 법이 없다는 검은색 선글라스와 가지런히 빗어 묶은 하얀 머리, 황동색의 뱀가죽 장갑, 검은색 슈트와 가죽 조끼에 주렁주렁 달린 브로치들, 넥타이 위에 꽂은 라피스 라줄리 브로치, 그리고 앞 코가 높은 카우보이 부츠를 신은, ‘패션계의 살아 있는 전설’ 카를 라거펠트다.

그는 샤넬의 모델 겸 영화배우인 안나 무글라리스와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까만 색 테이블 위에는 다음 날 발표할 사진 자료가 가득했다. 안나를 위한 샴페인 한 잔, 카를을 위한 레드 와인 한 잔, 그리고 중앙에 샤넬 No.9 향수가 놓여 있었다. 오트 쿠튀르란 프랑스 상류 문화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이름도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미니스테르 드 렝뒤스트리(Ministere de L’Industrie)’라는 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비로소 ‘오트 쿠튀르’란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 패브릭과 모피, 기성복과 란제리에서 주얼리·가죽제품·스카프·향수 등 다양한 액세서리까지 패션의 모든 것이 녹아 있는, 패션의 정수다.

2 패션쇼 무대 뒤에서 준비하고 있는 모델들
스태프들은 카를에게 쉴 틈도 주지 않고 사진과 프린트물들을 가져왔다. 카를은 짧은 시간 동안 자료들을 주시하다가 새 종이 한가운데에 무어라 한 줄 써서 건네곤 했다. 이어 뒷방에서 10분에 한 번씩 등장하는 모델들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를 체크했다. 바느질 땀까지 세밀하게 체크한 후 최종적으로 액세서리를 결정했다. 카를이 의상을 최종 체크하는 동안 모델들은 인형처럼 꼼짝도 안 하고 서 있었다. 카를 라거펠트를 지척에서 보좌하며 샤넬 본사에서 텍스타일을 총괄하는 한국 디자이너 김영성씨는 “이 피팅 단계에서 모델들은 몇 시간씩 서서 포즈를 유지하고 있어야 할 때도 있다”고 들려주었다.

카를 라거펠트는 누구인가. 독일 함부르크에서 1938년 태어났으니 올해 일흔둘이다. 17세 때 아마추어를 위한 패션 디자인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클로에(CHLOE’)에서 일을 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83년 샤넬 패션의 아트 디렉터가 된 이래 지금까지 샤넬의 모든 오트 쿠튀르, 기성복, 액세서리 컬렉션의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명품 브랜드를 지휘하는 수장으로 그만큼 오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사람도 흔치 않다. 87년부터는 샤넬의 프레스 킷에 사용할 사진을 직접 찍기 시작했다. 또 98년부터는 파리에 ‘라거펠트 갤러리’를 세워 책과 출판, 사진 작업을 병행하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명품 브랜드 펜디(FENDI)의 아티스틱 어드바이저로도 일하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그의 다이어트가 화제를 모았을 터다. 2000년 그는 지방 섭취를 크게 줄이는 ‘드라코니안(Draconian) 다이어트’로 무려 42㎏을 줄였다. “그의 두뇌는 컴퓨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쓸데없는 것까지 기억하고 있으며 특히 중요한 숫자는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 김영성씨의 귀띔이다. 그가 샤넬의 오트 쿠튀르를 위해 그린 스케치는 디자인의 특성에 따라 각각 전문 워크숍으로 보내진다. 워크숍에서 아마포 등을 이용해 실물 크기의 모형으로 정확하게 제작된 모형을 카를에게 보내고 진행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진 후에야 패브릭으로 만들게 된다. 이 과정 후 일명 ‘디캐빈’으로 불리는 모델들이 피팅을 몇 번 거친 뒤 카를의 마지막 승인을 기다리는 것이다.

3 카를 라거펠트가 직접 찍은 사진
피팅이 잠시 중단되고 그가 앉은 자리에서 장갑 낀 손을 내밀었다. 본사의 홍보 담당자가 카를에게 ‘중앙SUNDAY’를 보여주며 인터뷰를 확인했다. “OK.” 그의 짤막한 대답 이후 우리는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자리에는 이탈리아 ‘보그’의 디렉터 프랑카 소차니(Franca Sozzani)도 있었다. 예전의 한 TV 인터뷰에서 “앞으로 유행할 패션을 어떻게 전망하는가”라는 질문에 “난 모른다”라고 짧게 대답했다는 얘기를 미리 들었던 터라 적지 않게 긴장이 됐다. 그렇지만 인터뷰는 영어로 순조롭게 진행됐다.

-럭셔리 브랜드에서 가장 오랫동안 진두지휘하고 있다. 비결이 있는가?
“비결이란 없다. 일은 일일 뿐. 난 내 일을 사랑하고 내 일을 할 뿐이다. 일을 하면 에너지가 발산되고 그 에너지가 계속해서 일을 하게 한다.”

-항상 많은 디자인을 하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때는 없는가?
“그런 일은 절대 없다. 내게 있어 아이디어가 없는 순간은 없다. 현재 떠오르는 아이디어도 다 제작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당신은 당신의 작품에 만족하는가?
“나에게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작품을 할 때까지 계속 창조하고 또 창조한다.”

-지금까지 디자인한 작품 중 자신을 나타낼 만한 작품은 무엇인가?
“완벽한 작품이란 있을 수 없다. 완벽한 작품을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만일 완벽한 작품이 나온다면 난 그 순간 디자인하는 것을 그만둘 것이다.”

-샤넬의 이미지와 다른 스타일의 디자인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아무도 나에게 디자인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샤넬 역시 디자인에 대한 제약을 두지 않는다. 난 100% 자유로우며 지금도 충분히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을 마음껏 하고 있다.”여기서 그가 가진 샤넬의 스타일에 대한 생각을 부연하면 이렇다. 그는 평소 “샤넬의 스타일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어야 하는 동시에 영원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관습의 타파와 기존 관습으로부터의 탈출이야말로 그가 누누이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관습을 만들어낸 코코 샤넬의 천재성을 그는 높이 샀다. 샤넬에서 그는 스타일의 관람객인 동시에 창조자다. 그러면서 “항상 자신의 마음이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오래 남을 수 있고 사라지지 않을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스타일을 파괴한다”는 라거펠트. “샤넬은 길 그 자체이며 시초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조금 전 캉봉 거리에 있는 ‘마드모아젤 샤넬 아파트’에 전시 중인 파리-상하이 컬렉션을 봤다. 테마는 중국이었지만 스타일은 여전히 샤넬이었다. 샤넬에 있어서 그것은 중요한가?
“샤넬의 아이덴티티는 어떤 테마가 사용되었다 해도 변하지 않는다.”

-한국이나 중국일본 등 아시아 시장을 위한 배려를 따로 하는가?
“전혀 없다. 동양 여성들도 머리가 하나에 팔이 두 개, 다리가 두 개다. 왜 그들을 위한 배려를 따로 해야 하는가? 하지만 동양인에게 샤넬 옷이 피팅이 잘 되는 이유를 묻는다면 그들의 깨끗하고 부드러운 피부와 아름다운 보디라인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은 왜 항상 선글라스를 착용하는가?
“난 사람들을 관찰하기를 좋아한다. 남들은 내가 무엇을 보는지 모르지만 난 쉴 새 없이 그들을 관찰하고 있다.”

더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다음 차례의 모델이 등장하는 바람에 인터뷰는 아쉽게도 끝나고 말았다.
피팅룸을 나와 김영성씨를 따라 그들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전 세계의 패브릭이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샘플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사무실 벽에는 지난해 카를이 직접 찍은 이병헌씨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카를은 지난해 일본의 미용 관련 사이트인 ‘야마노피부닷컴’의 캠페인 모델로 발탁된 이병헌씨와 파리에서 화보를 촬영했고 9월에는 도쿄에서 ‘LEE BYUNG HUN×KARL LAGERFELD’전을 열기도 했다. 그가 직접 배우를 찍는 일은 드문 일이라고 한다. 그와의 인터뷰가 나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그가 한국을 사랑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튿날 파리의 파빌론 캉봉-카푸신에서 열리는 샤넬 오트 쿠튀르 패션쇼를 찾았다. 쇼가 끝나고 빛나는 은색 정장에 은색 장갑을 낀 라거펠트가 자신만만하게 무대를 걸어 나와 관객의 박수를 받았다. 언제나 그랬듯 패션쇼의 주인공은 그였다. 그의 열정은 아직도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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