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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인터뷰] “호암은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제조업 일으킨 인물”

2월 12일 고(故) 호암 이병철 회장(이하 호암) 탄생 100년을 맞는다. 일본에서는 삼성의 창업자인 호암이 학문의 영역에 올라 있다. 게이오(慶應)대 종합정책학부 야나기마치 이사오(柳町功·49) 교수는 22년간 호암을 연구해왔다.

야나기마치 교수는 “지난 1세기 최고의 경영자”라고 호암을 평가했다. 지난 20일 야나기마치 교수의 연구실에서 2시간 동안 호암의 기업경영과 철학을 들었다.

-호암은 어떤 사람인가.

“호암 같은 경영자는 현재 일본엔 없다. 그런 스케일과 원대한 철학을 가진 경영자는 일본에서는 메이지(明治) 시대 미쓰비시(三菱)의 창업자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弥太
郎) 정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개발도상 단계에서 경제가 올라갈 때 그런 대단한 인물이 나타났다.”

-스케일이 크다고 했는데 어떤 특징이 있었나.

“호암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제조업을 일으킨 사람이다. 해방 후 전쟁 전까지는 외부에서 받은 원조가 아니면 무조건 무역이었다. 내부에서 물건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삼성물산도 무역업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호암은 무역에 머물지 않고 곧바로 제조업을 시작했다. 주변에선 왜 고생해가며 제조업을 하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호암은 ‘무역만 해서는 안 된다. 들여온 재료로 물건을 만들어서 국민에 공급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만든 회사가 제일제당이다. 당시 국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60년대 말 삼성전자를 만들었고, 70년대 중반부터 중화학공업에 들어갔다. 늘 시대적 요청에 부응했다. 나라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야를 만들고 그 다음에 다른 분야로 다각화했다.”

-어떤 철학을 갖고 기업을 경영했나.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 소이치와 호암의 공통점은 사람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천연자원이 없다. 사람밖에 없다. 사람이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을 만든다는 것이 이들의 기본 생각이었다. 호암은 삼성사관학교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인재를 키우고 육성했다. 이따금 인재들이 다른 데로 떠나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봤다.”

-일본 재계에선 호암을 어떻게 평가하나.

“호암의 현역 시절을 기억하는 일본의 재계 인사들은 많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삼성이 지금처럼 큰 회사가 되도록 씨를 뿌리고 환경을 만든 것은 호암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80년대 전두환 대통령 때 나카소네 야스히로(中<66FD>根康弘) 총리와 교류했을 때도 호암의 역할이 컸다. 그는 전면에 많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한·일 관계를 뒷받침한 공이 크다.”

-호암이 일본 경영인과 다른 점은.

“일본 대기업 사장들은 대부분 샐러리맨들이다. 이들은 매일 출퇴근해 하루 종일 회의하고 경조사를 쫓아다닌다.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비판이 있다. 이들은 일상 업무에 너무 바쁘다 보니 깊게 공부할 여유가 없다. 큰 비전을 못 그리는 것이다. 반면 호암은 깊고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어떻게 보면 좀 철학적인 구상도 했다. 오너이기 때문에 시간도 공간도 자유롭게 쓰면서 리더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 경영인들은 그런 식으로 해야 세계 1위까지 올라가는구나 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

-호암 경영의 강점을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한국 기업 전문가인 일본 게이오대 종합정책학부 야나기마치 이사오(柳町功) 교수가 지난 20일 도쿄 게이오대 연구실에서 삼성 창업자 고(故) 호암 이병철 회장의 경영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호암은 지난 1세기 최고의 경영자”라고 말했다. [도쿄=김동호 기자]
“호암은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중앙집권적인 톱다운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만들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호암이 결정하지는 않았다. 상당 부분을 유능한 전문경영인에게 맡겼다. 통상 오너는 모든 것을 챙기고 밑에는 권한을 주지 않는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있는데 호암은 그렇지 않았다. 시스템을 완벽하게 만들었다.”

-경영체제가 세계적으로 성장한 힘이 됐다는 건가.

“성장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오너 경영이니까 그만큼 빠른 성장이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80년대 중반부터 반도체 산업은 일본·미국·유럽 기업들이 진출해 있어서 이미 과잉경쟁 상태였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대부분 소극적인 태도로 시장에서 빠져나갔다. 반면 삼성은 앞서 있는 일본 기업들이 후퇴할 때를 틈타 과감하게 투자했다.”

-어느새 삼성이 일본의 전기전자 기업을 추월했다.

“삼성이 1등이 된 이유가 있다. 경영적으로는 과감한 의사결정 시스템, 기술적으론 어느 정도 표준화된 기술을 갖고 대량생산 ·대량판매로 연결시킨 것이 삼성의 힘이었다. 당분간 업계 1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새로운 상품 기술을 개발하지 않으면 1위는 위협받는다. 역시 기술적·창조적 힘이 관건이다. 이런 것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호암이 삼성에 남긴 인재 제일의 경영철학과 도전정신이 필요한 이유다.”

-호암은 이 시대에 어떤 교훈을 남기고 있나.

“앞으로는 창조적 기술, 창조적인 상품이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아이팟과 같은 새로운 개념·상품·시장을 만들어서 슘페터처럼 창조적인 파괴도 해야 한다. 삼성이 투자할 만한 힘이 있었으니까 대규모로 투자했고, 그 결과 성공했다는 게 세상의 시각이다. 하지만 투자할 힘이 있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시 호암이라는 세기의 경영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은 물론 일본의 젊은 세대들도 탄생 100년을 계기로 호암을 공부해볼 필요가 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야나기마치 이사오=일본 최고의 한국 기업 전문가다. 일본 게이오대 상학부에서 학사부터 박사까지 공부한 뒤 한국 기업을 연구하기 위해 1988년 연세대 대학원에서 유학했다. 당시 삼성의 성장은 한국 경제 발전의 압축판이라고 판단해 그 뒤 22년간 삼성과 호암을 연구했다. 일본에서 한국 기업의 역사와 지배구조를 전공하는 교수들과 공동학회를 운영하고 있다. 2002년에는 미국 UCLA대 한국학센터에서 2년간 미국의 시각에서 한국 기업을 연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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