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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어, 청문회 출석 이라크전을 말하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의 위험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태도가 극적으로 바뀌었다.”

2003년 이라크전 당시 영국 총리를 지낸 토니 블레어(사진)는 29일 이라크전 관련 청문회에서 영국이 참전을 결정한 것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사용 위험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블레어 전 총리는 이라크전 진상조사위원회가 이날 오전 9시30분(현지시간)부터 런던 시내 ‘엘리자베스 여왕 콘퍼런스 센터’에서 개최한 청문회에 참석해 이같이 증언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블레어 전 총리를 상대로 영국이 이라크전에 참전하게 된 배경 등을 캐물었다. 블레어 전 총리는 “9·11 테러 전 우리는 후세인이 위험하긴 하지만 (제거하기보다는)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었다”며 “그러나 3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9·11 테러 사건 이후 후세인 정권의 위험도에 대한 판단을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후세인은 분명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었으며 9·11 이후 그가 이를 사용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며 “후세인의 위협을 다룰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면 그를 제거해야 한다는 데 미국과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세인은 10년 넘게 유엔의 대량살상무기 결의안을 위반하고 있었다”며 “그가 국제적 약속으로 되돌아오도록 만들 필요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블레어는 2002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비밀 협상을 통해 이라크전에 대한 밀약을 맺었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비밀협상을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영국 내에서는 그동안 블레어가 2002년 4월 미국 텍사스의 크로퍼드목장에서 부시와 만나 이라크를 침공하기로 밀약했고,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 동원 능력에 관한 정보를 과장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영국은 2003년 이라크전 개전에 앞서 미국과 함께 이라크전에 대한 유엔 결의안을 통과시키려 노력했지만 프랑스와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됐다. 영국군은 유엔 결의 없이 2003년 3월 이라크전에 참전했으며 지난해 7월 완전 철수할 때까지 6년의 참전 기간 동안 모두 179명의 병사를 잃었다.

영국 정부는 이라크전에 대한 진상 조사 요구가 잇따르자 지난해 11월부터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이라크전 당시 정보 책임자, 군·외교 관계자 등을 상대로 참전 결정이나 전쟁 진행 과정이 정당했는지 등에 관한 광범위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블레어 전 총리에 이어 고든 브라운 현 총리도 다음 달 말께 증언할 예정이다. 이날 청문회장 밖에서는 이라크전 전사자 유족과 반전 단체 회원들이 모여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등 시위를 벌였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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