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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적 아름다움의 극치, 신비로운 벽면을 보는 듯

1 미셸 오슬로 감독의 1998년 애니메이션 ‘키리쿠와 마녀’의 장면들
2000년 이후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픽사의 ‘업,’ 드림웍스의 ‘슈렉’ 시리즈 같은 3D CG 작품이 주도하고 있다. 최근 오랜만에 디즈니의 정통 2D 애니메이션 ‘공주와 개구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대세는 3D로 굳어진 것 같다. 게다가 드림웍스의 제프리 카젠버그는 이미 모든 애니메이션을 3D 입체상영용으로 만들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애니메이션이 3D 일색으로만 가는 것이 그리 반갑지는 않다. 물론 3D 작품은 양감으로 인한 실재감과 박진감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2D 만화 또한 그만의 장점이 있다. 바로 회화적 아름다움 말이다.

이런 2D 애니메이션만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작가 중에 프랑스의 미셸 오슬로(1943~)가 있다. 그는 최근작 ‘아주르와 아스마르(2006)’에서 3D를 부분적으로 사용했지만, 그것을 정교한 아라베스크 무늬들로 가득한 2D 배경과 결합해서, 부분적으로 튀어나온 이슬람 세밀화를 보는 것 같은 기묘하고 아름다운 영상을 창조해냈다.

오슬로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은 아프리카 민담을 바탕으로 한 2D 애니메이션 ‘키리쿠와 마녀 (1998)’ 라고 할 수 있다. 엄마 배 속에서부터 말을 하고, 태어나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신기한 꼬마 키리쿠가,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마녀 카라바를 물리치러 가는 이야기다. 이 만화는 마치 말투 느린 할머니에게서 듣는 옛이야기 같아서, 나른하게 전개되면서도 은근히 감칠맛이 있다. 게다가 마녀에게도 나름의 사연이 있고 그와 관련한 막판 반전이 있어서, 비폭력과 톨레랑스를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오슬로의 철학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키리쿠와 마녀’의 매력은 그림 같은 영상미일 것이다. 심플하게 묘사된 마을의 황갈색과 붉은색이 역시 심플하게 묘사된 사람들의 초콜릿색 피부가 멋들어진 조화를 이룬다. 반면에 정글의 나무와 풀들은 극도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으면서 평면적으로 겹쳐져 있어서(사진 1), 마치 다양하고 정교한 초록색 패턴으로 가득한 신비로운 벽면을 보는 느낌이다.

2 뱀을 부리는 사람 (1907), 앙리 루소 (1844~1910) 작, 캔버스에 유채, 169 x 189.5 cm, 오르세 박물관, 파리 3 잠자는 집시 (1897), 앙리 루소 작, 캔버스에 유채, 129.5 x 200.7 cm, 근대미술관(MoMA), 뉴욕
이 정글 장면들에서는, 환상적인 밀림 그림들로 유명한 프랑스의 화가 앙리 루소(1844~1910)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루소의 ‘뱀을 부리는 사람(사진 2)’을 보면 ‘키리쿠와 마녀’처럼 열대식물의 잎사귀 하나하나가 꼼꼼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들의 색깔은 뭉뚱그려 녹색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각자 조금씩 다른 녹색이고 모양 또한 가지각색이다. 그 어느 식물 하나 소홀하게 그려진 것 없이 뚜렷한 형태와 색채와 개성을 뽐내며 함께 어우러져 기이한 합창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소박파’라고 불리는 루소는 그야말로 소박하고 진지한 태도로 멀리 있는 풀잎 하나까지 정성 들여 묘사했는데, 그 바람에 그림의 원근감이 거의 사라져서, 오히려 서양 미술의 전통적인 사실적 표현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루소는 당시의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하급 공무원으로 오래 일하면서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다가 마흔이 넘은 나이에 미술전에 나온 화가였다. 그의 이런 특이한 경력과 그림은 한동안 조롱거리만 되었다.
하지만 루소 그림의 명쾌하면서 비사실적인 이미지는 기이한 매력이 있다. 그것은 때로 현실보다 더 생생하고 다채로운 꿈의 한 조각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소의 그림에는 자연에 대한 순진한 경외감과 애정이 담겨 있다.

‘뱀을 부리는 사람’을 보면, 빽빽한 식물들 사이로 슬며시 검은 뱀 한 마리가 나무를 타고 내려온다. 이 뱀은 마법사 여인의 피리 소리에 이끌려 오는 것이다. 그녀의 목에도 뱀이 한 마리 감겨 있고 발치에는 세 마리 뱀이 도사리고 있다. 처음에는 검은 마법사의 날카로운 눈과 뱀의 그림자에 오싹해지기도 하지만, 마법사 발치의 뱀들이 피리 소리에 맞추어 빙글빙글 돌고 있고 그 옆에 새 한 마리가 태연히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 천진난만한 묘사에 웃음이 나오게 된다. 여기에다 옅은 푸른 하늘에 뜬 달이 시적인 분위기를 더해준다.

루소의 이런 매력은 점차 기욤 아폴리네르나 파블로 피카소 같은 젊은 전위예술가들의 눈에 띄게 되었다. 그의 밀림 그림들은 그의 말년에 그려진 것인데, 이때는 피카소가 자신의 화실에서 루소를 위한 파티를 열기도 했다.
밀림 그림들 이전에 루소가 처음으로 진지한 평가를 받게 된 그림들 중 하나는 ‘잠자는 집시 (사진 3)였다. 이 그림은 루소 자신이 특히 자랑스럽게 여긴 작품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프랑스 라발(Laval)시에서 이 그림을 사줄 것을 권하면서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한다.

“만돌린을 연주하며 방랑하는 흑인 여인이 피로에 지쳐, 마실 물을 담은 병을 옆에 둔 채 깊이 잠듭니다. 사자가 돌아다니다 그녀를 발견하지만 잡아먹지 않습니다. 여기에 달빛의 효과가 있는데 매우 시적입니다. 이 장면은 사막에서 벌어집니다. 집시는 오리엔트풍의 의상을 입고 있습니다.”

화가 자신이 시적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이 그림은 시적인데, 특히 ‘뱀을 부리는 사람’에서도 등장하는 푸른 하늘의 창백한 하얀 보름달이 그렇다. 집시는 그 서늘하면서도 온화한 달빛을 담요 대신 몸에 덮었다. 저 멀리 흐르는 강의 아득한 물결소리를 자장가 삼아, 그리고 사자를 옆에 두고도, 아니 사자를 벗 삼아, 평화롭게 잠들었다.
이 그림을 극찬한 프랑스의 시인이자 영화감독 장 콕토(1889~1963)는 이 모든 것이 집시의 꿈이라고 보고 이렇게 썼다.

“아마, 사실 이 사자와 이 강은 잠자는 사람의 꿈일 것이다…디테일에 소홀하지 않았던 화가가 잠자는 여인의 발 주변 모래에 발자국을 그려 넣지 않은 것은 무심코 그렇게 한 것이 아닐 것이다. 집시는 거기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거기에 있다. 아니, 그녀는 거기에 없다. 그녀는 인간세상에 있지 않다…그녀는 시의 비밀스러운 영혼이다.”

이토록 루소의 그림을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만드는 것은 전통적인 원근법을 따르지 않은 기이한 평면적 묘사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키리쿠와 마녀’는 2D였기에 이런 루소적인 아름다움을 재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애니메이션이 꼭 3D가 대세가 되어야 할까?


중앙데일리 문화팀장. 일상 속에서 명화 이야기를 찾는 것이 큰 즐거움이며, 관련 저술과 강의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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