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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정치는 성의를 다해 현자를 등용하는 것인데

정치는 책임이지 권력이 아니다. 그래서 정당성은 ‘하늘로부터’ 받지 않고 ‘백성들의 동의’에 기초한다. ‘천명은 움직이는 것(天命靡常)’이기에 언제나 역성혁명에 열려 있다.

1. 군주의 책임
맹자가 이 이념을 가장 분명하고 과격하게 제시하고 있다. 제(齊)의 선왕(宣王)과 나눈 대화 한 토막.
“처자를 친구에게 맡기고 먼 길을 떠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돌아와 보니 식구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었습니다. 임금이 그 사람이라면 어쩌시렵니까.” “당장 절교해야겠지.” “판관을 하나 임명했는데 옥사를 제 멋대로 처리하고 있다면 그를 어쩌시렵니까.” “즉각 파면해야지.” 맹자는 이 대답을 듣고 나서 제 선왕에게 다시 물었다. “지금 제나라가 온통 도탄에 빠져 있는데, 임금이시라면 그 책임자를 어떡하시렵니까.” 제 선왕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좌고우면(左顧右眄), 좌우를 둘러보며 딴소리를 했다.

조선의 유학도 ‘맹자’의 압도적 영향 하에 있다. 그렇지만 생사여탈권을 쥔 임금 앞에서 누가 대놓고 옥좌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를 수 있었을까. 율곡은 좀 달랐다. 어느 날 경연(經筵)에서 이 대목을 강연한 다음 이렇게 덧붙였다. “만일 맹자가 전하를 향해 조선이 어째서 이렇게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무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이 발칙한 질문에 선조 또한 입을 다물고 말이 없었다. 율곡은 한 걸음 더 나갔다. “만일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나라를 다스리기에 부족한 그릇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상감보다 어질고 유능한 사람에게 전권을 맡기는 것이 옳습니다!(若自度才不足以治國, 則必得賢於己者而任之可也. 『經延日記』권 29)”

2. 절망의 시대
선조가 율곡을 좋아했을 리가 없다. 목숨을 부지한 것이 다행스러울 정도다. 율곡의 기록들을 종합하면 선조는 바탕은 착하지만 자존심이 세고 우유부단한 성격이었던 듯하다. 신하들의 협박과 설득에도 그는 그저 묵묵히 듣기만 할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상하 간의 소통이 없는 시대, 임진년의 불행이 여기서 예고되었다. 당시의 정황을 잘 알려주는 예화가 있다. 어느 날 경연에서 검토관 김성일이 탄식한다. “조정의 명령이 막혀서 실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위에서 제안된 정책들은 아래로 내려가면 벌써 다른 폐단이 생기고 있습니다.”

율곡이 받는다. “명령이 시행되지 않는 이유를 오늘 이 자리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군신(君臣)간은 부자(父子)와 같아서 신뢰(交孚)가 있어야 일이 성취될 수 있습니다. 지금 저희들은 여기 지척간인데도 임금께서는 속을 열지 않으시고 마음을 닫아걸고 있으니, 천리 밖에 명령이 어떻게 소통될 것입니까.”
송응개가 말했다. “음양이 화합해야 비가 내리고 만물이 자라는 법인데, 전하께서는 그저 입을 다물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계시니 상하가 단절되는 것입니다.”

임금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모든 책임이 결국 나한테 있다고들 하는데, 돌아보니 나는 영 아닌 재질이라 도무지 ‘정치의 도’를 일으킬 수 없으니, 그래서 말을 않는 것이네.”이 말에 다들 “그렇지 않습니다” 하고 합창했다.

임금은 “이건 겸양이 아니야. 내가 나 자신을 어찌 모르겠는가”라고 했다. 율곡이 나섰다. “정말로 말씀하신 대로라면 모름지기 현인(賢人)을 얻어 그를 믿고 맡기시면 가히 치국(治國)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율곡은 덧붙였다. “그렇지만 임금께서 ‘나는 못 하겠다’고 하신 말씀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 임금께서 여색(女色)을 좋아하십니까. 음악과 연회를 좋아하십니까. 술에 빠져 계십니까. 말달리고 사냥하기를 좋아하십니까. 궁중 안의 프라이버시라 실상은 잘 모르겠지만 임금께서는 위의 실덕(失德)에 스포일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못하겠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하에게 결여된 것은 다만 ‘의욕과 비전(立志圖治)’입니다. 학문에 ‘실천’의 공이 빠져계신데, 진실로 해보겠다는 뜻을 세우면 안 될 정치가 없습니다(但殿下所欠, 惟不立志圖治耳. 此正由學問上欠踐履之功故也. 苟能立志有爲, 則何患不治).”

3. 성학집요, 임금을 일으켜 세우기
그러나 선조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어려운 날들을 만났다. 그래서 의미 있는 성취를 꿈꿀 수 없다(予無才德, 而時世適遇難治之日, 所以難於有爲也).” 그는 창업기의 군주들을 부러워했다. 유방처럼 덕성도 재주도 별로인데도 빛나는 성취를 거머쥔 사람들을….
율곡의 『성학집요』는 이 무기력과 침체를 타파하기 위해 쓴 책이다. 거기 중흥(中興)의 간절한 꿈이 담겨 있다.
말이 쉽지, 마음 한 치 돌리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율곡은 호소한다. “제왕의 학문은 기질(氣質)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절실한 일이며, 제왕의 정치는 성의를 다해 현자를 등용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기질(氣質)은 기질(temperament)이 아니라 성격(character)을 가리킨다. 통념과 습속에 젖고, 무엇보다 자기 관심에 갇혀 있는 한 타인의 얼굴이 보일 리 없고 전체를 향한 책임 또한 기대할 수 없다! 무기력과 의혹 등의 불건전한 정념 또한 그 오래된 보호 본능과 협소한 방어기제의 산물이다.
율곡은 학문의 목표를 교기질(矯氣質), 즉 ‘자기 중심적 성격의 혁신’에 설정했다. 이 자리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관문’이자, ‘인간과 허깨비를 구분하는 경계선(人鬼關)’이다. 최고 권력자인 임금이 이 관문을 타파하느냐의 여부에 일국의 흥망이 걸려 있다. 『성학집요』는 그래서 모두를 위한 책이지만 특히 군주와 통치자의 리더십을 위한 교본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고전한학과 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주희에서 정약용으로』『조선유학의 거장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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