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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과'李箱문학상’ 2

제1회 이상문학상 기사가 실린 문학사상 지면. 사진 문학사상 제공.
1970년대 중반 무렵 한 연예인 커플이 잠깐 화제에 오른 일이 있었다. 30대 중반의 한 신진 영화감독이 데뷔 3~4년 차로 한창 인기가 치솟던 20대 중반의 여성 TV탤런트에게 끈질기게 구애한 끝에 마침내 결혼에 성공한 것이다. 연예계의 혼사야 대수로울 것도 없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이 1년을 넘기지 못하고 파경을 맞으면서 얼마 뒤부터 연예계에는 그들과 관련한, 근거가 불분명한 소문이 은밀하게 나돌기 시작했다. 그들이 결별한 이유는 그 탤런트가 밤이면 어떤 고급 비밀요정에 나가 접대부로 일한다는 사실이 남편에 의해 들통 났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소문은 감독이 술친구들과 함께 그 요정으로 가서 사실을 확인하기까지의 과정도 꽤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그 감독은 김승옥과 가까운 사이였고, 기자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다만 ‘서울의 달빛 0章’에서는 부유한 집 아들인 대학강사로 설정돼 있었다. 물론 그 스캔들의 진실 여부는 당사자 외엔 알 길이 없고, 또 김승옥이 그 스캔들을 소설 소재로 삼았다 해서 문제 삼을 까닭은 전혀 없었다. 더욱이 그 작품에는 김승옥이 60년대에 보여주었던 소설가적 감각이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어 그의 재능이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데 어쩐 일인지 기자에게는 그런 능숙함조차 오랜 외도 끝에 돌아온 사람이 외도의 경험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곁들여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작품에 대한 문단과 독자의 지나친 관심이 김승옥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무렵 자주 만난 김승옥도 자신에 대한 주변의 이런저런 관심이 꽤 신경 쓰이는 눈치였다. “이것저것 다 모른 체하고 깊은 산속에라도 들어가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의…’에 이어지는 작품의 제목과 줄거리도 구상해 놓았다며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김승옥의 뜻과는 관계없이 그에게는 60년대의 절정기에 버금가는 스포트라이트가 연일 쏟아지고 있었다. ‘문학사상’이 제정한 ‘이상문학상’의 제1회 수상자로 결정되면서 그는 ‘서울 1964년 겨울’로 ‘동인문학상’을 수상(1965년)했을 때의 ‘화려한 시절’로 돌아와 있는 듯했다.

그것은 김승옥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수상자로 결정된 날에도 그는 술에 취해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집에 돌아와서야 수상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밤 9시쯤 ‘문학사상’ 편집기자로 일하고 있는 서영은이 전화로 수상 소식을 전해왔다는 것이다. 아내에게서 그 소식을 듣는 순간 그는 ‘문학사상’ 주간이며 5명의 심사위원 가운데 한 사람인 이어령이 속된 말로 ‘봐줘서’ 상을 받게 되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문단 친구들은 김승옥에 대한 이어령의 ‘편애’를 두고 말이 많은 터였던 것이다. 밤늦은 시간이었음에도 김승옥은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으로 인사를 겸해 이어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이어령은 질책과 격려를 섞어 이렇게 말했다고 김승옥은 후에 전했다.

“이 사람아. 심사위원은 뭐 허깨비여? 백철 선생, 김동리 선생, 황순원 선생, 유주현 선생들이여. 아 그 양반들이 어떤 고집쟁이들인데 자네가 와서 엎드려 상을 달란다고 해서 줄 양반들이냐 말이여! 작품상이지 작가공로상은 아니니까 맘 턱 놓고 받으라고. 어쨌든 끔찍이도 고마운 분들이데. 자네 소설 안 쓴 지가 몇 년인데 그래도 자네를 잊지 않고 그동안 기대들 해주신 걸 보니까 괜히 나도 감격스럽데. 앞으로 소설 좀 써!”

이어령의 대답은 진정이었을 것이다. 그의 재능을 아끼는 문단의 가까운 친구들도 ‘이상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김승옥이 다시 소설에 전념해 주기를 바랐다. 그의 아내 역시 “그 상은 앞으로 영화에서 손을 떼고 소설을 쓰라는 의미로 주는 것”일 게라고 격려했다. 시상식 이후 ‘문학사상’은 물론 여러 곳에서 원고 청탁이 쏟아졌고, 그가 소설에 매달리는 모습은 감동적이라 할 만했다. 두문불출하는가 하면 한동안 종적을 감추기도 했다. 그러나 2~3년이 지나도 그의 소설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무렵 그는 몹시 지쳐 보이고, 초조해 보였다.

80년 5월 김승옥이 동아일보에 ‘먼지의 방’이라는 제목의 소설 연재를 시작했을 때 문단과 독자들은 김승옥의 3년 만의 재복귀를 반가워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겨우 15회가 실린 뒤 막을 내렸다. ‘광주사태로 인한 집필의욕 상실’이 중단의 이유였다. 그 이듬해에는 “나는 허무주의자가 아니다”라면서 기독교 입문을 선언하고 다시 긴 침묵에 빠져들었다.


중앙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문학 평론가로 추리소설도 여럿 냈다. 1960년대 문단 얘기를 다룬 산문집 『글동네에서 생긴 일』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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