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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약전골목·한옥 보존 부탁합니다”

그레이슨(위 사진) 교수와 그가 김범일 대구시장에게 보낸 편지의 봉투(아래 사진).
“시장님. 한때 대구에 살았던 사람으로 편지를 씁니다.… 나는 오랫동안 한국 특히 대구지역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대구 도심에 이상화 시인의 옛 집이 잘 보존된 걸 보고 너무 기뻤습니다.”

김범일 대구시장에게 25일 배달된 편지의 앞 부분이다. 편지에는 1월 15일자 영국 셰필드 소인이 찍혀 있었다. 주인공은 영국 셰필드대의 제임스 그레이슨(66·동아시아학) 명예교수. 그레이슨 교수는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해외 한국학, 현황’이란 토론회에 참석한 뒤 대구를 찾았다.

대구는 그가 1970∼80년대 대학에서 종교학을 가르치고 선교사로 젊음을 바친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그는 대구 방문 길에 셰필드대 제자인 조원경(53) 목사를 만나 일주일을 묵었다. 그는 방문 다음날 모든 일정을 제쳐 둔 채 “대구 도심의 옛 골목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오겠다”며 오전 7시에 약전골목 주변을 혼자 찾았다. 15년 만이었다. 그는 빌딩가인 중구의 대구읍성 흔적 등을 온종일 둘러본 뒤 오후 8시쯤 돌아왔다.

그레이슨 교수는 대구시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대구 시내 두 곳만은 꼭 보존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나는 약전골목 주변 골목길이다. 그는"이 길은 1725년 대구읍지에도 나와 있는 오랜 길”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이 골목길을 별도의 방식으로 포장하고 표지판을 세워 보존해 달라”는 방법까지 제시했다.

또 하나는 사라질 위기에 놓인 종로 주변 한옥이었다. 이곳을 서울의 삼청동처럼 보존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는 중세의 성벽과 옛 골목·가옥이 잘 보존된 영국의 오랜 도시 요크의 사례를 설명했다. 요크는 ‘작은 것들’을 잘 보존해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고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조 목사는 “그레이슨 교수는 대구의 옛 골목을 전문가 못지 않게 소상히 알고 있다”며 “이런 흔적이 더 이상 개발에 밀려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왔다”고 말했다. 편지를 읽은 김범일 대구시장은 “좋은 지적을 해 줘 대단히 고맙다”며 “그레이슨 교수의 조언을 정책에 반영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레이슨 교수는 이보다 앞서 지난해 11월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앞으로도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대구 방문 길에 처음 본 경북 경산의 300년이 넘은 상여집을 보고 난 뒤였다. 경북도가 이 상여집의 규모와 건축 양식 등 희소성을 감안해 국가문화재 지정을 추진하자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며 힘을 보태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

그는 한국의 문화유산을 둘러본 뒤 받은 느낌을 영국에 돌아가서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문화유산들이 훼손될까봐 노심초사하며 편지를 보낸 것이다.

대구=송의호·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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