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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역사, 언어, 정치

드라마 ‘추노’는 조선 인조 임금 시대가 배경이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인조의 한자표기는 ‘仁祖’다. ‘어질 인(仁)’은 유학의 최고 이념이다. 조선은 공자의 맥을 이은 주자학의 시대였다. 드라마는 그 시대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드라마 인기의 비결에 근육질 남성과 요염한 여인들이 펼치는 성적 이미지를 빼놓을 수 없다. 재미와 인기가 생명인 드라마와 역사의 실제가 늘 일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허구의 드라마만 그럴까. 실제 역사의 무대에서도 이미지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어질 인’은 요즘 언어로 하면 ‘자발적 동정심’ 혹은 ‘변화에 민감한 감수성’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인조라는 묘호를 받은 당대의 주인공은 그러한 인을 구현한 성군이었을까. 언어로만 보면 그렇다. 하지만 언어로 표현된 역사를 한 꺼풀을 벗겨내면 다른 세계가 나온다. 정치적 이미지의 세계다.



드라마에서도 암시됐듯이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는 아버지에 의해 독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소현세자의 부인인 세자빈과 세손까지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은 인조에게 시급한 과제는 생존이었다. 소현세자조차 청나라의 후원을 받는 정적으로 보였다. 인조란 묘호는 효종의 작품이다. ‘인’에 담긴 이미지를 효종은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당초 신하들은 ‘열조(烈祖)’를 요청했으나 효종의 주장을 꺾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인’자는 너무 과한 것 같다. 효종 시대의 화두를 인의 관점으로 풀어봐도 그렇다. 당대의 정치적 쟁점은 오랑캐 청나라를 정벌하자는 북벌과 청나라의 앞선 문물을 배우자는 북학으로 나뉜다. 효종은 북벌을 주창했다. 정치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시점에서 재해석한 당시의 시대정신은 ‘북학’으로 모아진다.



역사와 언어와 정치는 긴밀히 연결돼 있다. 역사는 과거의 정치이고, 정치는 오늘의 역사다. 그 둘은 언어를 매개로 연결된다. 기록되지 않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 대접을 받기 일쑤다. 기록되는 과정의 정치적 곡절도 간과된다. 남은 것은 언어뿐이기 때문이다. 후대의 재해석 과정도 마찬가지다. 그게 언어의 한계이고, 역사와 정치의 맹점일 것이다. 올해는 이런 한계를 각별하게 되새기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은 모두 언어로 기록된 역사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언어를 만들지만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며, 나아가서는 인간됨을 규정할 수도 있다”(이종은 외 지음, 『언어와 정치』)는 사실을 성찰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시대적 배경을 무시하고 언어에만 매달리면 우리의 지난 삶이 한순간에 비루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일인명사전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에 맞서 친북인명사전을 내겠다고 맞불을 놓은 경우도 그렇다. 역사를 돌아본다는 구실로 정치적 공방을 벌이는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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