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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석의 아이티 구호활동기] ④진료소 문을 열다

아이티 대지진 참사현장에 한국인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아이티 지원팀도 그 중 하나다. 당 청년위원장인 강용석 의원을 포함한 6명의 지원팀은 22일(현지시각)부터 포르토프랭스에서 구호활동을 시작한다. 17일 한국에서 출발한 지 무려 5일 만이다. 강 의원이 아이티 현지에서 생생한 구호활동기를 조인스닷컴에 보내왔다. 다음은 강 의원의 글 전문.

<강용석 의원의 글 전문>
포르토프랭스는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조금만 늦게 나와도 교통정체로 한두 시간씩 서있는 것이 예사입니다.

저희도 오늘은 오전 7시부터 소방구조대와 함께 방역작업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일찍 구호대의 숙소로 향했습니다. 6시 40분쯤 도착해서 의료진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앞에 서성대고 있자니 간호사 한 분이 밥과 곰탕국물을 들통에서 떠줍니다.

도미니카에서 방역기가 도착하긴 했는데 '붕' 소리가 나면서 연기가 나는 것이 아니고 과수원에서 사용하는 펌프식입니다. 아무래도 아침부터 방역을 시작하긴 힘들 것 같아 의료진을 따라 진료소 설치하는 장소로 갔습니다.

진료소는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축구장에 만들예정입니다. 축구장이지만 지진으로 담이 많이 무너지고 운동장의 일부에 이재민들이 천막을 치고 있습니다. 이재민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은 대통령 궁과 소나피 지역 사이지만 경호 인력이 확보되지 않은 우리 의료진의 사정상 환자가 많이 몰려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이 장소를 선택했답니다.

지원인력이 따로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 의사, 간호사와 함께 진료소 설치에 나섰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격·오지 진료 활동을 해왔고 해외긴급진료도 자주 해서인지 진료소를 간편하게 설치할 수 있는 장비가 준비되어 있더군요.

저희 구호팀 6명이 본격적으로 할 일을 만났습니다. 천막을 10여 개 치고 의료단장의 지시에 따라 간이침대 서너 개와 테이블 10여 개를 조립해서 배치했습니다. 간이화장실을 만들어 세우고 진료소 주위에 노끈과 말뚝으로 펜스를 둘러쳤습니다. 테이블 위에 간호사들이 능숙한 솜씨로 의약품을 배치하는 것으로 진료소 설치 작업이 완료됐습니다. 저희가 준비해 간 물 10여 박스도 본부석 옆에 쌓아 두었습니다.

진료소는 ▲환자들의 대기 장소 ▲간호사들의 예비 진료 및 차트 작성 장소 ▲의사들의 진료 및 처방 장소 ▲간단한 처치나 수액공급을 하는 장소 ▲약품 조제 및 투약 장소 ▲본부 등 크게 여섯 장소로 이루어집니다. 영어와 크레올어가 되는 현지인 통역 4명은 주로 예진과 진료 및 처방 장소에 배치했습니다. 의약품은 전부 한국에서 공수해 온 것인데 긴급구호인지라 소독제, 항생제 등의 기초의약품이 대부분입니다. 또 가능한 한 우리나라 제약회사가 생산한 약품으로 선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다만 약품 중에는 상당히 고가인 것들이 있어 이를 아는 일부 현지인들이 약탈할까봐 걱정이 된다고 합니다. 내일 한국에서 보낸 20만불 상당의 의약품이 도착하면 현지에 온 연세대, 고려대 의료진과 분배하여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진료소 설치가 마무리되자 간단히 진료소 개소식을 했습니다. 구호단장이 저보고 격려사를 해달라고 해서 비록 나흘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최선을 다해 진료해서 아이티 현지인들에게 기억에 남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짧게 말했습니다.

곧이어 주의사항 전달이 있었습니다. 아이티는 인구 900만 중 30만 명이 AIDS환자이므로 환자를 접촉할 땐 반드시 장갑을 끼라, 환자와 트러블이 생기면 대응하지 말고 즉시 본부에 알려 달라, 의료진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진료소를 폐쇄하고 철수하겠다는 내용입니다.

[강용석 의원실 제공]
진료가 시작되자 저희 구호팀은 펜스경계에 2명, 환자 대기 장소에 2명, 의료진의 심부름에 1명이 배치됐고 저는 주위에 몰려 든 아이들과 놀아 주는 일을 맡았습니다. 처음엔 초콜릿을 나눠 주다가 물을 달라고 해서 물을 한 병씩 나눠 줬더니 갑자기 아이들이 수십 명 몰려들어 다투는 바람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아이티 정부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으면 구호물자의 배분을 아이티 정부가 담당하면 됩니다. 그런데 아이티 정부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지방까지 적정하게 구호품을 배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뉴스 화면에서 본 것처럼 미군들은 헬기를 타고 가며 구호품을 떨어뜨리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구호품을 서로 차지하려고 이재민들 사이에 약육강식의 처참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UN군이 치안을 확보하고 엄격한 절차에 따라 구호품을 도시와 지방에 적절하게 배분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이런 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항에는 전 세계에서 들어 온 구호물품이 쌓여 가는데도 식량과 의료서비스의 부족으로 현지인들의 피해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대기환자들의 줄이 계속 길어집니다. 지진과 같은 재난상황에서는 긴급하게 피신하느라 신체의 여러 부위에 찢기고 갈라지는 외상을 입기 쉽습니다. 상처를 소독하고 찢어진 부위는 꿰매고 항생제를 쓰면 치료될 것을 변변한 약품도 없어 병이 커집니다. 처치장소에서 지켜보니 지진 이후로 한 번도 치료를 받지 못해 상처에서 진물이 흐르고 벌레가 꼬이는데도 속수무책으로 있던 환자들이 꽤 있습니다. 처음엔 통역요원의 부족을 걱정했는데 상당 수 환자들의 경우 척 보면 알 수 있어 말이 필요 없습니다.

진료 시작 후 두 시간이 지나자 치료환자가 40명을 넘어 섰고 처음에 준비해 온 거즈가 다 떨어졌습니다. 급히 숙소로 가서 거즈를 보충해 왔습니다. 원래는 한 시간 정도 숙소에 들러 점심을 하면서 좀 쉬려 했지만 환자들이 계속 대기하고 있어 점심시간 없이 세시까지 진료하기로 했습니다. 결국 두시쯤부터 더 이상 환자를 받지 않았지만 대기환자까지 진료를 마치고 나니 200명이 넘는 환자를 봤고 세시 반이 넘어버렸습니다. 일본이나 프랑스 의료진은 환자 수를 처음부터 제한해서 받는다던데 인정 많은 우리 의료진은 기다리던 환자를 돌려보내는 것을 미안해합니다. 의료진에겐 첫날부터 무척 고단한 하룹니다. 점심도 못먹고 환자를 돌보느라 시장한 의료진은 먼저 숙소로 가게 한 후 코이카 단원들과 함께 천막을 접고 집기를 정리하고 나니 네시 반입니다.

코이카 단장과 작별인사를 하고 차량에 올라 다시 산토도밍고로 향했습니다. 열 시간을 가야 하니 새벽에나 도착하겠죠. 포르토프랭스 시내에서 차가 막혀 서있는데 크고 하얀 차량이 ‘한국 교회가 주는 사랑의 구호품’이라는 표지판을 붙이고 지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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