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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판결의 길은 득도의 길과 같은데…

어느 작은 산촌 마을에서 야밤에 사달이 일어났다. 60대 노인이 한 손에는 과도, 다른 손에는 손도끼를 들고 이웃집으로 쳐들어갔다. 자기 아내를 내 놓으라고 소리치며 집 주인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다행히 집 주인이 신속하게 피했다.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은 채 소동은 일단락됐다. 사실 노인은 아내가 이웃집 남자와 불륜행각을 벌인 사실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바람난 아내는 몇 달 전 가출해 행방이 묘연했다. 그러다 그날 갑자기 귀가했다. 노인과 아내는 “그간의 허물을 덮을 테니 앞으로 마음잡고 잘살아보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또 밤이 되자 아내는 밀회를 위해 밖으로 나갔다. 결국 노인은 살인미수죄로 구속됐다. 그는 법정에서 잘못을 진실로 뉘우치는 듯했다. ‘아내의 불륜 때문에 홧김에 그런 것’이라며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다.



사건의 동기나 피해 결과를 감안하면 다른 살벌한 강력범죄 사건들과 비교해 볼 때 충분히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었다. 피해자 측에서도 미안함 때문인지 노인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을 딱히 원치 않는 눈치였다. 석방을 고려해 볼 수도 있었다.



이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최종 판결을 준비하던 도중 석방에 앞서 꼭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한밤의 침입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사전 정지작업이 필요했다. 이제 노인의 아내는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작은 마을이 평온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조금 늦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부부생활의 전망, 마을주민의 의견 등을 다시 따져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재조사 과정에서 마을 이장이 보낸 편지 한 통이 재판부에 전달됐다. 편지는 그 전에 알고 있던 전제와 판이하게 다른 사정을 전했다. 노인의 아내는 오래전에 가출해 마을로 되돌아온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아내와 이웃집 남자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불륜 운운은 단지 치매 노인의 망상이요,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평소 이유 없는 행패를 일삼는 노인이 형기를 마치고 마을로 다시 돌아오는 것에 주민들이 크게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으로 편지는 끝이 났다.



어찌된 일일까. 그동안 이루어진 여러 가지 조사는 이런 기본적 전제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노인의 진술에만 의존한 것이었다. 재조사 결과 편지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다. 노인은 과거 머리를 크게 다친 일이 있었다고 했다. 점점 자신의 정신이 온전치 못해짐을 시인하면서 민망해했다. 정밀 진단 결과 기질성 뇌손상에 의한 정신질환에 빠져 있음이 밝혀졌다. 선처나 석방이 문제가 아니었다. 징역형을 선고한다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노인에게, 또 마을 주민들에게 정작 필요한 일은 적절한 치료대책을 강구해 주는 것이었다. 더 이상 마을의 평온을 깨는 걸 막아야 했다. 핵심을 놓친 채 피상적 증거만으로 오도된 결론을 내릴 뻔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재판은 인간의 행동과 태도를 이해해가는 작업이다. 인간과 그 주변의 문제를 뿌리 속까지 투철하게 파고드는 열정과 용기가 필요하다. 인생의 문제는 때론 불합리하고 때론 억지스러울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부조리를 초래한 근원에 대해 감도 높은 감수성으로 시정(是正)의 실마리를 예민하게 집어내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때 비로소 공감과 승복의 치유책이 마련될 것이다.



종군 사진가 로버트 카파는 ‘만약 당신이 찍은 사진이 좋지 않다면 그것은 당신 자신이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판사도 ‘인생만사 고해지경’ 중에 재판이라는 이름의 사진을 찍는다. 산적한 업무 앞에서 투철함을 덮고 자족의 기만에 빠져 더 깊이,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이제 재판은 그만을 심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의 투철함을 재는 잣대가 돼 나를 아프게 채찍질한다. 재판은 나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을 비추어주는 거울이 돼 고스란히 나를 재단한다. 좋은 재판을 하려면 득도를 위한 장인의 수련이 필요하다. 그것이 ‘재판의 도(裁判의 道:Art of Judging)’이리라.



노인의 병이 완치되려면 앞으로도 많은 수고가 필요할 것이다. 부디 그 재판이 그들의 삶과 그들이 어울려 사는 마을에 조금이나마 평온을 가져다 주고 상처를 치유할 방책이 되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요즘같이 재판을 놓고 큰 논란이 벌어진 때도 드물다. 재판을 생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으로서 나와 나의 일을 겸허히 돌아보는 기회로 삼고 싶다.









김상준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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