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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사막 남극을 찾아서] ⑮세종기지의 수호신 故 전재규 대원

세종기지의 수호신 故 전재규 대원의 의로운 희생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가 세워진다. 얼마 전에는 故전 대원의 흉상이 세종기지에 첫 발을 디디는 사람들이 한눈에 볼 수 있는 생활동 앞으로 옮겼다. 전 대원의 흉상 옆에는 태극기가 달린 국기봉을 비롯해 세종기지 표지석, 솟대, 장승과 함께 세워졌다.



고인은 지난 2003년 12월 7일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블리자드(눈섞인 바람) 때문에 길을 잃고 세종기지 인근 섬에 비상 상륙한 3명의 대원을 구하기 위해 기지를 나섰다가 생명을 잃었다. 그와 월동생활을 했던 대원들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그를 그리워한다. 필자는 고인과 월동생활을 했던 대원들 가운데 2명과 함께 세종기지에 들어왔다. 그 중 한 명은 실종됐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대원 A씨다. 다른 대원들은 A씨 앞에서는 좀처럼 고인의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슬픈 마음을 헤아리기 때문이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동료 대원에 대한 미안한 심정이야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A씨는 세종기지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강하다. 필자와 함께 세종기지에 들어온 이후 그는 새벽부터 자정이 넘도록 세종기지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핀다. 작업을 할 때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꼼꼼히 현장을 챙긴다. A씨는 특히 故 전재규 대원과 관련된 일은 직접 손을 걷고 몸을 놀린다. 흉상을 옮길 때도 그의 얼굴엔 혹시나 손상될까봐 하는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동상 하단에 추모사가 담긴 동판을 닦을 때도 다른 대원을 시키지 않고 그가 손수 닦았다. 이번에 세워질 故 전재규 대원의 추모비도 그가 강력하게 건의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세종기지에 들어온지 한참 뒤 A씨가 들려준 사고 당시의 상황은 이랬다. 그를 포함한 3명의 대원은 중국 장성기지에서 부족한 물품을 구해 돌아오는 길에 블리자드를 만났다. 멀쩡하던 하늘이 갑작스럽게 어두워지더니 눈이 섞인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 다녀본 뱃길이었지만 불과 몇 미터 앞을 볼 수 없는 블리자드는 그의 감각을 마비시켰다. 길을 잃어버린 대원들은 보트가 뒤집히는 것을 피히기 위해 가까운 해안가로 대피하기로 결정했다. 어림짐작으로 가까운 섬을 향해 키를 돌렸다. 하지만 강한 파도는 해안가 바로 근처서 보트를 내동댕이쳤다. 거센 파도는 대원 한 명을 5~6미터를 날려 바위가 많은 해안에 떨어뜨렸다. 다행이 눈이 쌓인 곳이어서 다치지는 않았다. 파도는 다른 대원들을 해안가 얕은 바닷물에 빠뜨렸다. 대원들은 남극의 차가운 바닷물에 몸이 젖었다. 구명복을 입었지만 바닷물을 완벽하게 막아주지 못한 탓이었다.



실종된 대원들은 섬에서 다시 생각하기 싫은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끔찍한 3일을 보내야 했다. 블리자드가 3일간이나 계속됐기 때문이다. 대원들은 옷이 젖어 생긴 저체온증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했다. 추위와 배고픔으로 인한 졸음도 밀려왔다. 대원들은 살아남기 위해 졸음으로 힘겨워하는 서로를 끊임없이 깨워야만 했다. 날이 개면 기지에서 구조팀을 보내줄 것이라는 강한 믿음으로 추위와 배고픔과 졸음을 견뎌냈다.



세종기지에서도 실종대원을 구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날이 좋지 않아 가까운 섬에 비상 상륙하겠다는 마지막 교신을 듣고 부랴부랴 구조팀을 꾸렸다. 한여름이지만 거센 블리자드가 체감온도를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뜨려 생명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故 전재규 대원이 포함된 구조팀을 실은 보트는 실종대원을 찾기 위해 바다로 나아갔다. 거센 파도 앞에서 보트는 가랑잎처럼 흔들렸다. 그러다 故 전재규 대원이 바닷물에 빠졌다. 가랑잎처럼 흔들리는 배안에서 통신장비를 지키느라 보트를 꽉 잡지 못해 일어난 사고였다. 실종대원들과의 교신을 위해서는 통신장비를 안전하게 지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의 시신은 사고가 발생한지 한참 후에야 차가운 남극의 바다에서 인양됐다. 남극 세종기지가 설립된 이후 발생한 첫 인명사고의 전말은 이랬다.



故 전재규 대원은 머나먼 타향 남극 세종기지에서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어버린 유일한 대원이됐다. 하지만 그의 의로운 죽음으로 실종된 3명의 대원은 동상에 걸렸지만 안전하게 기지로 돌아왔다. 자식을 가슴에 품은 故 전재규 대원의 부모도 의로운 희생으로 대원들을 지켜낸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한다.



세종기지에서 1년을 보내는 월동대원은 물론이고 세종기지를 찾는 이들은 매년 12월7일이면 故 전재규 대원의 흉상 앞에 모여 그의 희생을 기린다. 고인은 부모, 누이동생이 살고 있는 고국의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 하지만 마리안 소만을 바라보는 그의 흉상은 부끄러운 듯 작은 미소로 세상 끝에서 진리 탐구에 열심인 과학자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남아있다.





박지환 자유기고가 jihwan_p@yahoo.co.kr



*박지환씨는 헤럴드경제, 이데일리 등에서 기자를 했었으며, 인터넷 과학신문 사이언스타임즈에 ‘박지환 기자의 과학 뉴스 따라잡기’를 연재했었다. 지난 2007년에는 북극을 다녀와 '북극곰도 모르는 북극 이야기'를 출간했다. 조인스닷컴은 2010년 2월까지 박씨의 남극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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