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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세계대전 묵시록

중국이 유전 확보를 노려 남중국해에 대한 주권을 선포한다. 침공당한 베트남은 미국에 지원을 요청한다. 미국이 남중국해에 항공모함을 배치하자, 중국은 미국을 공습한다. 이 틈을 타 인도는 파키스탄을, 아랍국가는 이스라엘을 공격한다. 중립을 지키던 일본은 중국 쪽으로 기울어 미국과 교전한다. 러시아는 반(反)중국 대열에 합류해 시베리아로 진군한다. 중국은 보스니아와 알제리 등에 핵미사일을 배치하고 유럽의 중립을 강요한다. 동유럽에서는 인종 폭동이 재연되고, 알제리의 미사일이 프랑스를 강타함으로써 세계는 핵전쟁에 돌입한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새뮤얼 헌팅턴이 1996년 『문명의 충돌』에서 그린 21세기 묵시록이다. 세계적인 석학이 한 얘기니 망발로 치부할 수도 없다. 스스로도 “황당무계한 시나리오로 받아들여진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짐짓 능청을 떨다가도 그럴 개연성은 상당하다고 강조한다. 전쟁의 원흉은 중국이다. “중국이 21세기 초반의 국제 안정에 막대한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중국이 패권국으로 떠오르는 건 미국 국익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도 했다. 중국에 대한 반감이다. 하지만 눈길을 가장 끄는 대목은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시기다. 헌팅턴은 바로 올해로 가상했다.



그 때문인가. 신년 벽두부터 미국은 중국과 동시다발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중국산 철강제품에는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고 대만에는 무기판매를 승인했다. 이 바람에 중국이 항의 표시로 지상 미사일 요격실험을 강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동안 자제해오던, 전가의 보도인 인권문제도 끄집어냈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중국 인권운동가를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최근 뜨겁게 붙은 구글 분쟁도 따지고 보면 인권 문제다. 인권운동가의 e-메일 계정이 해킹당한 게 발단이라서다. 검열을 위해 소스코드를 공개하라는 요구를 구글이 거부하면서 양국 정부 간 분쟁으로 번졌다. 미 국무장관은 아예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인터넷 자유를 실현하겠다”며 대놓고 중국을 공격한다. 며칠 전에는 대니얼 로드릭이라는 하버드대 교수가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민주주의와 인권은 국제 규범으로서 빛을 잃을 것”이라며 겁주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올해 가장 위협적인 리스크 요인은 미·중 갈등일 것만 같다.



조짐은 이렇듯 심상찮지만 헌팅턴의 문명 충돌이 일어날 때는 분명히 아닌 것 같다. 아직은 두 나라 모두 협력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어서다. 적어도 경제 분야는 그렇다. 중국은 이미 미국에 ‘다 걸기’한 상태다. 2조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 대부분이 달러다. 미국 국채도 전체 발행액의 12%나 갖고 있다. 미국이 흔들리면 자신도 위험해진다는 걸 모를 리 없다. 또 중국이 엄청 커졌다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리 높게 평가할 일도 아니다. 대부분의 수출이 다른 나라에서 부품과 소재를 수입해 조립한 가공무역 형태라서다. 미국 역시 중국의 협력이 절실하다. 중국이 달러와 국채를 내다 팔기 시작하면 미국은 재앙이다. 달러 위기와 재정 위기가 동시에 닥친다.



하지만 이해타산에 따른 협력은 늘 일시적이다.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협력은 붕괴된다. 1930년대 대공황 때처럼 수년 뒤 더블 딥(이중침체)이 일어난다면 그럴 것이다. 달러 가치가 폭락하면 중국은 달러와 국채를 내다팔 것이다. 세계가 더 큰 쇼크에 직면하게 되면 헌팅턴의 묵시록이 실현될 수도 있다. 그런데 2012년께 더블 딥이 온다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예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은행 위기나 재정 위기에서 더블딥이 시작된다는 일부 주류 경제학자 역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으니 큰일이다.



너무 비관적이라는 지청구를 들을 것 같다. 하지만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도 염두에 두면서 대비책을 만들어 둬야 하지 않을까. 헌팅턴 같은 석학조차 묵시록을 설파한 마당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주요 20개국(G20) 총회를 개최하면 세계의 경제 주역이 된다는 자화자찬이나 하고 있고, 온 나라는 세종시·4대 강·법원 판결을 놓고 비생산적인 논쟁으로 날을 지새우고 있다. 100년 전 이 땅의 모습을 보는 듯하니 이 일을 어쩌랴.



김영욱 (young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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