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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와 춤을]① 멀리 있으면 근심하고, 가까이 있으면 짜증내는 법

“임금을 옆에 모시는 것은 호랑이를 옆에 모시는 것과 같다(伴君如伴虎)”라는 말이 있다. 추상같은 황제 모시기의 어려움을 토로한 말이다.

중국에는 각양각색의 ‘용인술’이 전한다. 게다가 중국은 진시황이래 공산당까지 ‘황제’가 지배해왔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승상부터 신참 벼슬아치까지 황제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황제가 신하들을 다루는 용인술은 흔하다. 그러나 황제 모시는 비법을 다룬 책은 드물다. 이에 서핑차이나 블로그를 통해 ‘황제와 춤을’시리즈를 연재한다. 당신의 상사를 황제로 만들고 싶은 이들의 일독을 권한다.





중국은 고대에 수천년에 걸친 제왕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어느 시대건 수많은 사람들이 황제를 알현해 황제의 은총을 받고자 애썼다. 만일 황제를 모실 수 있다면 온종일 황제를 위해 봉사했다. 이는 가문의 영광이자 이 세상에 태어나 더 이상 바랄 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자.옛 속담에 이르길 “임금을 옆에 모시는 것은 호랑이를 옆에 모시는 것과 같다(伴君如伴虎)”고 했다. 황제의 권력은 실로 하해(河海)같아 그 크기를 추측하기 어렵다. 행여 실수라도 하면 사단이 난다. 이 때문에 황제를 모시는 일군의 사람들에게 ‘황제다루기’은 반드시 익혀야할 필수 학문이었다. 이에 능통하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승진과 재물이 따라왔다. 혹시나 실수라도 할라치면 낭패를 당하거나 심한 경우 목숨까지 내놓아야했다. 앞날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요긴한 학문이요, 한편으로는 인명과도 관련된 중요한 일이니 열심히 배우기 바란다.



일반론적으로 황제와 멀어지면 자신의 힘이 약해지고 가까워지면 강해졌다. 그러나 어떻게 황제의 점수를 딸 것인가? 여기 걸출한 인물이 한 명 있다 치자. 명성은 높으나 황상(皇上)이 직접 본 적이 없다. 황상이 오매불망 이 자의 이름을 거론한다. 드디어 그 사람이 황상을 알현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한 번 쓰고 멀리 내친다. 실로 이런 사람이 많다. 왜 그럴까?



서한(西漢)의 가의(賈誼, BC 200~BC 168)는 글재주면 글재주, 식견이면 식견이 모두 출중한 인재였다. 그의 『과진론(過秦論)』은 진나라가 망한 뒤 이유를 하나하나 추적한 불후의 명저였다. 한 문제(文帝)는 매일같이 가의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며 그의 이름을 입에 달고 다녔다. 하지만 가의가 황제의 부름을 받아 알현했음에도 그에게 좋은 일은 생기지 않았다. 관직도 오르긴커녕 갈수록 별볼일 없이 추락했다. 그를 내쳤던 황제가 다시 불러 그에게 나랏일 대신 귀신 이야기나 해보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재주 많은 가의는 이 때의 실망이 골수에 파묻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으로 숨을 거뒀다.



남북조시대 이덕림(李德林, 531~591)이라는 북제(北齊)사람이 있다. 문장이 좋고 정치 수완과 군사 재능도 출중했다. 북주(北周)의 대신이었던 양견(楊堅)은 일찍부터 그를 알아봤다. 북주가 망하고 북제가 들어서자 양견은 그를 구슬려 관직에 앉혔다. 양견이 정변을 일으켜 수문제(隋文帝)로 등극하는데 이덕림이 큰 공을 세웠다. 후에 양견을 도와 강남의 진(陳)나라를 멸망시켰다. 양견은 천하를 통일한 후에 이덕림에게 금은보화를 하사했다. 전 중국 사람들이 그를 모두 흠모했다. 이처럼 큰 공신이자, 재주꾼이었던 이덕림은 황제의 측근이 됐지만 뜻밖에 10년 동안 승진도 안되고 월급조차 오르지 않았다. 결국 ‘공무 비리 혐의’를 받고 추방당하고 말았다.



이들은 물론 운세가 좋치 않았다. 그러나 엉망은 아니었다. 진시황이 6국을 통일하기 전에 자신이 한(韓)나라의 한비자(韓非子)를 신하로 두지 못함을 탄식했다. 한비자가 실제로 진나라에 찾아왔으나 도리어 그는 하옥돼 죽고 말았다. 이처럼 황제와의 ‘관시(關係)’를 잘못맺으면 목숨마져 빼앗기고 말았다.



황제는 하늘아래 가장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 뿐 아니라 자기가 가장 잘 났다고 생각하는 사내다. 게다가 하늘아래 가장 탐욕스럽기까지 하다. 좋은 물건은 모두 자기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재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가의, 한비자, 이덕림 모두 외지나 심지어 외국에서 불러왔다. 황제에게 그들은 일찍와도 걱정, 늦어도 걱정이었다. 이들이 왜 나와 함께하지 않는가? 그러나 옆에 두게 되면 곧 시기심이 생겼다. 이놈 대단하구나! 어라 공부도 좀 했네. 그럼 내가 어디에 쓸까? 네가 이렇게 능력이 있으면 지금은 나를 도울 수 있지만 훗날 나를 위해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속 깊이 품고 있으니 재주꾼들이 잘 지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소동파(蘇東波)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가의가 몰락한 것은 당시 주발(周勃), 진평(陳平) 같은 대신들과 관계를 잘 맺지 못해서라고. 이는 틀린 해석이다. 만일 황상의 마음에 어떤 언질이 없었다면 다른 이들이 위해를 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주발 자신도 후에 한문제에 의해 옥고를 치른다. 가의와 주발의 관계는 사실 나쁘지 않았다. 황상의 두려움이 문제였다. 너희 둘이 하나는 文, 하나는 武를 갖췄으니 무얼 도모하려는건지 의심했던 것이다.



여기서 황제와의 관계를 잘 처리한 사마상여(司馬相如, BC 179~BC 117)의 예를 보자. 이 재주꾼 역시 이덕림과 비슷한 식으로 황제와 만났다. 한무제가 사마상여를 보자 “내게 어찌 그동안 이런 인재가 없었단 말인가?”라고 탄식할 정도였다. 사마상여는 융통성이 뛰어났다. 먼저 자청해 외지서 근무했다. 황제의 시비판단을 면한 것이다. 돌아온 뒤에는 ‘태산봉선(泰山封禪)’이라는 황제의 권위를 살려주는 대대적인 문화 행사를 제안해 한무제의 비위를 맞췄다. 그는 말년에도 고급 퇴직 간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황제란 인재를 대할 때 멀리 있으면 근심하고 가까이 있으면 짜증내는 법이다. 이는 황상의 본성이다. 이를 알고 있다면 처세술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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