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50>김승옥과 ‘李箱문학상’

김승옥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은 1960년대의 대표적 소설가였다. 그에게는 ‘감수성의 혁명’ ‘전후 문학의 청산’ 따위의 수식어들이 늘 붙어 다녔다. 하지만 ‘월간중앙’ 69년 1월호에 단편소설 ‘야행’을 발표하고 난 뒤 그는 긴 침묵에 빠져들었다. 60년대의 8년 남짓 동안 그가 남긴 소설은 중·장편 8편, 단편 40여 편에 불과했다. 어떤 사람은 그의 침묵을 ‘숨 가쁘게 달려온 60년대를 정리하는 숨 고르기’의 의미로 파악했고, 또 어떤 사람은 ‘스스로를 극복하지 못하는 내면적 갈등’으로 파악했다.

60년대 후반에 이르면서 김승옥은 무슨 까닭인지 소설보다는 영화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67년 자신의 초기 작품인 ‘무진기행’을 ‘안개’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로 만든 것이 시발점이었다. 뒤이어 김동인의 단편소설 ‘감자’를 시나리오로 만들어 직접 연출까지 맡았다. 그 이듬해엔 이어령의 소설 ‘장군의 수염’을 각색한 시나리오가 68년 대종상 각본상을 수상하면서 김승옥은 영화계의 주요 인사로 떠올랐다. 문단에는 얼굴을 잘 내밀지 않았고 주로 영화계 사람들과 어울렸다. 영화의 소재 찾기에 혈안이 되어 문인들을 만나도 ‘영화로 만들 만한 작품을 추천해 달라’고 떼를 쓰는 게 고작이었다.

김승옥을 좋아한 문인들이나 그의 작품을 사랑한 독자들은 그런 김승옥을 안쓰러워했고, 혹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70년대 초 시나리오의 제목을 놓고 예술문화윤리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김승옥과 방송작가 김수현 간에 표절 여부의 공방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김승옥을 딱하게 생각했다. 그 경위는 이렇다. 김승옥은 60년대 막바지 ‘주간 여성’지에 ‘보통여자’라는 제목의 다소 통속적인 내용의 소설을 연재했고, 연재가 끝난 뒤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 위해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했다. 그 무렵 김수현의 ‘보통여자’라는 제목의 TV연속드라마도 방영되고 있었다. 김수현 역시 방송이 끝난 뒤 영화사의 주문으로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먼저 ‘예륜’에 심의를 신청한 것은 김수현의 ‘보통여자’였다. 당시 영화를 제작하려면 문화공보부에 신고하도록 돼 있었고, 그에 앞서 ‘예륜’의 시나리오 심의 절차를 거쳐야 했다. 김수현의 ‘보통여자’는 별문제가 없어 쉽게 심의를 통과했는데 뒤이어 김승옥이 시나리오 ‘보통여자’의 심의를 신청하려다 이미 김수현의 ‘보통여자’가 심의를 통과한 사실을 발견하고 이의를 제기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예륜’으로서는 똑같은 제목의 시나리오 두 편을 동시에 통과시킬 수 없는 입장이었다. 발표 시기로 보면 김승옥의 ‘보통여자’가 1년쯤 앞섰기 때문에 ‘기득권’을 내세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뒤 김수현의 ‘보통여자’가 여러 달 방영되고 있는 동안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김승옥이 시나리오 ‘보통여자’의 제목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지 않으냐는 견해가 보편적이었다. 난처해진 ‘예륜’의 조연현 위원장이 양측 영화사 관계자들을 불러 ‘김승옥의 보통여자’ ‘김수현의 보통여자’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다시 심의를 받으면 어떻겠느냐는 중재안을 내놓았지만 양측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다가 두 영화사 간에 모종의 합의가 이루어졌는지 결국 김승옥의 ‘보통여자’가 심의 신청을 철회함으로써 일단락됐지만 이 일로 인해 김승옥의 이미지는 많이 구겨졌다. 그의 소설가적 재능을 아까워한 많은 문인은 이 일을 계기로 김승옥이 다시 소설에 전념해 주기를 바랐다. 특히 ‘문학사상’ 주간을 맡고 있던 이어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김승옥을 다그쳤다. 이어령은 김승옥이 대학 1학년 때 교양국어를 강의했던 스승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승옥은 그 뒤에도 조해일의 ‘겨울 여자’를 시나리오로 만드는 등 몇 년 동안 영화에서 발을 빼지 못했다.

마침내 김승옥의 재기 작품이 발표되었다. ‘문학사상’ 77년 7월호에 실린 중편소설 ‘서울의 달빛 0章’이었다. ‘0’이란 숫자는 연작 형태로 계속 써지게 될 작품의 프롤로그임을 내비치고 있었다. 62년 데뷔한 후 8년 만에 붓을 꺾은 김승옥이 다시 8년 만에 소설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 작품은 ‘문학사상’이 제정한 ‘이상문학상’의 제1회 수상작으로 결정돼 김승옥의 재기를 더욱 뜻깊게 했다. 기자도 그 작품을 서둘러 찾아 읽었다. 한데 읽던 도중 기자는 깜짝 놀랐다. 그 줄거리는 한동안 연예계에 은밀하게 나돌던 어떤 스캔들과 매우 닮아 있었던 것이다. <계속>




중앙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문학 평론가로 추리소설도 여럿 냈다. 1960년대 문단 얘기를 다룬 산문집 『글동네에서 생긴 일』을 펴냈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