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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벨트는 아시아 과학의 허브 … 우수 인재에 성패 달려

롤프 디터 호이어 유럽입자물리연구소 사무총장
민동필 교육과학기술부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

‘거대과학’이란 말과 함께 그 물결이 거세다. 유럽에 짓는 국제핵융합로(ITER), ‘신의 입자’ 힉스를 찾으려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강입자가속기, 미국의 달 탐사 같은 거대 과학 프로젝트를 일컫는다. 한국에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사업과 관련해 중이온가속기 건설이 추진된다. 기초과학을 키워 우주의 기원을 알아내고 인류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것이다. 물리학계의 세계적 석학인 롤프 디터 호이어(사진 왼쪽) 유럽입자물리연구소 사무총장과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기초기술연구회의 민동필(사진 오른쪽) 이사장이 21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만나 거대과학과 기초과학 진흥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사회=세계적으로 거대과학의 바람이 거세다. 거대과학은 왜 하나.

▶민동필 이사장=기초과학은 경제발전의 토대가 된다. 인류의 근원적 의문, 우주·물질·삶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에 답하는 것이 과학의 생명력이다. 이를 위해 기초과학이 시작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지식이 늘어나고 문명이 생겼다. 과학의 기반은 호기심이다.

▶호이어 총장=기초연구는 응용연구의 기반이다. 가령 CERN은 좀 더 많은 국가에서 다양한 정보를 통합하려고 월드와이드웹(WWW)을 개발했다. 이것이 지금 세상을 바꾸는 인터넷의 핵심이 됐다. 이런 식으로 기초연구를 하면 응용연구가 따라올 수밖에 없다. 휴대전화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같은 편리한 도구도 물리학의 기초연구가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사회=거대과학을 정의한다면.

▶호이어=수많은 인재가 한데 모여 연구하는 것이 거대과학이다. 거대과학의 하나인 입자물리학은 극도로 미세한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를 위해 가속기 같은 강력한 도구가 필요하다.

▶민=인간 지놈지도 프로젝트도 거대과학의 중요한 분야다. 문제가 점점 복잡해지고 정교해질수록 다양한 분야에 많은 전문가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한국에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건설하고 있다. 이를 거대과학이라고 할 수 있나.

▶민=우리 입장에서 거대과학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 CERN만큼 거대과학은 아니지만 수백 명의 과학자가 필요한 거대과학이 될 것이다.

▶호이어=과학벨트에 건설하는 중이온가속기 역시 거대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수백 명이 하나의 주제를 위해 연구하기 때문이다. 과학벨트 전체를 거대과학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기초과학을 진흥시키는 커다란 계기가 될 것이다.

▶사회=한국도 과학벨트 사업을 하면서 17조원에 가까운 예산을 들여 거대한 가속기와 기초연구원을 건설할 계획이다. 선진국도 아닌 나라에서 꼭 필요한가.

▶민=한국은 지금까지 외국에서 개발된 지식을 들여와 상품화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기 쉽지 않다. 기술을 가져올 곳도, 줄 사람도 많지 않다. 필요한 지식을 스스로 개발해야 하는 시기다. 과학벨트에 총 16조5000억원의 투자를 하게 되는데, 50% 정도는 연구개발(R&D) 몫이고 가속기엔 3조5000억원이 들어간다. 우리나라가 다시 한번 도약하려면 과학벨트가 꼭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지식이 나올 것이다.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이 함께 융합하면서 우리에게 큰 계기를 안길 것이다.

▶호이어=과학벨트의 영문 첫 글자 ‘I’는 소외(isolation)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international)이라는 걸 되새길 필요가 있다. 국제화가 필수다. 기초연구원이 생긴다고 들었는데, 이를 통해 지식이 생길 뿐 아니라 지식이 아시아와 세계로 퍼져갈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인 안목도 필요하다. CERN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0년도 되지 않은 1954년에 기초과학을 위해 만들었다. 당시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결국 CERN을 통해서 기초과학이 급속히 발달할 수 있었다.

▶사회=과학벨트의 성패는 무엇에 달려 있나.

▶호이어=모든 건 사람에게 달려 있다. 아이디어와 비전과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과학벨트가 성공할 것이다. 정부의 지속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에게 당부하건대 장기적 안정적인 지원이 있어야 결과물을 볼 수 있다.

▶민=인재를 끌어들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연구를 위한 기구가 있느냐, 투자가 잘되느냐가 핵심이다. 과학자들의 독립과 자유를 보장해줄 제도와 연구환경이 보장돼야 한다.

▶사회=과학벨트가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 CERN처럼 유럽, 나아가 세계적인 연구단지가 될 수 있을까.

▶호이어=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CERN 역시 그런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려면 CERN과 과학벨트 간에 유기적인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 나 역시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 CERN과 한국의 협력 증진을 위해 두 가지 과제가 있다. 우선 한국의 중이온가속기 같은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고, 둘째는 한국이 CERN의 준회원국이 되는 것이다.

▶민=과학벨트는 아시아의 단합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국경과 정치·환경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라는 ‘언어’다. 과학벨트를 통해 아시아 각국 간 협력과 선의의 경쟁관계를 서로 유지하도록 할 것이다.

▶사회=한국과 과학기술 수준은.

▶민=‘한국의 과학’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가 필요하다. 아직은 그런 것이 별로 없다. 대한민국 과학의 특징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각 분야의 과학수준은 비교적 높은 편인데 세계적으로 자신 있게 드러낼 것이 없다. 한국의 공공연구소를 평가한 국제전문가들의 이런 지적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호이어=한국의 과학은 국제협력뿐 아니라 국내협력도 중요하다. 경쟁을 잊어서도 안 된다. 이를 위해 연구를 가능하게 할 장비와 장비를 가진 랩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과학벨트를 계기로 거대과학이 본격 추진되길 기대한다.

사회·정리=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롤프 디터 호이어(61)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사무총장=세계 입자물리학 실험을 선도하는 연구자. CERN의 ‘신의 입자 힉스’ 탐색을 위한 핵심 시설인 강입자가속기(LHC) 건설에 크게 기여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대 물리학과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물리학 박사 ▶독일 전자싱크로트론연구소(DESY) 연구부장 ▶독일 함부르크대 교수

◆민동필(63)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세종시 수정안의 핵심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개념을 구상했다. 이를 이명박 대통령 후보 시절에 대선 공약으로 만들었다.

▶서울대 물리학과 ▶프랑스 파리 11대학 물리학 박사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한국학술진흥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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