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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값 떨어져도 기업 이익 키코는 합리적인 상품”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키코 관련 공판에서 스티븐 로스 미국 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왼쪽)가 은행 측의 증인으로 나섰다. 앞서 로버트 엥글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석좌교수(오른쪽)가 기업 측 증인으로 나선 바 있다. [블룸버그·중앙포토]
기업과 은행이 맞붙은 키코(KIKO·통화옵션파생상품) 소송에서 세계적인 석학들의 논리 싸움이 치열하다. 2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민사대법정에서 열린 키코 소송 재판에는 우리은행·외환은행 증인으로 스티븐 로스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가 출석했다. 지난해 12월 17일 원고인 도루코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엥글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석좌교수를 내세우자 은행들이 맞불 작전에 나선 것이다.

파생금융상품의 권위자인 로스 교수는 이날 법정에서 “키코는 환헤지에 적합한 합리적 상품”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키코는 불합리한 계약’이라는 엥글 교수의 증언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엥글 교수는 당시 증언에서 원화값이 떨어지면(환율 상승) 키코 계약에 따른 도루코의 손실이 최대 216억원으로 불어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로스 교수는 “계산 결과, 원화값이 떨어져도 도루코는 오히려 5600만원의 이익을 낸다”고 지적했다. 엥글 교수는 원화값 하락으로 기업이 은행에 물어야 하는 금액만을 계산했지만, 실제로는 기업이 갖고 있던 달러의 가치가 오르면서 얻는 이익도 계산해야 맞다는 게 로스 교수의 주장이다. 원화값이 떨어지면 기업은 환차익을 얻기 때문에 키코 계약으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고도 남는다는 얘기다. 그는 “기업이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한다면 환헤지 할 달러자산이 없는데도 투기 목적으로 키코에 가입했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로스 교수는 또 “키코는 어떤 경우에도 은행에 유리한 구조”라는 엥글 교수의 주장에도 반박했다. 그는 “키코는 기업에 유리한 조건과 은행에 유리한 조건이 대등하게 있는데, 엥글 교수의 증언은 기업에 불리한 조건만 집중했다”며 “이는 ‘이익과 위험의 대등한 교환’이라는 파생상품의 기초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스 교수는 키코로 은행이 폭리를 취했다는 엥글 교수의 지적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날 재판에선 엥글 교수의 증언 때와 마찬가지로 벽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각종 그래프 등 자료가 비춰졌다. 양측의 긴장감도 팽팽했다. 로스 교수가 ‘포워드(forword)’라고 말한 걸 은행 측 통역사가 ‘선물환’이라고 번역하자 원고 측 변호인이 곧바로 “선물환이 아니라 선도계약이 맞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로스 교수는 자산가치 평가에 대한 이론인 ‘재정가격결정이론’을 개발한 학자다.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거명되기도 했다. 그가 쓴 『기업금융』은 전 세계 경영학과에서 널리 교재로 쓰이고 있다. 앞서 기업 측이 내세웠던 엥글 교수 역시 미래 예측과 리스크 평가를 개선한 공로로 200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이날 증언으로 기업과 은행 양쪽이 석학을 내세워 벌인 대리전은 일단 마무리됐다. 두 석학이 법정에서 밝힌 의견은 앞으로 남은 각종 키코 재판에도 증거로 쓰이게 된다.

한애란 기자

◆키코(KIKO)=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한 환헤지 상품. 녹인 녹아웃(Knock-In, Knock-Out)에서 이름을 따왔다. 상한(녹인)과 하한(녹아웃)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환율이 움직이면 기업은 미리 정한 환율로 약정 금액을 팔아 환차익을 낼 수 있다. 대신 하한 이하로 환율이 떨어지면(원화값 상승) 계약은 무효가 된다. 상한 이상으로 환율이 올라가면(원화값 하락) 기업은 약정 환율에 달러를 팔아야 하기 때문에 환손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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