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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지진은 신이 내린 비극, 그러나 재난 극복은 인간의 작품

인류 역사보다 더 앞선 지진의 역사는 소중한 목숨과 재산을 한순간에 앗아가는 재앙 그 자체였다. 때론 인적·경제적 피해로만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기도 했고, 엄청난 정치·사회적 파장을 몰고 오기도 했다. 한 나라가 견뎌내기 힘든 시련에 전 세계가 힘을 모아 대처하는 지혜를 키워 주기도 했다. ‘신의 저주’를 극복해온 인간의 드라마, 땅과 함께 세상을 흔들었던 대지진의 역사를 정리해 봤다.



역사의 지각변동 불러 온 세기의 지진들




1755년 리스본 대지진 8.7(지진 규모) 7만여 명(사망자 수)



18세기 국제도시 10분 만에 폐허

신 중심의 세계관 무너지는 계기




16일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주민들이 물주머니를 나눠 주는 버스 주위에 경쟁적으로 손을 뻗치고 있다. [포르토프랭스 로이터=뉴시스]
1755년 11월 1일 오전 9시30분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 가톨릭의 대축일인 만성절(모든 성인들을 기념하는 날)을 맞아 대부분의 주민은 성당에 모여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일순간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규모 8.7(추정)의 강진이 도시를 강타했다. 연이은 세 차례의 진동과 해일·화재는 800년 역사의 국제도시 리스본을 10분 만에 폐허로 만들었다. 27만 명 도시 인구의 4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 참사는 전 유럽을 경악시켰다. 자애로운 신이 세상과 인간을 주관한다는 신 중심의 세계관이 뿌리째 흔들렸다. 볼테르·루소·칸트 등 당대 유럽의 지식인들도 대지진을 계기로 신의 섭리로 세상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는 라이프니츠식 낙관주의를 버리게 됐다. 신의 징벌로 여기던 재앙을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기 시작했다. 대지진이 신(神) 중심의 세계관을 뒤흔들고 유럽 근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1923년 간토 대지진 7.9 10만여 명



사회 불안 잠재우려 희생양 찾아

6600여 명 조선인 무차별 학살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關東)지방에 규모 7.9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요코하마는 도시 전체가 파괴되고 도쿄에서는 화재로 밤 기온이 46도까지 오르는 등 일본의 수도권 지역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는 10만여 명. 190만 명이 집을 잃는 일본 역사상 최악의 참사였다. 일 정부는 불안한 민심을 돌리려 조선인 폭동설을 유포시켰다. 내무성 경호국은 “지진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조선인이 각지에서 방화를 저지르고 부정한 일을 벌이려 하고 있다. 도쿄에서는 일부 계엄령을 시행할 것이니 각 지방에서도 조선인들의 행동을 면밀히 주시하라”고 발표했다. 이후 지진 피해 지역에서는 조선인이 약탈·방화와 함께 우물에 독극물을 넣는다는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이를 믿은 일본인들은 조선인 대학살에 나서 6600여 명 이 학살당했다.










1976년 탕산 대지진 7.5 25만 명



진상 은폐 급급, 해외원조 거부

민심 이탈 … 한달 뒤 ‘문혁’ 막 내려




탕산 대지진은 ‘문화대혁명’으로 불리는 극좌 사회주의 운동이 종말을 고하는 데 일조했다. 1976년 7월 28일 새벽 중국 동북부 허베이(河北省)성 탕산을 덮친 규모 7.5의 강진은 앞서가던 광공업도시를 철저히 파괴했다. 25만 명 주민의 목숨도 앗아갔다. 그러나 공산당 지도부는 진상을 덮는 데만 급급했다. 자력 복구를 주장하며 유엔을 비롯한 외국 원조까지 거부했다. 하지만 중장비 조달이 안 돼 손으로 폐허를 파헤쳤고 의료품은 턱없이 부족했다. 지진에 대한 전문가들의 사전경고를 무시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공산당 지도부의 허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민심 이탈이 가속화됐다. 지진 한 달여 뒤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4인방이 체포되면서 문혁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1999년 터키 대지진 7.8 1만7000명



재난 수습 국제공조 본격화

앙숙 그리스도 동참해 관계 개선




1999년 터키 대지진은 자연재해에 대한 국제 공조를 본격화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99년 8월 17일 터키 북서부 이즈미트 지방에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해 1만7000명이 사망했다. 실제 사망자가 4만 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이재민도 60만 명에 달했다. 지진은 당시 경제난을 겪고 있던 터키를 심각한 곤경에 빠뜨렸다. 하지만 국제적 지원이 터키를 살렸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오스트리아·헝가리·이스라엘·그리스 등 세계 14개국에서 헬리콥터·텐트·의약품·담요 등 구호물자가 답지하고 구조대도 몰려 들었다. 국제적십자사는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450만 파운드(약 81억원)를 제공했다. 터키와 앙숙 관계에 있던 그리스는 지진 구호를 계기로 관계 개선을 이룰 수 있었다.






2004년 동남아 쓰나미 9.3 23만 명



한 번 지진에 14개국 동시 참사

전 지구적 자연재해 깨닫는 계기




2004년 12월 26일 인도양을 덮친 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는 동남아 지역 주민 23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21세기 들어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재앙이었다. 지진에 이은 쓰나미가 엄청난 희생을 불렀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서쪽 해안의 해저가 지진의 진원지였다. 규모 9.1~9.3의 강력한 해저지진으로 촉발된 쓰나미는 시속 800㎞의 속도로 해안을 덮쳤다. 파도의 높이는 최고 30m에 달했다. 인도양에 접한 인도네시아·스리랑카·인도·태국 등 14개국이 쓰나미에 휩쓸렸다. 재산피해는 약 28조원으로 추정됐다. 지진으로 지구가 1㎝나 흔들렸다는 보고도 나왔다. 지진의 여파는 알래스카에까지 미쳤다. 하나의 자연재해가 이처럼 광범위한 지역에 피해를 준 것은 처음이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서울=유철종·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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