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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서 커피 마시다 “바스티유로” … 프랑스 대혁명 막 올라

커피는 계몽철학과 시민의식도 확산시켰다. 지식인들은 살롱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국을 논하고 세상을 재단했다. 이런 시민의식이 프랑스 대혁명으로 발화하기도 했다. 그림은 19세기 프랑스 낭만파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커피에는 인류의 열정과 혁명이 녹아 있다. 자본주의 등장 이후에는 부를 향한 욕망이 더해졌다. 누군가는 커피 때문에 억만장자가 됐다. 누군가는 커피농장에서 노예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커피는 중산층 소비문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커피의 기원은 베일에 가려 있다. 아랍 지역에는 쓴맛이 나지만 기분을 좋게 하는 검은 열매에 대한 전설들이 전해지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기원전 850년께부터 그 검은 열매를 인간이 이용했다. 하지만 이 검은 열매가 커피인지는 불분명하다. 기원후 10세기에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한 농부가 염소 한 마리가 검은 열매를 먹고 춤을 추는 것을 신기하게 여겨 따라해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 전설을 그다지 믿지 않는다.

‘사탄의 음료’에서 ‘부의 원천’으로
인간이 커피를 알게 된 때는 불분명하지만 15세기 초에 커피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중동 예멘으로 전해진 점은 사실로 인정받고 있다. 1453년엔 콘스탄티노플(지금 터키의 이스탄불)에 커피가 전래됐다. 22년 뒤인 1475년엔 콘스탄티노플에 세계 최초의 커피숍이 등장했다. 오토만 제국이 이집트를 정복한 1517년 이후에는 커피가 중동 전역에서 크게 유행했다.

커피가 유럽에 전해진 때는 1600년께다. 늘 ‘새로운 것’은 오해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당시 교황 클레멘트 8세(1536~1605년)는 이탈리아 무역상이 이슬람 지역에서 수입한 커피를 ‘사탄의 음료’라고 규정했다. 영국왕 찰스 2세(1630~85년)는 사람들이 모여 수군대는 커피숍을 폐쇄하기도 했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커피가 반역의 기운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에서다.

커피는 국산품 애용 운동도 촉발시켰다. 1670년대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이 커피를 많이 마셔 포도주 농가가 타격을 입었다. 한 의사는 커피를 마시면 환각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포도주 사랑 운동을 펼쳤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1712~1786년)는 커피 때문에 맥주가 외면당하자 자신이 나서 맥주 마시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690년대 커피는 서유럽의 초기 자본 축적 수단으로 떠올랐다.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인도네시아에 커피 플랜테이션 농장을 열었다. 서유럽이 커피를 자체 조달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중동은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커피 무역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동인도회사는 커피 경작과 무역을 하나로 묶어 막대한 자본을 축적했다. 하지만 이면에는 노예노동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 시절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카리브해 지역 플랜테이션 농장은 아프리카 등에서 끌려온 노예 노동에 의존했다. 1791년 세계 곳곳의 커피 농장에서 일한 노예들은 무려 45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커피는 시민혁명과 결합하기도 했다. 1773년 한 무리의 보스턴 시민이 시내 커피숍에 모여 영국의 지나친 과세에 항의하기로 했다. 며칠 뒤 그들은 인디언으로 변장하고 보스턴 항구에 정박한 배에 침투해 차 상자를 바다로 던졌다. 미국의 독립전쟁으로 번진 보스턴 차 사건이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18세기 커피숍에서 부르주아지들이 출신과 종교 등을 뛰어넘어 소통해 시민혁명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미국 부르주아지들이 살롱과 커피숍에서 계몽주의 철학자인 볼테르의 사상과 영국의 제르미 밴덤의 공리주의를 논하며 시민혁명을 위한 사상으로 무장했다는 것이다. 이런 소통의 결과가 바로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대혁명이다. 영국왕 찰스 2세의 두려움이 현실화한 셈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유럽 대륙을 거쳐 미국으로 퍼져나갔다. 인간이 기계의 리듬에 맞춰 일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노동 시간이 길어지고 강도가 높아졌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에는 장시간 노동에 지친 탄광 노동자들이 아침에 커피로 피곤한 몸을 깨우는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실제로 커피 소비량은 산업혁명 이후 폭발적으로 늘었다. 노벨 경제학상(1993년) 수상자인 미국 로버트 포겔 전 하버드대 교수는 “커피가 없었다면 인간이 산업혁명 이후 일상화된 고강도, 장시간 노동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며 “커피는 설탕과 함께 산업혁명의 숨은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근대에 발생한 두 가지 혁명(시민과 산업) 이면에 커피가 있었던 셈이다.

5억 명의 생계가 달려 있어
커피는 원자재 투기의 원조격이기도 하다. 1870~80년대 독일 함부르크와 미국 뉴욕에 커피거래소(Coffee Exchange)가 문을 열었다. 미래 시점에 커피를 인도하기로 하고 서류상으로만 커피를 사고파는 선물거래가 일반화됐다. 먼지투성이인 커피콩을 직접 건네주며 거래하지 않게 됐다.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세력이 꼬였다. 함부르크거래소의 1880년 커피 거래량이 실제 생산량의 8배가 넘었다. 산업혁명 이후 처음 발생한 국제적 금융위기 때문에 패닉에 빠진 투기세력이 커피를 마구 사고판 탓이다.

인간이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지 500여 년이 흐른 요즘 뉴욕 등의 상품거래에서는 해마다 커피 20억 부대(1부대=50kg)가 거래된다. 투자은행 등은 커피를 석유 다음으로 중요한 상품으로 여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농사꾼 2500만 명을 포함해 5억 명 정도가 커피에 기대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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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