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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나리타 공항과 세종시

세종시를 배경에 깐 삭발과 단식 사진을 보면서 일본 나리타(成田) 공항을 떠올렸다. 이 공항은 여느 평화로운 일본 공항과는 다르다. 완전무장한 특수경찰이 이중으로 철통같이 검색한다. 표적이 알카에다가 아니다. ‘공항 반대’를 외치는 원주민과 44년째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하늘에서 보면 나리타 공항은 반신불수다. 원래 3개의 활주로를 깔려다가 단 한 개의 활주로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 북쪽의 제2 활주로는 반 토막이 났다. 중간에 토지 수용을 거부한 시골집 하나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동쪽의 제3 활주로도 항공기 유도로가 직선이 아니라 S자형으로 굽어 있다. 터미널과 활주로를 오가는 비행기들은 곡예운전을 한다.



지도만 놓고 보면 신공항 부지로 나리타만 한 곳은 없다. 도쿄에서 한 시간 거리에 널찍한 왕실 소유의 목장이 있었다. 사달은 정부가 원주민들의 마음을 읽지 않은 데서 시작됐다. 원주민 10%가 토지 수용을 거부했다. 강제 대집행 과정에서 경찰 3명이 숨졌고, 최루탄에 맞아 목숨을 잃은 원주민들이 생겨났다. 정치권과 학생운동권이 가세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극좌파들은 공항에 난입해 관제탑을 때려 부쉈고, 도쿄와 공항을 오가는 전철에는 방화사건이 꼬리를 물었다. 나리타 공항은 전후 일본의 최대 비극을 상징한다.



세종시도 난해한 방정식이다. 최근 세종시 원주민들이 토지 환매청구 소송을 준비하는 것부터 불길한 조짐이다. 나리타 공항은 좌익운동권이 강제수용을 방해하기 위해 사유지 1평 갖기 운동을 펼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맞았다. 당시 일본은 항공수요가 급증하면서 신공항을 요구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거센 사회적 압력조차 분노한 수백 명의 농민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세종시도 원주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한 발짝도 나가기 어렵다.



참고할 만한 것은 일본 정부의 대응이다. 잘못 꿴 단추를 풀기 위해 10년 넘게 참았다. 격앙된 감정이 가라앉기를 마냥 기다렸다. 그 이후 1991년부터 27차례에 걸친 심포지엄과 원탁회의를 열었다. 신망 높은 중립적 인사들이 정부와 반대동맹의 중재에 나섰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정부의 사과. 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가 무릎을 꿇고 지역주민들에게 사과했다. 수차례 공개적으로 늙은 총리가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그 모습이 반대동맹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시작했다.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땅을 팔고 집단 이주를 했다. 끝까지 수용을 거부해온 70대 노인이 얼마 전 마지막으로 1평짜리 땅을 넘겼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 시장 시절 고건 전 시장의 뚝섬개발계획을 백지화시키고 서울의 숲을 만든 경험이 있다. 지금 뚝섬은 서울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동네가 됐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에 똑같은 신화를 꿈꾸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종시는 행정적 차원의 뚝섬과는 다르다. 정치 문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연초 가족 모임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선 지원 유세 때 다섯 번이나 충청도를 훑었다. ‘한나라당과 우리 이명박 후보에게 기회를 주시면 반드시 행복도시를 만들겠다. 믿어 달라’고 했다. 그 약속을 내 손으로 깰 수는 없다.” 박 전 대표가 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을 제왕적이라고 한다면 제왕적이라는 얘기를 백 번도 듣겠다”고까지 했는지 짐작이 간다. 현지 주민의 목소리에도 서운함이 듬뿍 묻어난다. “우리가 언제 행복도시 오라고 한 것도 아니고…, 돈으로 막는다고 막아지겠는가.”



세종시가 갈수록 미궁에 빠지는 듯한 느낌이다. 국민투표나 여론조사로 압박한다고 박 전 대표를 돌려세우고 현지 주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나리타 공항은 우선 기다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손자병법’에는 ‘우직(迂直)의 계(計)’가 있다. 때로는 돌아가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정부와 박 전 대표, 충청 민심이 자꾸 예리한 대립각만 세우고 있다. 지켜보는 심정은 불편하다. 서로 마음을 열어야 한다. 백년대계로 세종시를 바꾼다면, 똑같은 논리로 백년을 기다릴 수 있다는 각오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은 공항 하나에 44년을 기다렸다. 논설위원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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