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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년 전 오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발표된 날

꼭 48년 전 오늘인 1962년 1월 13일. 한국 정부는 중대 발표를 한다. '한강의 기적'이란 말을 낳을 정도로 세계가 주목할 경제성장의 초석이 되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 1차 계획을 발표한 것.



일인당 국민총생산(GNP) 1만3000원. 주요 수출품목 철광석ㆍ오징어ㆍ활선어. 1962년 당시 대한민국의 경제상황이다. 이는 아프리카 케냐ㆍ가나 같은 나라와 비슷했다.



62년 1월 13일 ‘경제 성장 연평균 7.12%’‘동력ㆍ식량 자급’을 목표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발표됐다. 이후 5년마다 갱신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1996년 제 7차 계획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 35년 사이 일인당 국민 총소득은 1007만원으로 늘었고, 수출액은 180억원에서 127조4623억원(7081배)으로 증가했다.







◇“자립”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66년)



구로공단의 60년대 모습 이다. [중앙포토]
이 기간의 최대 목표는 자립이었다. 특히 전력ㆍ석탄 같은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것을 중점 사업으로 삼았다. 농업 중심의 산업 구조에 2차 산업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1962년 울산시 건설공사가 착공했다. 1964년 이후 정유공장과 비료공장이 속속 들어선 울산공업센터다. 하지만 외환 보유액이 부족해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ㆍ서독을 방문해 차관을 들여와야 했다.



이 기간 경제성장률은 연 평균 7.8%였다. 7.12%였던 목표를 뛰어넘은 것이다. 1인당 GNP는 1만3000원에서 3만5000원으로 늘었다.



◇“수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71년)



경제개발 계획이 수출에 역점을 두게 된 것은 이미 1964년부터다. 외화 없이는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섬유ㆍ신발 등의 경공업이 핵심 산업으로 떠올랐다. 2차 시기에는 경공업 발전을 위한 토대가 구축됐다. 1967년 최초의 수출산업공단인 구로1단지가 준공됐다. 71년엔 마산수출자유지역이 문을 열었다.



경공업 주도로 수출이 확대되며 경제 규모는 또 한단계 성장했다. 1인당 국민총소득은 처음으로 10만원(71년)을 기록했다. 같은해 수출액도 4994억원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 시기 수출 품목 1위였던 섬유가 전체 수출액의 40% 정도를 차지했다. 이 시기엔 동시에 공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경제개발의 그림자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도약”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76년)



박정희 대통령이 포항종합제철준공식이 끝난뒤 공장시설을 시찰하고있다. [중앙포토]
경공업 중심의 산업 구조가 중화학 공업을 중심으로 개편된 시기다. 1973년 준공된 포항종합제철은 철강공업 육성을 위한 정부의 의지를 드러냈다. 같은해 구미공업단지 제 1단지가, 이듬해에 창원공업단지ㆍ울산미포공업단지가 창공됐다. 조선ㆍ철강ㆍ자동차ㆍ전자 등 지금의 수출 주력 품목의 토대가 이때 닦인 것이다.



새마을 운동이 본격화하고, 제1차 오일쇼크의 충격에도 9.7%라는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하며 이때 처음으로 ‘한강의 기적’이란 말이 해외 언론에서 나왔다. 신흥 공업국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은 40만원, 수출액은 4조2369억원(76년)으로 올라섰다.



◇“합리화”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7~81년)



철강ㆍ석유ㆍ기계 등 중화학 공업을 중심으로 한 공업화 전략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국내 기업이 국제 경쟁력 강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1979년 제 3차 석유파동과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등으로 안정적인 발전이 어려웠다. 1980년엔 경제개발 계획에 착수한 뒤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1.9%)을 기록할 정도였다.



이 시기에 중화학 공업 기지와 지방 공단 설립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1978년에 전남 여수시 여천공업단지가, 81년에 경남 거제군 옥포공업단지가 준공됐다.



◇“안정”제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1982~86년)



이 시기에 사업의 이름이 ‘경제개발 계획’에서 ‘경제사회발전 계획’으로 변경됐다. 경제 성장이 지속되면서, 사회 전반적 발전에 대한 요구가 그만큼 커진 것이다. ‘물가 안정’‘불균형 해소’ 등 처음으로 성장 외의 과제가 제시된 시기이기도 하다.



계획대로 물가는 획기적으로 안정됐다. 1980년 28.7%에 달하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984년 2.3% 수준으로 떨어졌다. 제3차 경제 개발 효과가 드러나며 수출액이 수입액을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1984년 수출액은 25조9396억원으로 수입액(25조4213억원)을 5000억원 이상 앞선 것이다. 86년의 일인당 국민총소득은 238만원 수준으로 올라섰다.



◇“형평” 제6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1987~91년)



분당 신도시 아파트 건설현장. [중앙포토]
‘경제 선진화와 국민 복지의 증진’이 주요 과제로 부상한 시기다. 특히 지역 간 불균형, 계층간 불균형을 개선시키자는 논의가 나오기 시작했다. 또 경제 성장에 있어 수출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도 병행됐다. 지역 간 불균형 해소를 위해 도로 포장률이 76.4%로 높아졌다. 실업률 2.4%로 고용 시장이 안정됐고, 저축 증대 운동으로 인해 국내 저축률도 36.1%에 이르렀다.



88올림픽 이후 주택 가격이 급등하며 서울 주변 신도시 개발이 본격 추진되기 시작했다. 89년 제1기 신도시 분당ㆍ일산 등의 개발 계획이 발표된 것. 이로 인해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되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신경제” 제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1992~96년)



프랑스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본부에서 거행된 한국의 OECD가입에 관한 협정서 서명식에 참석한 공노명 외무장관(左)과 도널드 존스턴 사무총장. [중앙포토]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며 ‘신경제 5개년계획’이라 이름붙이기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일인당 국민총소득 1만불 달성 등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한 구체적 과제를 추진한 시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95년 처음으로 국민소득 1만불 고지를 점령했고, 96년엔 OECD 회원국에 가입했다.



기업 경쟁력 강화, 균형 발전, 통일기반 조성 등을 주요 과제로 삼았지만 1997년 경제가 급격히 악화되고 외환 위기 사태를 맞으며 제7차 사업의 빛이 바랬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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