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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are you ①] 윤수일 “130만 다문화 식구와 더불어 살자”


그의 성은 ‘월드 윤가’다. 그는 어릴 적 유달리 팔다리가 길었다. 다리가 더 길어질까봐 무릎을 엉거주춤 구부렸다. 팔은 깍지를 끼고 다녔다. 아침에 일어나면 피노키오처럼 솟은 콧대를 꾹꾹 눌렀다.

가수 윤수일(55). 1977년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혜성같이 등장했던 이국적 외모의 가객. “튀기야”“양놈새끼”라고 놀림받던 그의 인생을 바꾼 건 비틀스의 ‘예스터데이’였다. ‘제2의 고향’‘아파트’‘황홀한 고백’ 등으로 큰 사랑을 받은 그는 이제 어린 시절의 놀림을 잊지 않고 다문화 식구(?)를 위해 전국 콘서트 투어를 벌이는 등 누구보다 열심히 산다. 서울시 다문화가정 홍보대사로 위촉되던 날 그를 만났다.

“이제 팬 사랑 되돌려주고 싶다”

윤수일은 한 방송에서 “한국에서도 이제 혼혈이란 말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를 본 적 없는 그는 2006년 컴백 후 콘서트마다 오프닝에 ‘청춘일기’를 보여준다. “나는 6.25 동란 후 역사가 남긴 무거운 과제와 상처를 안고 이 땅에 버려졌다.” 연극인 박정자의 목소리다.

올해 가수인생 32년째를 맞은 그는 “내가 받은 사랑을 이제 팬에게 보답해야 할 때다”라고 했다. 그는 아무도 관심이 없을 때부터 “혼혈은 장애가 아니다”라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다문화 가정 돕기에 앞장섰다. 그는 자신을 도와줬던 펄벅재단을 지원했고, HAPA클럽을 ‘한국혼혈협회’로 바꾸고 회장을 맡으며 사회 편견을 바꾸려 부단히 힘썼다.

미주 지역 혼혈아에게 음반이나 책 기증을 20년째 해오고 있다. 그는 해외 거주자에게 ‘코리안 드림’을, 한국 거주자에겐 ‘사랑, 국경을 넘어서’라는 헌정앨범을 지난해 만들어 기증하고 있다. 이제 그의 콘서트장에 가면 다문화 식구들이 이 노래를 따라 부른다.

그는 “최근 동남아 국제결혼 등 한국에 새 다문화 가정이 형성되고 있다. 무려 130만명이다. 외국인 귀화자 성씨도 442개다.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누구보다 아픔과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자란 내가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나름대로 그들에게 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전국 콘서트를 시작했다. 이 콘서트에는 ‘다문화 가족사랑 콘서트’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공연시장이 녹록지 않음에도 지자체의 각 도시를 투어하는 그 무대에 매번 200~300명씩 모범 다문화가정을 초청한다. 그리고 성금은 다문화 가정 자녀교육에 보탠다. 그의 최대 관심사는 아이들이다.

“많이 달라졌지만 한국은 백의민족, 단일민족이라는 생각이 굉장히 강하다.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며 “국제결혼으로 많은 다문화 2세들이 자라나고 있지만 학교에서 순수 한국아이들과 제대로 유대를 갖는가는 의문이다”고 했다.

그는 11일 서울시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이 자리에서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공연 후 모은 성금을 서울시 다문화 가정 자녀 교육에 보태라고 전달했다. 다문화 식구를 위한 헌정앨범 수천 장도 기증했다. 경매 바자에는 애장품인 ‘기타’도 내놨다.

바닷가 통나무집 칩거 “아침 조깅 너무 행복”

그는 김포 끝자락 강화도가 보이는 바닷가 통나무집에서 칩거 중이다. 2000년 30년 서울 생활을 청산했다. 열여덟살 때 혈혈단신 상경해 가수의 꿈을 이룬 그가 바다로 떠난 이유는 뭘까. “20대 후반부터 늘 전원생활을 꿈꿔왔다. 고교시절부터 가발을 쓰고 나이트 클럽 공연을 했다. 매일 5시간 이상 나쁜 공기를 맡았다. 또 아파트 지하실 스포츠센터에서 러닝머신을 달려도 주민들이 곁눈질하는 것을 벗어나고 싶었다.”

자유스럽게 살고 싶은 결심은 이제 행복으로 변했다. 맑고 차가운 아침공기를 마시며 바닷가 조깅코스를 달리면 에너지가 솟는다. 조용한 가운데 작품 활동의 영감도 차분히 떠오른다. 2006년 컴백한 후 낸 앨범 ‘숲바다 섬마을’을 들으면 황금빛 노을이 지는 서쪽 하늘을 가로질러 비행하는 기러기의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그가 가수가 된 계기는 외모와 사회편견을 겪으며 음악으로 외로움을 달래면서다. 비틀스의 ‘예스터데이’’헤이 주드’를 들으며 “나도 훌륭한 음악을 만들겠다”결심했다. 오늘의 윤수일을 있게 한 노래 중 하나가 록과 트로트풍을 결합한 데뷔곡 ‘사랑만은 않겠어요’다.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한 이 곡으로 최고 인기가수상 등 상도 많이 탔다. 6.25 때 북한 강계에서 홀로 남하해 남쪽 땅끝에 정착했던 어머니의 가슴 아픈 사랑을 담았다.

이후 도시의 고독감을 그린‘제2의 고향’, 해방 이후 한국의 발전코드의 하나이자 응원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불렀던‘아파트’목꺾기 춤·다리 스텝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황홀한 고백’등이 줄줄이 히트했다.

그는 올해 20여회의 콘서트를 계획 중이다. 그 중 3분의 1은 미국 등 외국투어다. 그는 남은 인생을 “정신없이 이것저것 시도해왔다. 이제 음악적으로 팬들의 기억에 각인시킬 수 있는 나만의 색깔을 정리해야 할 시기다. 그리고 다문화 관련 사회 봉사를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수일 프로필

출생:1955년 2월 6일 (울산광역시)
학력:학성고등학교
데뷔:사랑만은 않겠어요(77)
수상: MBC최고인기가요상/ KBS신인가수상(78), KBS, MBC 10대인기가수상(79~86)/ 일간스포츠 골든디스크상(87)
발표 앨범수: 총 23장
대표 히트곡: 제2의 고향, 아파트, 황홀한 고백, 숲바다 섬 마을
저서:에세이집 길, 2008년 다문화가족 헌정앨범- 코리안 드림

박명기 기자 [mk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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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