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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광화문광장 ‘난장’

지난해 한 봄날이었다. 청와대 A씨를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광화문광장이 화두로 불쑥 튀어나왔다. 광장 완공을 서너 달 앞둔 시점이었다. A씨는 “광화문광장은 광장으로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권 초기에 촛불집회로 큰 타격을 입었는데, 청와대 바로 코앞에 과격 집회 장소로 악용될 수 있는 광장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기삿거리였다. 서울시청 출입기자에게 즉시 알려주었다. 청와대 요청으로 광화문광장의 명칭이나 구조가 바뀔지도 모르니 잘 챙겨보라고. 출입기자에게서 금방 답변이 왔다.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직접 확인했는데, 광장은 계획대로 간다는 것이었다. 시쳇말로 오 시장의 ‘포스’가 느껴졌다. 촛불이 대통령 그림자까지 접근했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리라.



8월 1일, 광화문광장은 예정대로 시민에게 개방됐다. 서울시는 ‘역사를 회복하는 광장’ ‘조선 육조거리를 재현한 광장’이라고 홍보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총천연색 꽃밭이 깔리고 현대식 햇빛가리개와 우스꽝스러운 해치상이 자리를 차지했다. 이후 설치된 세종대왕상 역시 주변과 맞지 않았다. 한마디로 역사 회복의 ‘포스’가 느껴지지 않았다. 정돈된 육조거리가 아니라 무질서한 난장(亂場)의 이미지였다. 2007년 초, 미국 MIT대학에서 세계적인 비주얼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인 존 마에다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문 : 당신이 생각하는 디자인의 핵심은. 답 : 단순함과 관계성이다.



그의 기준으로 보면 광화문 광장은 낙제점임에 틀림없었다.



도시에 디자인을 접목해 온 오세훈의 서울시가 저런 광장을 만들다니, 촛불이 광장을 비틀어놓았거니 여겼다. 또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나 그게 아니었다. 꽃밭은 스케이트장으로 바뀌고 스노보드대가 등장했다. 400억원 이상을 들이고 시민들이 불편을 참아가며 조성한 광장에 대해 논란이 벌어진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거대한 정원, 테마파크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한 달 전, 본지는 미술·디자인·건축 전문가 20인을 대상으로 광화문광장에 대한 긴급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자 모두가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구동성으로 설치물이 지나치게 많고 자연스럽지 않으며 과도한 이벤트가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시위를 못하게 여러 시설물을 넣다 보니 본래 취지에서 벗어났다”고 해명했다. 비판을 받아들여 역사적 공간으로 어떻게 재배치할지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오 시장이 이를 두고 고뇌하고 있다는 멘트도 기사화됐다. 이번에는 뭔가 달라질 거라고 믿었다.



바람과 지적에도 서울시는 지난 한 달간 난장을 더 크게 텄다. 화려하고 빛나는, 하지만 역사의 중심지에는 맞지 않는 이벤트가 줄을 이었다. 매표소·화장실·휴게실·노점상이 광장을 점령하고 오색 조명등이 여기저기서 무질서하게 번쩍거렸다. 10일 밤 찾은 광장 풍경은 뭔가 채워야 한다는 조급증의 산물처럼 보였다. 시민이 자유롭게 떠들며 놀 수 있는 공간은 분명히 필요하다. 서울시도 이런 논리를 펴고 있다. 난장이면 어떠냐, 즐겁기만 하면 된다는 주장을 한칼에 물리칠 수는 없다고 본다. 다만 난장이 열릴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 그렇게 놀 곳이 역사의 중심지 말고는 정말 없을까. 반면 북악산에서 육조거리·숭례문으로 이어지던 역사를 재현할 곳이 광화문광장 말고 또 어디 있을까.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경선 후보와 야당은 오 시장이 광화문광장에서 광나는 이벤트를 벌여 표를 얻으려 한다고 비난한다. 오 시장이 이런 꼼수를 쓸 정치인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서울시의 노고에 ‘재선용’이라는 딱지를 몽땅 붙이고 싶지도 않다. 다만 광화문광장이 지닌 유일무이한 ‘아우라’를 활용해 대한민국의 중심 광장으로 하루빨리 탈바꿈시켜야 한다. 촛불 고민은 다른 방식으로 풀면 된다.



이 칼럼 출고를 앞두고 서울시에 입장을 재차 물어봤다. 시 고위 관계자는 “다음달 중순까지 이벤트 행사들을 끝내겠다. 그리고 광장의 앞날을 숙고하겠다”고 했다. 이 약속이 지켜졌으면 한다. 그래서 G20에 참석하는 세계 지도자들이 광화문광장에서 우리 역사의 엄숙함과 장엄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규연 사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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