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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강정원을 위한 변명

싸우면 손해다. 때린 만큼 맞기 쉽다. 큰 싸움일수록 피해도 크다. 가장 큰 피해는 애써 덮어뒀던 치부가 드러난다는 거다. 거물끼리는 잘 안 싸우는 이유다. 그래도 싸운다면 두 가지다. 한쪽이 자폭을 각오했거나 서로의 역린(逆鱗)을 건드렸거나. 요즘 KB금융지주와 금융당국의 싸움이 꼭 그렇다. 먼저 잽을 날린 건 감독당국이다. 강정원 KB 행장에게 KB금융지주 회장 선임을 미루라고 했다. 강 행장은 거부했다. 회장 선임을 강행했다. 단독 출마도 불사한 끝에 회장에 뽑혔다. 감독원은 발끈했다. 피감 대상의 장(長)이 감히 감독기관의 영을 거역하다니. 당장 감독권을 발동했다. 강 행장의 운전기사를 조사했다. 각종 비리 의혹에 대한 검사에도 착수했다. 강 행장 연봉이 40억원입네, 100억원입네 소리도 흘렸다. KB 측은 ‘신관치’라며 반격했다. 정부가 지분 하나 없는 은행의 인사를 좌지우지하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당사자들이야 죽을 맛이겠지만 보는 사람은 흥미진진이다. 큰 싸움답게 먼지도 많이 나고 볼거리도 쏟아진다. 감독원이 이런 일도 하는구나, 은행장이 이런 자리구나, 새삼 알게 된 것도 많다. 대부분 평소에는 쉬쉬하던 일들이다. 급기야 청와대 개입설까지 등장했다. 이쯤이면 마무리 단계다. 대개 은행장이 꼬리를 내린다. 없던 일로 하고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며 선처를 바라는 수순에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지난 주말 예상 밖 일이 일어났다. 강 행장이 김중회 KB지주 사장을 경질한 것이다. KB 측은 “서로 상의했다” “예정됐던 일”이라고 하지만, 감독원의 반응은 다르다. 김 사장은 감독원 고위 간부 출신이다. 후배들의 신임도 두텁다. 누구보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강 행장이 김 사장을 내친 건 감독원에 대한 선전포고란 것이다.



강 행장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도대체 뭘 잘못했느냐고 따지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죄라면 있는 제도를 잘 활용한 것뿐이다. KB지주 회장이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사외이사의 과반수, 5명만 자기 편으로 만들면 된다. 한국 최대 금융회사의 주인이 되는 것치곤 너무 쉽다. 그래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런 제도를 만든 것도 따지고 보면 정부다. 관치를 없앤다며 사외이사가 은행장을 뽑도록 했다. 정부가 갖고 있던 KB 지분도 모두 팔았다. 아예 정부가 은행장 인사에 개입할 빌미를 없앤 것이다. 선진 지배구조라며 칭찬도 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사외이사와의 결탁’을 문제 삼다니, 말이 되냐는 것이다.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신한·하나은행은 괜찮았는데 왜 나만 안 되냐’고 묻고도 싶을 것이다. 신한은 2001년, 하나는 2005년 지주회사로 체제를 바꿨다. 당시 행장이던 나응찬·김승유는 각각 신한·하나금융지주 회장이 됐다. 올해로 나 회장은 19년째, 김 회장은 13년째 최고경영자를 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제지는 없었다. 강 행장도 내심 그런 구도를 꿈꿨을 것이다. ‘어차피 주인 없는 은행, 잘하면 장기집권이 가능하다’ ‘저 사람들도 하는데 내가 못할 게 뭐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론의 흐름도 좋다. 반관치의 목소리가 크다. 개인 자질 시비나 능력 검증 얘기는 묻혔다. 한번 싸워 봄 직하다고 생각할 만하다.



뭐든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이다. 한국 금융이 딱 그 꼴이다. 외환위기 땐 관치가 공적 1호였다. 관치 때문에 은행이 줄줄이 망하고 수백조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갔다. 관치를 막는 데만 금융정책이 집중됐다. 그러다 보니 너무 갔다. 지금은 주인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게 됐다. 국민 세금 수백조가 들어간 은행들이 엇나가도 통제할 방법이 없어진 것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당사자들에겐 안 됐지만 싸움이 더 커지는 것도 좋다. 큰 싸움으로 문제가 더 드러나야 판을 새로 짜려는 압력도 세질 테니. 새 판의 목표는 분명하다. 잘하면 장수하고 못하면 퇴출되는 시스템이다. 당연하고 쉬워 보이는 이런 제도가 100년 넘게 이 땅의 은행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궁금할 뿐이다.



이정재 중앙SUNDAY 경제·산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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