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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북한 말씨

구약성서 사사기 12장 내용은 참혹하다. 말씨가 다른 탓에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대목이 나온다. 길르앗 사람들과 에브라임 사람들 간 내전(內戰)의 와중에 벌어진 일이다. 길르앗 병사들이 요단강 어귀를 지키고 있다가 도망치는 에브라임 사람들을 검문했다. 단어 ‘Shibboleth’을 발음하게 했다. ‘곡식 낟알’을 뜻하는 고대 히브리어 방언이라고 한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sh’ 발음을 못한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쉬볼렛’이라고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시볼렛’이라고 하는 순간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단정해 죽였다. 단어의 발음 차이가 그대로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이 된 것이다.



『방언의 미학』을 쓴 이상규 경북대 교수는 자연지리적 환경과 밀접한 일상적인 지역 말씨를 방언 또는 사투리로 규정한다. 그 방언엔 어휘 차이만이 아니라 발음·억양의 차이도 있다. ‘으’와 ‘어’, ‘ㅅ’과 ‘ㅆ’이 구분되지 않아 서울로 전학 간 경상도 아이가 ‘음악’을 ‘엄악’으로 발음하거나 ‘쌀’을 ‘살’로 발음해 웃음거리가 되곤 한다.



발음 차이가 웃음거리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나 차별의 징표가 돼 삶을 고통스럽게 할 땐 문제다. 북한 이탈 주민이 바로 그런 경우다. 탈북자의 발음 차이는 명료하다. 구개음화가 일어나지 않으니 ‘맏이’를 ‘마디’로 발음하고, 두음법칙을 무시하니 ‘역사’를 ‘력사’로 발음한다. 남한 생활에 장애를 겪게 하는 굴레다. 탈북 청소년은 학교에서 따돌림당하기 일쑤다. 북한 사투리가 나올까 봐 아예 입을 닫기도 한다. 탈북 성인은 면접에서 말씨 때문에 채용이 취소되거나, 구직광고를 보고 전화했다가 사투리로 말하는 순간 전화가 끊기는 일을 당하기도 한다.



쉬볼렛은 ‘곡식 낟알’이란 뜻과 함께 ‘발음하기 힘들다’는 의미와도 닿아 있다. 2만 명에 육박하는 탈북자에겐 한국 사회가 딱 쉬볼렛이 아닐까 싶다. ‘먹을 것’을 찾아 목숨을 걸고 왔지만 ‘말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곳’이니 말이다.



국립국어원이 모레 북한 말씨를 교정하는 ‘새터민이 배우는 표준발음 교실’ 온라인 강의를 시작한다고 한다. 탈북자의 딱한 처지가 나아질 수만 있다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태어나면서 몸에 밴 고향 말씨를 버리는 일이 쉬울 리 있겠나. 그보다는 탈북자를 더불어 살아야 할 이웃으로 포용하는 남쪽 사람의 마음가짐이 먼저가 아닐까.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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