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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영 기자의 장수 브랜드] 비오비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국민 생활은 궁핍했고 제약 산업의 기반도 약했지만, 일동제약은 자애산·홍진산 등의 한방 소화제로 꾸준한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사장이었던 고 윤용구(1908~93) 회장은 일본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유산균을 이용한 소화·정장제를 만들면 성공할 것으로 판단했다.



임원들 손수레에 싣고 다니며 판촉
TBC 베이비 콘테스트로 이름 알려

일제 시대 유명했던 유산균 제제 ‘비오훼루민’은 일제가 패망한 이후 생산이 중단되고 유산균 배양 기술도 이어지지 못했다. 윤 회장은 백방으로 종균 배양 기술을 찾다가 57년 ‘혹시나’ 하고 가 본 당시 중앙공업연구소(현재의 기술표준원) 전시회에서 종균 배양에 관한 논문을 발견했다. 연구자를 스카우트해 양산품 개발에 돌입했다.



시설도 열악하고 자본도 적을 때라 연구와 실험은 서울 성북구 안암동 윤 회장의 사택 뒤뜰에서 했다. 서울대 약대와 중앙공업연구소 시설을 빌려 종균 배양을 했다. 활성 백토를 이용해 종균을 포집했지만 한여름엔 흡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곤란을 겪었다. 배양 과정에서 다른 잡균이 침투하는 바람에 내용물을 모두 버리기 일쑤였다.



2년여의 연구 끝에 활성 유산균의 대량 배양에 성공, 59년 8월 특허를 등록하고 같은 해 10월 ‘비오비타’를 출시했다. 국내 최초의 유산균 소화·영양·정장제였다. 별다른 부작용 없이 장을 튼튼하게 해주는 제품이었지만 사람들이 잘 몰라 초기 판매는 부진했다. 윤 회장은 회사 임원들과 리어카를 한 대 구입해 당시 약국이 많던 동대문을 돌며 직접 판촉 활동에 나섰다.



이금기 일동제약 회장이 영업 부장을 맡게 된 60년대 후반부터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67년부터 10년간 동양방송(TBC)과 함께 ‘베이비 콘테스트’를 개최하면서 육아 필수품이란 인식이 번져 판매가 크게 늘었다. 60년대 후반, 유산균을 ‘활성 유포자성 유산균’으로 개선하면서 소비자 평가가 훨씬 좋아졌다. 활성 유포자성 유산균은 자체적으로 포자를 형성, 잘 사멸되지 않고 장까지 도달해 번식한다는 강점이 있다.



99년부터는 일본에 3종의 유산균 원료를 수출하고 있다. 2004년에는 ‘비오베이비’란 이름으로 베트남 수출을 시작했다. 50년간 판매된 비오비타는 대략 6700만 병. 세로로 길게 늘어 놓으면 약 1만㎞로 서울에서 파리까지의 거리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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