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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싶은 사람 다 오세요” 학력인증 기관 양원초등학교

배움을 위해 고향을 떠나온 이동순 할머니는 혼자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황정옥 기자]
“제 나이 예순여덟에 배움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평생 소원이었던 공부를 하게 됐다는 것이 꿈만 같습니다…. 제 손으로 편지를 쓰고 있는 모습이 자랑스러워요…. 고맙습니다. 선생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1시 서울 마포구 대흥동 양원초등학교 교무실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 문턱을 넘지 못했던 김영숙(71·초3) 할머니가 써내려간 감사의 편지였다.



머리 하얀 초등학생들 “공부하니 행복합니다”



양원초등학교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12세 이상의 학생들을 상대로 한 학력인증 기관이다. 재학생 1280명의 평균연령은 68세. 가난과 전쟁 등 이들이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아파도 글을 몰라 병원에 갈 수 없었다”는 60대 할머니부터 “학력을 물어볼까 겁나 자녀가 다니는 학교 한번 가보지 못했다”는 50대 아줌마까지, 겪어왔던 고통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공부하는 게 행복하고,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밤샘을 마다하지 않는다. “공부하기 싫다”는 손자·손녀들의 푸념을 들을 때면 웃음만 나온다. “행복한 줄 모르는, 철없는 이야기죠.”



나이도 막을 수 없는 공부의 열기



이날 오후 2시 2학년 5반 교실. 오후반 학생들이 국어수업을 받고 있었다. 양원초등학교는 직장에 나가는 학생들과 아침 일찍 집을 나서기 어려운 고령자들을 위해 오전·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을 진행한다.



받아쓰기 시간, 고예곤(58·여) 교사가 국어 교과서에 나온 『서울쥐와 시골쥐』동화를 읽어준 뒤 문장을 하나씩 불러준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대부분이었지만, 수업 분위기만큼은 어느 학교 교실보다 진지했다. 30년 동안 일반 초등학교에서 교직에 몸담았던 고 교사는 “입학 당시에는 ‘가나다’도 몰랐던 학생들이 1년 만에 웬만한 글자는 쓸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며 “숙제를 내주면 밤을 새워서라도 완성해오는 모습에 감동한다”고 말했다.



국어시간이 끝나고 10분여의 쉬는 시간, 수업에 10분 늦은 김정단(61·여)씨가 짝궁의 공책을 빌려 열심히 옮겨 적고 있다. 청소일을 한다는 김씨는 수업을 듣기 위해 점심식사도 거르고 왔다. “배 고프죠. 하지만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점심 한 끼쯤은 상관없어요.”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에 다니지 못했던 그는 “글을 몰라 용역회사에서 이력서를 내라고 할 때마다 눈물을 흘려야 했다”고 털어놨다. 요즘은 글을 읽는 재미에 빠져 자정이 넘어서까지 신문을 읽고, 청소를 하다가도 간판을 읽으며 혼자 웃음 짓는단다. “공부가 제일 재미있어요. 내 나이가 30년만 젊었어도 서울대에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배움을 얻고, 희망을 꿈꾸다



배움 앞에서 교사(사진 왼쪽)도, 학생도 얼굴에 핀 주름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황정옥 기자]
오후반의 최연소 학생인 서현경(31·여·초3)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의 이혼 때문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서 학교를 그만뒀다. 교복을 입어본 적도 없고, 알파벳도 모른다. 24세가 되던 해부터 어머니가 다니는 미싱공장에 취직해 한 달에 5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대물림돼 온 가난이 싫었다. 지난해 3학년으로 편입했고, 이제 꿈이 생겼다. “50세 전에 대학을 졸업해 영어교사가 되고 싶어요. 나처럼 불우한 환경 때문에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선생님이 될 겁니다.” 요즘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하교 후 매일 5시간씩 영어·수학공부를 한다.



배우기 위해 고향인 전북 남원을 떠나 홀로 지낸다는 이동순(67·여·초3)씨는 지난 여름방학 고향에 내려가 ‘스타’가 됐다. 글을 몰라 주민등록등본을 뗄 때마다 동사무소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이씨가 스스로 신청서를 적어내는 모습에 주위 사람들이 놀란 것이다. 이씨는 “배움이 이렇게 값지고 행복한 일인지 몰랐다”며 “고등학교 졸업장까지는 받고 싶다”고 말했다. 심장판막증을 앓고 있지만 거처인 성남시 야탑동에서 마포까지 왕복 4시간 지하철로 등·하교를 한다.



“학생이 된 뒤 손자들과의 관계도 좋아졌어요.” 6·25를 겪으면서 ‘반동분자 집안’으로 낙인 찍혀 아버지와 친척들을 모두 잃어야 했던 오복임(64·여·초6)씨는 같은 학년에 다니는 손녀와 함께 매일 영어공부를 한다. 그의 꿈은 사회복지사가 돼 가난 때문에 공부할 수 없었던 할머니·할아버지를 후원하며 한글을 가르치는 것. “손녀와 누가 좋은 대학에 가는지 경쟁하기로 했어요.”



늦게 시작한 공부, 그러나 이들에게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공부하고 싶다’는 열정 앞에서 굽은 허리와 지병도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이들은 손자·손녀뻘 학생들에게 신년 메시지를 전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배우지 못하면 기회조차 얻기 어렵습니다. 우리처럼 배우지 못한 서러움에 눈물 짓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음 편히 공부만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에요.”



최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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