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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기획 - 세계의 한복판으로 <6> G20 시대Ⅰ- 글로벌 경제의 한복판으로

한국이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자 개최국이 된 것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행운이 아니다. 전쟁(1950년)과 외환위기(1997년)의 참화에서 일어나 시장을 활짝 열고 세계로 달려나간 결과물이다. 세계의 한쪽에서 위기가 터지면 풍전등화처럼 흔들렸던 변방 국가가 글로벌 경제의 한복판에 서기까지 우리 국민이 흘린 땀과 눈물은 가늠하기 어렵다. 국제 경제·금융 전문가 5인의 회고와 기대를 들어봤다.



“미국·중국 주춤 중간국인 한국 입지 넓힐 기회”
G20 경제인 5인의 기대

“한국, 세계 질서 관리할 핵심으로 성장”

G20 원년 멤버 김용덕




현 법무법인 광장 고문

금융감독위원장
한국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유치했다는 소식을 듣고 김용덕(60·법무법인 광장 고문)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떠올린 것은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상 테이블이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 금융국장으로 협상에 간여했던 그는 IMF 국장급 인사가 우리의 장관과 담판을 벌이는 현실에 경제력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그는 “이번 정상회의 개최는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 질서를 관리하는 핵심으로 떠오를 정도로 성장한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99년 열린 1차 회의부터 2002년까지 ‘G20 재무장관회의’의 한국 대표로 참석한 그는 G20 ‘원년 멤버’다. 당시 이름은 G20이었지만 회의는 사실상 G7 중심으로 진행됐다는 게 그의 회고. 하지만 그는 G20이 조만간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최고 협의체가 될 것을 예측하고 후배 관료들에게 G20에 대해 각별히 신경 쓸 것을 주문했다. 이때부터 우리 정부가 관리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지난해 G20 정상회의 개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든든한 자산이 됐다. 회의 유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기획재정부 신제윤 국제업무관리관 등이 그의 조언을 따랐다.



그는 G20뿐 아니라 다른 국제회의에도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회의 참석을 통해 한국의 인지도를 높이고 글로벌 인재를 키우다 보면 이번처럼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국제회의 참석이 예정돼 있는 장관을 불러내는 우리나라의 정치관행부터 개선돼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김 전 위원장은 “국격이 높아지는 일인 만큼 앞으로는 정치권에서 신경을 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IMF든 세계은행이든 이젠 한국 존중해”

변방국 설움 겪은 관료 허경욱




현 기획재정부 제1차관

재정경제부 국제업무정책관
허경욱(55)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경제관료 중에서도 영어 잘하는 ‘국제통’으로 꼽힌다. 그는 실무자로 일하면서 변방 국가의 서러움을 여러 번 겪었다. 1985년 서울에서 열린 IMF 총회 때 그는 김만제 재무부 장관의 수행비서였다. 방한한 미국의 제임스 베이커 재무장관은 힐튼호텔에 묵고 있었다. 그를 만나러 힐튼호텔을 찾은 김 장관은 미국 측의 보안 검색을 받아야 했다. 한국의 장관이 한국 땅에서 몸 수색을 당하는 현실에 그는 비애감을 느꼈다.



국제기구들도 우리 편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80년대 후반 단군 이래 최대 흑자를 내자 미국은 시장 개방 압력을 가해왔다. 정부는 92년 금융시장 개방 청사진을 들고 대미 협상에 나섰다. 미국과 일대일 협상이 불리하다고 판단한 정부는 IMF와 세계은행을 끌어들여 태스크포스를 만들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허 차관은 “아무리 얘기해도 그들(IMF와 세계은행)은 우리 말보다 미국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면서 “한국도 어엿한 그들의 주주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던 게 요즘은 달라졌다. 한국은 IMF든 세계은행이든 국제기구에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국제기구는 이런 한국을 존중하고 조심스러워한다고 한다.



그는 “이제 우리 사회도 폐쇄성을 극복하고 본격적으로 ‘열린 사회’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구촌의 돈도, 사람도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게 된 만큼 한국의 문화와 제도를 누구나 와서 정착하고 살 수 있는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제질서를 주도하자면 우리 사회가 다른 사회, 다른 문화를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의 실력, 개방과 함께 커졌다”

외환위기 때 금융과장 진영욱




우리는 늘 돈을 빌리는 입장이었다. 이젠 투자하는 입장이 됐다. ”



현 한국투자공사(KIC) 사장

한화손해보험 부회장
한국의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를 이끄는 진영욱(59) 사장은 격세지감을 실감한다. 국제금융계의 거물들이 고급 정보를 들고 직접 KIC를 찾아와 투자를 요청한다. 당당히 ‘소수 투자클럽’의 멤버가 된 것이다.



그는 1997년 12월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금융정책과장이었다. 당시 산업은행이 해외 차입에 나섰다. 첫날 금리 협상은 가산금리 2%포인트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하룻밤 자고 나니 가산금리가 배가 됐다. 그는 “가격 불문하고 잡자”고 했지만 산은은 망설였다. 다음 날 또다시 배로 치솟았다. 머뭇거리는 새 또 하루가 지났고, 그 다음엔 16%포인트를 얹어 준다고 해도 빌릴 수 없었다. 국제금융의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몰랐던 것이다.



그는 “한국 경제의 실력이 개방과 함께 커졌다”고 말했다. 우루과이라운드(UR) 때 필사적으로 막았던 금융시장은 외환위기 이후 확 개방됐는데 이게 약이 됐다는 얘기다.



“과거엔 문을 열면 경제 식민지가 된다고 걱정했다. 그게 변방의식이다. 그러나 개방을 통해 오히려 경쟁력이 강해졌다. 변방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영원히 삼류로 살 수밖에 없다.”



G20 정상회의의 성공과 ‘G20 이후’를 위해 그는 두 가지를 거론했다. “장소만 빌려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국운 상승의 계기로 삼으려면 내용이 중요하고, 그 내용을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국제기구에 사람을 많이 내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기구는 국적 구분이 없는 만큼 강대국에 눌리지 않고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고, 회원국들의 고급 정보도 많이 접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 녹색성장서 적극적 역할 할 수 있어”

IMF서 인정 받았던 이건혁




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경제 부총리 자문관
이건혁(48·전 경제부총리 자문관)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1989년 IMF에 공채로 들어갔다. 첫 사회 생활을 국제금융의 심장부에서 시작했지만 이내 스스로가 세계 경제의 변방 출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선 IMF가 한국 사람을 정식 직원으로 뽑은 것 자체가 10년 만의 일이었다. 그는 IMF에서 일하면서 1년 내내 한국 사람을 볼 수도 없었다. 한국 정부에서도 IMF와 접촉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9년 뒤 IMF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외환위기가 발생한 인도네시아 책임자로 임명됐다. 한 나라의 경제 개혁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위치에 올랐지만 그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모국도 인도네시아와 별로 다를 바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했기에 올해 한국이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을 지켜보는 그의 소회는 남다르다. 그는 “이번 위기로 미국의 발언권은 축소되고 중국은 아직 리더십을 발휘할 정도로 크지 못한 상태”라며 “중간국인 한국이 입지를 넓힐 수 있는 기회”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의제 설정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전통적인 리더십이 없는 만큼 기득권을 가진 선진 7개국(G7)과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이해를 모으려면 적극적으로 물밑 작업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가 꼽는 좋은 의제 중 하나가 녹색성장이다. “녹색성장은 다음 10년간 세계 경제의 성장엔진이므로 참여국의 공감대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주제다. 아울러 뚜렷한 선두 주자가 없는 블루오션인 만큼 한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할 공간이 있을 것이다.”






“통상 가정교사 미국, 이젠 한국이 바로잡아”

80년대 통상협상 주도 정의용




현 아시아정당국제회의 상임위원회 공동위원장

17대 국회의원
정의용(64) 전 제네바 대사는 정통 통상관료 출신이다. 1971년 외무부에서 공직을 시작해 통상국장·통상교섭조정관을 지냈다. 그는 80년대 초 미국과 통상 마찰이 벌어졌을 때 최전선에 있었다. 70년대 말 한국이 처음으로 대미 무역흑자를 내면서 미국의 통상 압력이 거세졌다. 결국 한국산 앨범이 덤핑 판정을 받았다. 당시 한국의 길거리 좌판마다 앨범이 넘쳐났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미국은 덤핑이 뭐고, 지적재산권은 어떤 개념인지 등의 국제규칙을 한국에 일일이 가르치면서 협상했다”고 말했다.



그후 한국의 통상협상 실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제는 ‘가정교사’였던 미국의 잘못된 무역관행을 거꾸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바로잡는 경우도 있다. 그는 G20 정상회의 개최를 한국이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국가로 성장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가 서울 개최의 성공을 위해 주장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가 좀 더 ‘세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외교는 절차와 본질이 중요하다. 절차는 의전과 경호 같은 것인데,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나 2005년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개최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주 잘할 것이다. 본질은 서울 회의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다. 이런 내용을 전달할 때 ‘세련되게’ 해야 한다.”



G20 서울 유치 과정에서 성공담 위주의 뒷얘기가 정부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이런 홍보가 세련되지 못하다고 느끼는 듯했다. 한국의 ‘쾌거’를 다른 G20 국가는 어떻게 볼 것인가. 그는 “외교란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자기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특별취재팀=이상렬·권혁주·서경호·최현철·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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