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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남북 정상회담 마다할 필요 없다

북한이 달라졌다. 신년 공동사설을 보면 얼마 전까지 우리에게 온갖 비방과 욕설을 하던 그 북한이 맞는가 할 정도로 유화적이며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사실 북한은 남한을 다루는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한국에 신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일단 1~2년간 모든 대화·교류를 중단시키고 새 대통령에게 온갖 저속한 욕을 퍼붓는다. 이때 신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정치권 및 언론들로부터 비판도 가중된다. 특히 북·미 대화가 진전되는 가운데 남북대화가 없다는 점이 부각되면,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다. 출범 초의 이상적인 남북관계 청사진은 사라지고 북한의 눈높이에 맞추어 남북대화를 모색하는 데 급급해진다. 그 무렵 북한은 통 크게 접근한다. 바로 정상회담 제안이다. 김영삼 정부도 김대중 정부도 북한의 정상회담 카드에 자유롭지 못했다.



북한은 현 정부에 대해서도 동일한 정상회담 카드를 활용한다. 김대중 전 대통 서거에 즈음해 파견된 북한 특사단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과거 정부와는 달리 비핵화, 인도적 문제를 회담의 조건으로 함으로써 북한이 아닌 우리의 눈높이에서 역 길들이기를 시도하고 있는 점은 매우 신선했다.



MB정부가 결심하면 일단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한국보다 북한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1년간 군을 동원해 대외 긴장국면을 조성하면서 헌법 개정, 인사 재편, 화폐 개혁 등을 단행해 세습 후계구도 정비를 해왔다. 이제 성공적인 세습을 위해서는 과도한 군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할 시점이다. 과거 김일성은 1970년대 초 ‘7·4 남북 공동성명’의 모멘텀을 활용, 군부를 극좌모험주의로 정리하고 김정일로의 공식 승계를 이루었다. 김정일도 군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후계구도의 공식화를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요구될 것이다. 더욱이 화폐 개혁을 통해 계획경제 복원을 추진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대규모 물자가 필요한데, 이를 제공할 나라는 사실상 한국밖에 없다.



북한의 의도가 정략적이라고 해서 정상회담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정상회담은 60여 년 이상의 남북 대치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자체로서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만남 자체가 의미가 있는 시점은 지났다. 문제는 회담의 콘텐트다. 북핵 제거는 물론 이산가족을 비롯한 인도적 문제 등 콘텐트에 관한 한 MB정부의 입장은 확고한 것 같다.



최근 여론조사들을 보면, 남북관계에서 국민이 바라는 것은 정부의 의연한 자세다. 상당히 의외다. 과거 국민이 속상했던 점은 정부가 왜 많은 지원을 하면서도 북한에 대해 저자세로 일관하는가이다. 정상회담이 하루 전날 일방적으로 연기된 적도 있고 일정도 김정일 위원장의 기분에 좌우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따라서 다음 정상회담은 상식적인 프로토콜을 확립하는 회담이 되어야 한다. 회담에서 다루어져야 할 의제도, 구체적 일정도 사전에 마련되고 이에 따라 실질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파격적이고 즉흥적인 논의는 구체성 없는 정치적 쇼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최근 국제적 관례는 정상들이 격의 없이 필요에 따라 수시로 만나 문제를 해결한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셔틀적 성격의 회담을 제도화해야 한다. 특히 비무장 지대에 상설 정상회담장을 마련할 수 있다면, 장소를 둘러싼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두 차례의 정상회담이 총선·대선 직전에 이루어져 국내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으나 국민은 정상회담과 관계없는 투표 성향을 보인 바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선거일정에 초연할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 60주년에 즈음한 시점에서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남북 모두에 꿈을 주는 회담이 돼야 할 것이다. 연합이냐 연방이냐 하는 형식논리가 아닌 실질적인 협력의 통일비전이 제시돼야 한다. 남북한이 상생할 수 있는 통합된 한반도 시장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우리뿐만 아니라 북한에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다. 북한이 살길은 핵무기도 ‘김일성 시대로의 회귀’도 아니다. 남한과 손을 잡는 북한판 ‘남방정책’이며, 정상회담은 그것을 실현하는 길이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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