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그때 오늘] 반탁에서 ‘3상협정 지지’로 입장을 선회한 조선공산당

1946년 1월 3일 조선공산당이 주도한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서 지지를 위한 모임이 끝난 뒤 시가 행진을 하고 있는 시민들.
1946년 1월 3일 지금은 철거된 서울운동장(구 동대문운동장)에서 서울시인민위원회가 ‘민족통일자주독립시민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는 45년 12월 모스크바 3국(미국·영국·소련) 외상회의에서 조선에 대한 결정문이 발표된 직후 신탁통치 반대운동(반탁운동)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었던 시기에 조선공산당을 비롯한 좌파 정당, 사회단체들이 주도해 개최됐다.



반탁운동이 지지를 받고 있어 이 대회 역시 신탁통치 반대를 주장하는 대회가 될 것으로 예측됐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이미 조선공산당은 1월 2일 성명을 통해 ‘신중히 검토한 결과’ 삼상회담의 결정이 ‘조선을 위하여 가장 정당한’ 결정이며, 신탁통치는 ‘제국주의적 위임통치’가 아니라 ‘우호적 원조와 협력신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중매체의 발전이 미미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좌파의 노선은 알려지지 않았고, 결국 이 대회에 참여한 서울시민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모임은 조선공산당에 대한 대중적 인기가 급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당시 미군정도 인정하고 있었던 바와 같이 조선공산당은 당시의 정당들 중 가장 대중적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조선공산당은 ‘찬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3상협정에 대한 ‘선택적’ 지지가 아닌 ‘전면적’ 지지를 선택함으로써 ‘신탁통치에 대한 찬성’으로 해석되었고, 이는 결국 친(親)소련, 매국노라는 비판을 받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3상회의 결정은 반탁운동과 3상회의 결정 지지 진영 간의 대립을 격화시켰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3상회의 결정이 이렇게 상호간에 분열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좌파의 모임 이후 4일이 지난 1월 7일 좌우의 대표적 정당인 한국민주당·국민당·조선공산당·조선인민당이 모여 3상회의 결정의 정신을 지지하며, 신탁 문제에 대해서는 장래 수립될 우리 정부가 결정하도록 한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이데올로기를 떠나 정치세력 간의 통합을 위한 노력이 이뤄졌던 것이다.



하지만 민족보다는 정치적 목적을 앞세운 세력들에 의해 이 합의는 오래 가지 못하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북한 핵문제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남남갈등이 남북갈등 못지않게 심각한 현 상황에서 46년 1월의 교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현대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