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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KAIST 생명과학과 K교수가 우울한 이유

요즘 KAIST 생명과학과의 K교수는 우울하다. 연구가 잘 안 돼서가 아니라 학생 교육에 대한 회의가 들어서다. 나름대로 학문 후속 세대를 키운다고 4년 동안 학부학생들을 열심히 지도해 왔는데, 올해 60명이 넘는 졸업생 중 본교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은 4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른 우수한 학생들은 거의 모두 의학·치의학 전문대학원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심지어 입학할 때에는 생명과학을 전공하겠다고 마음먹었던 학생들도 주위 친구들이 모두 의학·치의학 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한다고 하니 분위기에 휩쓸려 따라가는 것을 보고 허탈감도 느꼈다. 마치 생명과학과가 의학·치의학 전문대학원 준비학교같이 돼버린 꼴이다. 문제는 이런 사정이 KAIST 생명과학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의 유수 생명과학과의 사정도 거의 비슷하고, 화학과나 공대 등 인접 학과의 경우도 정도의 차이일 뿐 우수 학생들의 전문대학원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학생들이 진학하는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의 교수들이 만족해하는 것도 아니다. 학부에서 다양한 전공을 배운 학생들이 의학 교육을 받으면 지식의 융합을 통해 의료·바이오산업의 획기적인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는 대부분의 학생은 개업해 돈 버는 일에 관심이 쏠린 듯이 보인다.



그러기에 임상의학에서 흉부외과나 신경외과 등은 전공의를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고, 특히 기초의학 분야는 학생들이 오지 않아 연구와 교육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는 현상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결국 과거와 별로 다르지 않은 임상 의사를 양성하는 데 공연히 기간만 2년 길어지고 등록금만 올린 꼴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의생명 분야의 발전에는 별로 기여하지 못하면서 이공계의 우수 인력 수급에는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제도가 도입된 것은 교육과학기술부의 일방적인 독주 탓이 크다. 교과부는 높은 수준의 교양과 전문성 있는 의료인을 양성해야 한다는 명분과 대입에서 의예과 진학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완화한다는 목표를 내세우면서 모든 의과대학을 전문대학원 체제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특히 의과대학이 의전원으로 전환 시 여러 특혜를 주고, 전환하지 않으면 BK(두뇌한국)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면서 밀어붙였다.



그 결과 현재 전국의 41개 의대 중 15개교는 의전원으로 전환했고, 12개교는 50%만 전환했으며, 14개교는 의과대학으로 남는 등 여러 형태의 의사 양성 학제가 혼재(混在)하는 기형적인 상태가 되고 말았다. 특히 50% 전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같은 교실에서 같은 과목을 배우면서도 등록금은 크게 차이 나고 졸업 시 취득학위도 학사와 전문석사로 갈리는 파행적인 학사운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제 이 같은 불합리는 빨리 정리해 의학 교육제도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그렇지 않으면 의사양성체제의 문제점은 점점 더 심화되고 이공계의 인력 수급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붕괴될 위험성마저 있다. 사실 교육부가 의전원 체제를 추진하면서 내세웠던 두 가지의 명분, 즉 다양한 배경의 의학자들이 양성되면 의료·바이오산업 발전에 필요한 학문의 융합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과 의예과 입학을 위한 대입 경쟁이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제 모두 틀린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이공계 학부 졸업생들이 대거 의전원 준비를 하면서 이공계 인력 공급에 커다란 차질을 빚는 부작용만 극심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원칙대로 한다면 의전원 체제를 전면 재검토하는 것이 맞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의전원으로 전환한 대학도 있고, 또 현재 의전원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도 있는 상황에서 정책의 연속성과 정부 신뢰성을 생각하면 다시 과거 체제로 돌아가기 어려운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소한 시범사업이란 명목으로 50%만 전환해 학부와 전문대학원을 동시에 운영하는 학교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하루빨리 학부로 돌아가든지 전문대학원으로 전환하든지 하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할 것이다. 대학의 인력 양성 체제는 대입 경쟁 완화 같은 교육 외적인 요인에 따라 결정하기보다 의사 양성을 직접 책임지고 있는 교수들에게 맡기는 것이 정도(正道)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사 양성 학제가 제대로 정립돼야 이공계도 장기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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