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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부엉이 바위에 올라

올해 나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다. 그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을 5년간 이끌었다. 속세의 최고점에 올랐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새벽에 바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인생의 마지막 시간에 그는 바위에 앉아있었다. 그는 무엇을 보았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5월 23일 그가 죽은 후 나는 부엉이 바위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4일 후 봉화산에 갔지만 바위엔 오를 수 없었다. 경찰이 막고 있었다. 2009년이 마지막 언덕을 넘어가던 며칠 전 나는 바위에 앉을 수 있었다.



황량한 겨울 들판이 한 눈 가득 들어왔다. 바둑판 줄처럼 논둑이 있다. 청년 무현은 마을 처녀 양숙과 밤이 이슥하도록 둑을 걸었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 “벼 이삭에 맺힌 이슬이 달빛에 반사되어 들판 가득히 은구슬을 뿌려놓은 것만 같았다”고 회고하곤 했다. 들판이 끝나는 곳에 뱀산이 있다. 그곳 움막에서 무현은 고시 공부를 했다. 들판 안쪽으론 초가집 생가와 황토색 사저가 사이 좋게 붙어 있다. 노무현은 태어난 곳에서 200m 떨어진 땅속에 누워 있다. 논둑을 같이 걸었던 여인은 지금 사저에 있다. 뱀산 움막을 같이 지었던 형은 감옥에 있다. 대통령 가족의 이렇게 기구한 위치도(位置圖)가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 기가 막힌 운명의 재배치(再配置)에 한줄기 숨결이 새어 나온다. 노무현은 과연 누구였는가.



지도자는 가슴은 따뜻하고 머리는 차가워야 한다고 선인(先人)들은 말한다. 그들의 머리·가슴이 많은 이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수억·수천만을 이끄는 국가지도자는 더 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어떤 지도자가 가슴이 따뜻했는지는 사후(死後)에 부하들을 보면 안다. 상사나 동료로는 안 된다. 대개 사람들은 상사에겐 잘 보이려 하고 동료와는 경쟁한다. 그래서 상사나 동료에겐 좀처럼 참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부하는 이해관계가 적다. 그래서 부하들에겐 쉽게 속살을 보인다. 노무현의 부하들은 노무현의 속살을 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부하들은 분주했다. 책을 펴내고, 재단을 만들고, 미망인을 지키고, 봉하를 부지런히 찾고 있다. 노무현 그룹이 남긴 국정 부실과는 별도로 그런 요란스러움이 나에겐 인상적이다. 거기서 노무현이 남기고 간 ‘심장의 온도’를 느낀다. 봉하마을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참 서민적인 사람이었는데….”



그러나 서민적인 대통령과 서민을 위한 대통령은 다르다. 서민적인 것은 따뜻한 가슴만으로도 된다. 그러나 서민을 위한 대통령에는 차가운 머리가 있어야 한다. 노무현의 비극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 있다. 나는 노무현의 행정수도 공약이 충청도표 때문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199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후 노무현은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었다. 그는 지방분권화에 매달렸고 행정수도가 지방분권의 핵심이라고 믿었다.



바로 이런 곳에 국가의 불행이 숨어 있다. 지방분권이나 지방균형발전은 국가의 과제다. 그러나 문제는 방법론이다. 노무현의 머리가 차가웠다면 행정수도나 세종시 같은 길을 택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국회의원·장관·대통령을 지냈다. 그랬음에도 행정부 분할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몰랐다. 그건 머리가 냉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장의 고온이 시력을 흐려놓은 것이다. 세종시만이 아니다. 비정상적인 검찰개혁, 재신임 국민투표나 대연정(大聯政) 같은 황당한 제안, ‘2대 8’의 계급 분리, 헌법 유린, 어설픈 반미, 대통령 권위의 추락… 이 모두가 과열된 머리 탓이다.



‘노무현 가게’에 들렀다. 사진 속에서 그가 자이툰 부대 장병과 껴안고 활짝 웃고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무현 사진이다. 자이툰 파병은 가슴과 머리가 조화를 이룬 대표적인 정책이다. 가게를 나와 부엉이 바위를 쳐다보았다. 노무현이 슬픈 얼굴로 앉아있었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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