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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백신 개발팀, 유행성출혈열 걸려 위기도

백신 개발자들은 때로는 세균ㆍ바이러스 같은 미생물과 싸움에 목숨을 걸어왔다. 미생물을 배양하며 실험하는 과정에서 한순간의 실수로 연구자가 무서운 질병에 감염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초창기 백신 개발자들은 미생물에 의한 감염 위험과 함께 오해와 편견이란 세상의 시선과도 싸워야만 했다.
1970년 6월 들쥐가 옮기는 유행성출혈열을 연구하던 이호왕 박사팀에 비상이 걸렸다. 경기도 의정부 지역에 들쥐를 잡으러 나갔던 연구원 김수암씨가 갑자기 유행성출혈열 증세를 보인 것이다. 당시 28세의 건강한 청년 김씨는 처음엔 감기 몸살이라 생각해 아스피린을 먹었으나 열은 떨어지지 않고 설사가 계속됐다. 며칠이 지나자 40도가 넘는 고열과 심한 구토로 물도 마시지 못했다.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남은 연구원 다섯 명 중 세 명은 “이런 위험한 연구는 못하겠다”며 짐을 쌌다. 이호왕 박사는 하는 수 없이 연구실 문을 닫아야 했다.

목숨 건 집념, 백신 개발사

다행히 김씨는 한 달 만에 회복해 연구실로 돌아왔다. 이후에도 이 박사팀에서 여덟 명의 연구원이 실험동물을 만지거나 바이러스 조직 배양을 하다 유행성출혈열에 걸렸다. 이들의 목숨을 건 연구 덕분에 이 박사팀은 76년 세계 최초로 유행성출혈열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를 밝혀내고, 한탄강에서 이름을 따 ‘한탄바이러스’로 명명했다. 90년엔 예방 백신인 ‘한타박스’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유행성출혈열의 공포에서 세계를 구했다. 이 박사는 “한탄바이러스는 이호왕이 발견한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죽음을 불사하고 연구에 헌신한 이들이야말로 일등 공신”이라고 회고했다.

백신 어원은 바카, 라틴어로 암소
1796년 영국의 의사였던 에드워드 제너는 백신 개발의 첫 장을 열었다. 제너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치명적 전염병이었던 천연두(두창)에 종두법이란 예방접종법을 개발했다. 그는 암소에서 흔한 질병인 우두를 앓은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과감한 실험을 결심했다. 우선 우두에 전염된 사람의 종기에서 고름을 뽑아냈다. 이어 건강한 소년의 팔에 작은 상처를 내고 고름을 조금 묻혔다. 이 소년은 가벼운 우두에 걸렸으나 곧 회복됐다. 얼마 뒤 제너는 천연두에 걸린 사람의 종기에서 고름을 뽑아 같은 방법으로 소년의 팔에 묻혔다. 그러나 소년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 제너의 성공으로 바카(vacca·암소)라는 라틴어에서 백신(vaccine)이란 말이 생겨났다.

제너의 종두법은 엄청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우두와 천연두가 서로 다른 질병이어서 우두로는 천연두를 막을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특히 기독교계에선 인간의 피 속에 짐승의 물질을 집어넣는 것은 ‘신의 섭리’에 어긋난다고 비난했다. 우두를 접종한 아이가 황소로 변했다는 터무니없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아직 세균학이 발달하지 않아 세균ㆍ바이러스 같은 미생물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너도 종두법에 대해 ‘경험적 확신’만 있었을 뿐 ‘과학적 증명’을 내놓지는 못했다.

파스퇴르는 탄저·광견병 백신 성공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화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루이 파스퇴르는 각종 병원체를 찾아내 백신을 만드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다. 식품의 발효를 연구하며 세균의 존재를 알게 된 그는 닭콜레라에 이어 탄저병과 광견병의 백신 개발에 차례로 성공했다. 제너가 우연히 우두와 천연두의 상관관계를 알아낸 것과 달리 파스퇴르는 실험실에서 미생물을 배양해 독성을 약하게 하는 방법을 썼다. 현대 세균학의 토대를 마련함으로써 백신을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또 파스퇴르는 백신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해 줬다. 당시 농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던 가축 전염병인 탄저병을 예방해 농가의 손실을 크게 줄여줬기 때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파스퇴르의 탄저병 백신으로 인한 프랑스 농업의 비용 절감액은 면양에서 500만 프랑, 소와 그 밖의 가축에서 200만 프랑에 달했다고 한다.
독일의 세균학자 에밀 폰 베링은 1901년 혈청 요법으로 디프테리아 백신을 개발한 공로로 최초의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혈청은 피에서 적혈구ㆍ백혈구ㆍ혈소판과 혈액 응고인자를 제거한 것으로 투명한 색을 띤다. 베링은 일본 세균학자 기타자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郞)와의 공동 연구에서 면역이 생긴 동물의 혈청에는 독소에 저항력을 지니는 물질이 생기는 것을 밝혀내고, 이 물질을 항독소(antitoxin)라고 불렀다. 이들은 면역된 실험동물에서 항독소를 포함한 혈청을 뽑아낸 뒤 이를 사람에게 접종해 면역을 전달하는 ‘수동 면역 백신’을 도입했다. 사람이나 동물이 가벼운 질병을 앓아 스스로 면역을 생기게 하는 제너와 파스퇴르의 ‘능동 면역 백신’에 비해 획기적인 진전이었다.

기타자토는 베링과 함께 노벨상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수상자에는 끼지 못했다. 일본 학계에선 나중에 공개된 노벨재단의 자료를 근거로 “기타자토가 동양인이란 이유로 상을 받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베링은 노벨상 수상 후에도 연구와 교육에 열중했으며, 1913년 자신의 이름을 딴 베링연구소를 세웠다. 이 연구소는 디프테리아 혈청 요법에 사용할 백신을 대량으로 제조해 인류를 디프테리아의 공포에서 해방시켰다. 기타자토는 일본으로 돌아가 아시아 각 지역의 풍토병과 전염병을 연구해 일본 세균학과 의료·제약산업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는 림프선을 염증으로 부어 오르게 하는 가래톳의 병원균도 찾아냈으며, 현 기타자토대학의 전신인 기타자토 연구소를 설립했다.

지석영은 130년 전 종두법 도입
한국의 백신 역사는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790년 청나라에 갔다가 천연두에 대한 원시적 예방 접종인 인두법에 대한 얘기를 듣고, 다산 정약용 등 다른 실학자들에게 전했다. 인두법은 천연두에 걸린 사람의 고름을 정상인의 피부에 살짝 주입하는 방법이다. 재수가 좋으면 천연두에 면역이 생겨 두 번 다시 같은 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멀쩡한 사람이 천연두에 걸려 목숨을 잃을 위험도 높았다. 중국에선 수천 년 전부터 인두법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란ㆍ터키 등을 거쳐 유럽에도 전해졌다.

국내 최초의 백신 접종은 1879년 지석영이 실시했다. 그는 부산에 일본인을 위해 설립한 제생의원에서 종두법을 배우고 처가가 있던 충주 덕산면에서 처음으로 종두를 실험했다. 1880년 고종의 첫째 왕자 완화군이 천연두로 사망하자 지석영은 궁궐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종두를 놔주는 등 종두법 보급에 큰 공적을 남겼다. 그 후 서양 의학의 전래와 함께 백신을 비롯한 예방접종법이 국내에 도입돼 질병 예방에 큰 효과를 봤다.

국산 백신 1호는 이호왕 박사의 한타박스다. 녹십자와 공동 개발한 이 백신은 국산 신약 1호이기도 하다. 고려대 의대 교수였던 이 박사는 1980년 백신 개발에 착수한 지 8년 만에 실험용 백신을 만들어 내고 학회에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상품화에 성공한 것은 90년 7월이었다. 한타박스는 1개월 간격으로 2회 접종했으며, 1회(0.5㏄) 접종 비용은 1만1000원이었다.

한타박스의 임상시험에는 88년 중앙일보 체육담당 기자가 골프장에서 유행성출혈열에 걸렸던 사건이 중요한 전기가 됐다. 이 일로 전국의 골프장에 비상이 걸려 임상시험을 받겠다는 사람이 줄을 이었다. 이 박사는 560명에게 예방백신을 접종해 항체 생성률 98%라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그는 “마침 임상시험 대상자가 없어 애를 먹고 있었는데 뜻밖의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측의 ‘반칙’으로 자칫 백신 개발의 공을 일본에 뺏길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이 박사가 백신의 임상시험을 준비하던 89년 5월 일본 오사카의대가 한국 특허청에 백신 특허를 신청하며 선수를 쳤기 때문이다. 오사카의대는 이 박사에게서 한탄바이러스 샘플을 제공받은 곳이었다. 다행히 일본 측 백신은 여러 가지 기술적 문제가 드러나 특허 신청이 기각됐다. 오사카의대는 이 박사에게 “공장 사람들이 돈에 눈이 어두워 그랬다”며 사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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