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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의 세상 탐사] 50년 크리스마스, 흥남 피란선서 태어나다

이경필(59)씨는 보통 사람이다. 그는 수의사다. 경남 거제도에서 가축병원을 한다. 그의 삶에는 굴곡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그의 출생은 특별나다. 전쟁이 연출하는 운명적 긴박함이 있다. 태어날 때 그의 별명은 ‘김치-파이브(5)’다. 비밀이 담긴 듯하다. 생일은 195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6·25 전쟁 첫해 흥남(북한 함경남도) 철수 작전 때다.

50년 초겨울 중공군은 은밀히 참전했다. 미군 해병 1사단은 북한의 끝 개마고원 근처에서 포위됐다. 그곳 장진호 전투는 미군 전사에서 ‘가장 추운 겨울, 악몽의 전투’로 기억된다. 미군과 한국군은 후퇴했다. 흥남 항구에서 바다로 철수했다. 그때 북한 주민 10만여 명이 합류했다.

그해 12월 23일, 철수 작전은 절정이었다. 배 한 척이 정박했다. 메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다. 피란민이 몰려갔다. 흥남에 살던 그의 부모가 대열에 끼었다. “어머니는 배가 불러 거동조차 힘들었답니다. 하지만 다시 공산 치하가 되면 붙잡혀 가고 집안이 망할까 부모님들은 겁이 났답니다.”(이경필씨). 공포의 그림자가 깔리면서 삶의 애착은 강렬해졌다. 그의 아버지(37세)는 결행했다. 만삭인 아내(31세)의 손을 잡아주며 피란선에 올랐다.

그 배는 미국 민간 수송선(7600t)이다. 선원 47명으로 최대 승선 인원을 따지면 1500명 정도다. 선장(레너드 라루·당시 36세)은 생존의 욕망을 표출하는 피란민들의 절박한 장면을 지켜봤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갑판· 선창 등 배의 모든 공간에 피란민을 실었다. 1만4000명이 탔다.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 배고픔, 목마름, 움츠려 앉은 고통 속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참아냈다. 항해의 끝은 25일 거제도 장승포항이었다. 동틀 무렵 배는 항구에 다가갔다. 두려움을 걷어내는 햇살이 감돌았다. 그의 어머니는 배 안 응급실로 옮겨졌다. 다른 피란민이 분만을 도왔다.

이틀 항해 중 그 배에서 아이 다섯이 태어났다. 그가 마지막인 다섯 번째다. 미국인 선원들은 처음 아이를 ‘김치-1’ 으로 불렀다. 이씨는 ‘김치-5, 크리스마스 축복’이었다. 그의 이름 경(慶)자는 경상도 태생을 의미한다.

흥남 철수를 기억하는 편지가 내게 왔다. 73세 독자의 편지를 정리하면 이렇다. “59년 전 이 무렵 흥남에서 나는 아버지 손을 잡고 내려왔다. 그때 피란민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알면 얼마나 알았겠는가. 다만 공산사회에선 증오와 가난이 판을 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그들의 탈출은 위대했다.” 피란민들의 직감은 맞았다. 최근 북한의 화폐개혁은 주민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편지는 안타까움을 담았다. “장진호 전투를 아는 한국인은 드물다. 노르망디, 던커크 철수, 스탈린그라드 전투보다 낯설어 한다. 흥남 철수는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 정도로만 안다. 흥남과 장진호는 노르망디, 던커크보다 처절하면서 감동적이다. 내년은 6·25 60주년이다. 그 극적인 이야기를 알려야 한다.” 남북의 진정한 평화를 확보하려면 전쟁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평화통일로 가려면 6·25를 기억해야 한다.

그 배는 기네스북에 올랐다. 한 척의 배로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구출한 기록으로다. 선장의 공로는 ‘생명의 항해’(월드피스자유연합, 안재철 기록)로 불린다. 그 배는 거대한 조형물(사진)로 재생됐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세워졌다. 2005년 5월 제막식이 있었다. 당시 대북정책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다. 그 분위기 탓에 드라마 같은 사연은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이경필씨는 그 조형물 앞에 서보았다. 아버지의 슬기로운 선택, 피란의 고통, 자신의 절묘한 탄생 등 여러 상념이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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