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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기준이 뭐냐, 입시 현장은 헷갈린다

내년부터 외고입시에도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다. 사진은 11월 한 학원에서 열린 관련 설명회. [중앙포토]
외국어고등학교가 살아났다. ‘사교육의 주범’으로 몰려 사라질 뻔하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다. 구술면접·적성검사 등을 다 없애고 입학사정관을 통해 모든 학생을 선발하는 것 등의 조건으로 외고라는 간판을 그대로 유지하게 된 것이다. 다른 특목고인 과학고들은 2011학년도 입시부터 입학사정관제를 일부 적용하겠다고 이미 공표한 상태다. 정부 개선안에 따르면 자립형 사립고나 국제고 등도 입학사정관 전형을 실시해야 한다.

대학서 외고까지, 입시 ‘폭풍의 핵’ 입학사정관제

지난해 말 실시된 2009학년도 대학입시 전형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입학사정관제가 순식간에 고교 입시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입학사정관제는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 개혁의 주력 상품이다. 시범사업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시작됐지만, 당시에도 국회에서 예산 책정의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던 이주호 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었다. 입학사정관제야말로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의 과열 현상을 막을 가장 확실한 대안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믿음도 확고해 보인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라디오 연설에서 “제 임기 말쯤 가면 아마 상당한 대학들이 거의 100% 가까운 입시사정을 그렇게 (입학사정관제로) 하지 않겠느냐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입학사정관제가 준비가 안 된 상태로 너무 빨리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온다. 사교육 시장의 발 빠른 대응도 정부엔 큰 부담이다.

“서류 준비하다 수능 망친 학생도 있어”
입학사정관제를 통한 대학 입학의 문은 급속도로 넓어지고 있다. 2009학년도에는 41개 대학이 4555명(전체 입학정원의 1.2%)을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선발했다. 2010학년도 입시에선 90개 대학에서 2만4622명(6.5%)을 뽑는다. 2011학년도엔 105개 대학 3만7628명(9.9%)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그러나 올해 대부분의 대학에서 입학사정관 전형 지원율은 비교적 낮았다. 지난해 17대 1의 경쟁률을 보였던 고려대 ‘학생부 우수자 전형’의 경우 올해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바뀌면서 오히려 4대 1로 크게 떨어졌다. 학생부 성적 외에 서류전형의 비중이 큰데, 아직은 정보가 충분치 않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지레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입시 당사자들의 얘기다.

“정보가 너무 없어서 우리 학교에선 나를 포함해 3명만 입학사정관제에 도전했다. 스스로 준비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내신 2등급에 청소년 기자활동과 봉사활동, 백일장 수상과 반장 경력 등을 토대로 자기소개서를 쓴 뒤 잘 아는 선생님께 첨삭지도를 받았다. 4곳에 지원해 2곳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는데, 솔직히 무엇이 기준이 됐는지는 전혀 모르겠다.”(고규호·인천 선인고 3년·건국대 상경대 합격)

“이번에 딸이 이화여대 수시 논술전형에 합격했다. 입학사정관 전형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굵직한 외부 상 수상 경력이 있어야 하고, 포트폴리오나 자기소개서 등을 준비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 돈 주고 사거나, 그거 준비하다 수능까지 망쳤다는 아이들도 봤다. ”(구혜령·43·주부·서울 약수동)

“처음엔 좋은 제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갈수록 너무 어렵다. 무엇보다 대학이 제시하는 전형 기준이 불투명하다. 대학마다 지향한다는 인재상도 뜯어보면 대동소이하고 추상적이다. 대학 측에서 공개한 합격 사례는 매우 특수한 경우다. 기준이 모호하니 학생이나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준비하자고 얘기하기 힘들다.”(조효완 은광여고 교사·서울진학지도협의회 회장)

사교육시장 발빠른 대응도 정부에 부담
이런 정보 부재를 틈 타 학원가는 입학사정관제 확대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영어전문학원인 정상JLS의 문상은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이미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입학사정관 전형을 대비해준다는 컨설팅이 늘고 있다. 대부분 1시간에 30만~40만원씩 10회를 하는 고액 상담”이라고 전했다. 문 소장은 또 “특목고 대비 학원들도 입학사정관 전형에 맞춰 프로그램을 마련 중이다. 영어만 가르치는 우리 학원은 내년 1학기엔 영어 콘텐트 손수제작물(UCC) 만들기, 개인 블로그에 영어 에세이 올리기 등을 준비해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학 측에서 어떻게 사교육의 도움을 받았는지 가려내는 게 입학사정관들의 과제라면, 학원은 어떻게 자신들의 도움을 받은 표가 안 나게 해줄지 고민해 좀 더 개별적, 맞춤형 전략을 쓰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현대고 김진황 교사는 “올해 내가 추천서를 써줬던 제자들만 해도 사교육의 도움을 별로 받지 않았는데 입학사정관제 덕분에 기대 이상의 대학에 합격하는 등 지금까지는 좋은 결과들을 많이 봤다. 하지만 소위 ‘알파맘’ 학부모들이나 학원들이 나서기 시작하면 또다시 부와 정보의 격차에 의한 양극화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벌써부터 자녀의 생활기록부 내용까지 일일이 간섭하려 드는 저학년 학부모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수한 사정관 인력도 태부족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대학들이 자의적 기준에 따라 운용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 때 입학사정관들의 자질 문제가 집중 거론된 것은 그러한 맥락이다. 상당수 대학들이 정부 지원금을 타기 위해 입학사정관제를 급격히 확대하는 과정에서, 교육 현장 경험이나 연구 경력이 거의 없는 사람들까지 채용했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의 지원으로 서울대 등 5개 대학에서 운영하고 있는 입학사정관 양성 과정 참가자는 대부분 현직 입학사정관이나 고교 교사들이다. 이에 대해 건국대 양성관 입학사정관은 “현재 우리나라의 입학사정관들은 입시 평가와 관리는 물론 홍보·상담 업무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모든 걸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 우선 필요하다”며 “석·박사 학위보다는 성실함과 꼼꼼함이 더 중요한 자질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주대 이미경 수석입학사정관도 “입학사정관들의 판단이 주관적일 수 있지 않으냐는 비판을 많이 하는데, 그렇다면 점수 1, 2점 차이로 한 아이의 능력을 판단하는 것은 객관적이냐”며 “우리 대학만 해도 한 학생의 서류 평가에 4~10명이 크로스체크를 하는 등 공정성과 객관성을 획득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발한 학생에 대한 철저한 사후 관리도 제도 성패의 열쇠다. 하나고 전경원 교사(전 건국대 입학사정관)는 “기존 입시와 다르게 선발된 그 학생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며 성장하고 취업하는지 종단연구를 통해 데이터를 쌓는 것은 기존 입시 제도와 큰 차이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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